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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니 Jan 08. 2019

내 안의 야성을 찾아서

이탈리아의 휴양섬 판나레아에서 열흘을 보낸 적이 있다. 친구의 친구로 알게 된 데이비드의 집에서 머무르며 인생에서 가장 평화로운 날들이 이어졌다. 데이비드가 일터로 떠나면 나는 곧잘 혼자 산책을 나섰는데, 하루는 해안 절벽 근처를 산책하고 있을 무렵, 검은 구름이 몰려들기 시작하더니 폭풍이 불기 시작했다.


순간 태어나서 처음으로 내 안의 모든 감각이 곤두섰다. 도시에 살면서는 시각을 제외하곤 거의 사용하지 않던 청각, 후각, 미각, 촉각은 물론 육감까지 살아나는, 섬사람들 특유의 동물적이 날씨 감각이 이런 것이었던 게다.

아, 야성이란 것이 이런 것이구나.


놀랍게도 두려움 대신 내 안의 깊은 곳에서 웃음이 터져나왔다. 하하하. 하하하. 살아 있다는 게 이런 감각이었지. 생존을 위한 동물적인 본능과, 세계를 온 몸으로 지각하는 기쁨이 전기가 통하듯 짜릿하게 흘렀다. 마치 갓난아이로 새로 태어난 기분이었다.


여행을 하면서 유지하고 살던 그 감각을 다시 사회에 편입되며 말끔이 잃어버렸다. 조직에 몸을 구겨 넣었고, 적당한 가면을 쓰고 사회적 거리를 유지했다. 촉각이나 육감보다는 시각에 현혹되었다. 눈 뜬 장님이 된 셈이다.


마흔을 축하하며 산티아고를 걸을까 한다. 한 발 한 발 내어 딛으며, 잡힌 물집의 고통을 온전히 느끼며, 적막한 대지의 미지의 생명체를 견제하며 걸을 때, 내 안의 야성은 다시 살아날 것이다.


그러면 예의와 허례허식, 어쩌면 나도 모르게 쌓였을지도 모를 꼰대 의식은 말끔히 사라질지도 모르겠다.  

그 날을 기대하며 오늘을 연다.


2019. 01.08 서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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