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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니 Jan 06. 2019

학교 밖 청소년으로 산다는 것은

내게는 뜨문뜨문 연락이 오는 학교 밖 청소년이 하나 있다. 이제 올해로 22살이 되었으니 더 이상 청소년이 아니지만, 아직 어디에도 소속되어 있지 않은 아이는 여전히 내게 처음 만난 청소년의 모습으로 남아 있다. 


아이를 만난 것은 다음세대재단에서 운영하는 청소년 워크샵에서였다. 워크샵을 개설한 친구 하나가 도움을 요청했고, 덕분에 같이 고등학생들과 '나만의 의자'를 디자인 하고 제작하는 워크샵의 강사가 되었다. 워크샵의 구성원은 학교 밖 청소년, 디자인 전공 고등학생, 건축 전공 고등학생, 그리고 방송반을 하는 인문계 학생으로 다채로웠는데, 아이는 그 중 영화를 하고 싶어하는 인문계 학생이었다. 


디자인과 관련된 공부를 하는 두 아이는 금새 적응해 순조롭게 디자인을 하고 제작에 들어갔고, 인문계였던 아이는 아주 철학적인 의자를 구상해서 왔다. 치킨집을 운영하는 부모님을 위한 변기 의자였다. 이야기인즉슨 손님들이 가게에서 소위 갑질을 많이 하는데, 사실 그들도 직장에선 을이고 그에 대한 스트레스를 가게에서 푸는 것 같으니 그 스트레스를 풀수 있는 변기 의자를 가게에 놓겠다는 것이었다. 일반적인 고등학생들이 전개하는 생각들이 아니라 자연스레 아이에게 주목하게 되었다. 


몇 주 간의 워크샵이 끝나고, 아이에게 연락이 온 것은 한참 시간이 지나서였다. 학교를 그만두려고 하는데, 상담을 받고 싶다는 것이다. 사무실로 찾아온 아이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방송반 아이들과 트러블이 심해 도저히 학교를 못 다니겠다는 것이다. 이미 학교 선생님께도 이야기를 했단다. 


우리나라에서 제도 교육의 틀을 벗어나 살아간다는 것이 얼마나 지난한 것인지 알기에 나는 일단 아이를 말릴 수 밖에 없었다. 간신히 아이의 마음을 돌려놓고, 저녁을 먹여 돌려보냈다. 그리고 얼마 뒤, 결국 학교를 그만 두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안타까웠지만 스스로 선택한 것을 어찌하겠는가. 그저 앞으로의 삶을 격려할 수 밖에 없었다. 고3의 어느 날이었다. 아이는 혼자서 입시 준비를 하겠노라 의욕에 차 있었지만, 몇 달 뒤 걸려온 전화에는 울음기가 가득했다. 자퇴가 늦어 그 해는 검정고시를 볼 수 없었고, 자연스레 입시는 한 해 미루어졌다. 그리고 그 다음 해에도 아이는 입시에 실패했다. 


아이는 계속 방황했다. 극심한 스트레스로 인해 환청을 듣기 시작했고, 그 다음 해의 입시도 자연스레 포기해야 했다. 무엇 때문인지는 모르겠으나 아이는 여전히 삶이 숨찰 때마다 연락을 해온다. 나는 그저 잘 들어주고, 아이가 맞닥뜨린 상황이 별것 아닐 수도 있음을 얘기해 준다. 그러면 아이의 숨이 며칠 간은 부드럽다.  


이 아이는 나의 아픈 손가락이다. 타인으로서 내가 도움줄 수 있는 것에는 한계가 있음을 명확히 알지만, 아이가 연락을 하는 한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선에서 최선을 다할 수 밖에 없다. 


스물은 얼마나 빛나야 할 시절인가. 

세상이 아이에게 그 시간을 돌려주길 탄원한다. 


2019.01.05 서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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