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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니 Jan 11. 2019

한없는 연민을 통한 평화

달라이 라마는 명상을 하는 이유로 '한없는 연민을 통한 평화'를 꼽는다고 한다. 불교에서 말하는 '자비'는 이 연민이라는 감정을 기반으로 할 것이다. 


나이가 들면서 '사랑'이라는 감정보다 '연민'이라는 감정이 더 크게 느껴진다. 사랑이라는 것은 특정 대상에게만 한정되는 것이기도 하고, 대게 사랑받을 만한 가치 또는 이유가 있을 때 주어지는 것이라 어떤 면에서는 야박하게 느껴지기도 하는 것이다. 


반면에 '연민'이라는 감정은 모두에게 적용 가능하다. 그리고 대게는 자기보다 약한 상대 또는 불리한 조건에 놓인 사람에게 느끼는 감정이다. 그리고 그 아래에는 이기심 보다는 관용의 정신이 들어있다. 


우리가 악다구니를 쓰며 사는 것은 대게 내 이익을 조금이라도 더 많이 확보하기 위해서다. 거만한 상대나 불합리한 것을 주장하는 사람을 만나면 속에서 열불이 나고, 호구가 되지 않기 위해 같이 진흙탕에 뛰어드는 것을 불사하기도 한다. 


그러다가도 어느 순간, 상대의 약함을 엿보게 되는 순간을 맞닥드리면, (정말로 악한 사람이라면 그것을 공격을 위한 절호의 찬스로 잡겠지만), 대게는 연민의 감정을 갖게 되기 마련인 것이다. 그 허술함이 낯선 것이 아니라 내 안에 꽁꽁숨겨 놓은 그것과 유사하기 때문이다. 


진행 중인 프로젝트 하나를 놓고 밀고 당기기 중이다. 담당자들의 책임 회피와 말 뒤집기에 고개를 절래절래 흔들면서도, '그래, 저들도 악한 이들은 아닐 거다'하고 잠시 물러나 연민을 불러내본다.


그래봐야 아주 잠깐의 평화일테지만, 분노보다는 연민이 낫지 않겠나. 

세계 평화를 위해서라도 말이다. 


2019.01.10 서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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