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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니 Jan 26. 2019

쉘 위 댄스?

이탈리아에서 극단 생활을 하며, 신체로 나를 표현하는 것에 매료되었다. 한국에 돌아와서도 그와 유사한 극단을 찾아보았지만, 극단 HUMANBEINGS는 전 세계 유일한 곳이었기에 당연히 실패했다.


연극을 대체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일까 궁리하다 떠오른 것이 춤이었다. 라틴댄스 같이 빠르고 과시적인 춤은 엄두도 나지 않았고, 상대적으로 느리고 우아한 탱고라면 해 볼만 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약간의 두려움과 설렘을 안고 홍대 앞의 한 탱고 동호회에 등록을 했고, 그렇게 탱고라는 춤의 세계에 입문했다.


탱고는 파트너 춤이다. 그래서 파트너끼리의 호흡이 중요하고, 춤을 출 때는 온전히 두 사람의 세계가 만들어진다. 전혀 모르는 낯선 사람끼리도 종종 춤을 추게 되는데, 놀라운 것은 춤을 통해 그 사람의 성격은 물론이고 지금 하고 있는 생각 등이 순식간에 파악된다는 사실이다. 기본적으로 심장과 심장을 맞대고 추는 춤이기도 하고, 한 사람이 리드하고 그를 팔로우 방식으로 추는 춤이라 자연스럽게 상대를 읽고 이해하게 되는 것이다.


어설픈 스텝과 어색하기만 한 파트너와의 손잡기를 간신히 극복하고, 기본 스텝이 자연스러워지자 새로운 세상이 열렸다. 탱고는 기본적으로 남성이 리드하는 춤이라 리드를 잘 읽을 수만 있으면 여성은 초보자라도 꽤 근사한 춤을 출 수 있는데, 몇몇 능숙한 파트너를 만나면서 불식 간에 멋진 춤을 추는 희열을 맛보고 만 것이다.  


짧은 몇 분 간의 음악에 맞추어 낯선 상대와 춤을 추기 시작하면, 둘 만의 세계가 형성되어 온전히 상대에게만 집중하게 된다. 눈을 감고, 서로를 껴안은 채로 신체로만 지각되는 상대의 이야기를 읽어 가다 보면 어느새 파트너와 온전한 하나가 되는 순간이 찾아온다. 탱고라는 춤을 통해 만난 신비로운 세계였다. 음악이 끝나기까지의 그 짧은 시간 동안만은 서로가 서로에게 전부가 되고, 그런 감정의 극단에 도달했다 다시 현실의 세계로 돌아오면 '러너즈 하이'같은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된다. 춤을 추고 있는 그 시간만큼은 상대와 온전히 사랑에 빠지기에, 누군가는 탱고를 삼 분 간의 연애라고 말하기도 한다.


나에게 탱고를 추는 것은 춤 자체의 즐거움이나 연애적 감정의 짜릿함을 넘어 한 사람을 이해해가는 과정이었었던 듯 하다. 때로 춤이 끝나고도 연애 감정이 남아 그 언저리에서 서로가 서성였던 적도 있지만, 그 시기를 지나 한 발짝 물러나 관조하게 되니 탱고는 일종의 인간에 대한 이해였다. 초기의 상대에 대한 이성적 감정을 느끼는 단계를 지나가면, 그 감정은 사람에 대한 연민으로 바뀐다. 이해받고 싶은 마음과 사랑에 대한 갈구와 희망 그리고 좌절 그 모든 것들이 뒤섞인 인간이라는 유약한 존재에 대한 수긍이 내게는 탱고라는 춤의 유산이다.


몇 년간 꽤 부지런히 밀롱가를 다니고, 탱고의 본고장인 아르헨티나로 떠나 탱고를 배우기도 하는 등 그 세계에 푹 빠져있다 이제는 더 이상 춤을 추러 다니지 않는다. 춤 자체의 순수함을 즐기고 싶은 나의 마음과는 달리 우리나라의 탱고 동호회가 더 복잡한 의미의 사교의 장임을 지각하게 되어서이다.


하지만 한 시기 탱고라는 이 농밀한 춤의 세계에 빠져 보았던 것은 내게 있어 또 하나의 풍요로운 세계의 구축이다. 언젠가 생이 조금의 여유를 허락한다면 일 년쯤 부에노스 아이레스에 머물며 스페인어를 익히고, 춤을 추고 싶다. 그곳에는 일흔 노인들도 열정적으로 춤을 추니, 조금 늦더라도 괜찮을 것이다.


쉘 위 댄스?


2019.01.26 서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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