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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화 느티나무 한 그루

아이들에게 기댈 공간을 선물하고 싶어서

by 윤소리

* 아래 글은 정혜윤 작가의 책 "슬픈 세상의 기쁜 말(위고, 2021.8.5.)", 목차 나의 단어, 이야기 중 '꽃이 폈어' 편의 이야기입니다.



어느 해 두 분은 느티나무를 몇 그루 심었다.

나는 그때 처음으로 느티나무가 빨리 자라는 나무에 속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느티나무를 심고 몇 년 지나지 않았는데도 두 분은 그 아래 평상을 두고 밥을 먹기 시작했다. 여름날 느티나무 아래서 집에서 키운 야채로 쌈을 싸서 먹는 것이 두 분만의 럭셔리였다. 느티나무를 스치고 내려온 바람은 땀과 함께 피로와 삶의 무게도 씻겨주었다. 강과 나무의 바람은 두 분을 삶에 부드럽게 녹아들게 했다. 두 분은 기분 좋은 바람이 부는 날은 거울을 볼 필요가 없다고 했다.


“바람은 누구든지 훨씬 예쁜 얼굴로 바꿔준다니까.”

대책 없이 낭만적인 면이 있던 엄마의 말이다.


그러던 어느 날, 오랜만에 농장을 찾은 나는 트럭이 집 앞에 서 있는 것을 보았다. 인부들이 느티나무들을 뿌리째 뽑고 있었다. 마당에는 낡은 수건을 목에 맨 아빠가 삽을 들고 땀을 닦고 서 있었다. 나는 아빠에게 달려갔다.

“아빠 무슨 일이에요? 왜 나무들을 뽑는 거예요?”

나는 그때 아빠의 입에서 나온 대답을 평생 잊지 못할 것이다.

“곧 어린이날이니까.”



“그게 나무랑 무슨 상관이에요?”

“나무들을 초등학교 운동장에 심어주려고.”

“왜요?”

“애들이 축구하다가 나무 그늘 아래서 땀도 식히고 선생님한테 야단맞으면 나무 뒤에 숨어서 울기도 하고 친구랑 싸워도 나무에 기대면 좋잖아. 아무리 서러워도 어디 기댈 데가 있으면 눈물을 그치게 돼 있어.”



그 말을 들을 때 아빠의 얼굴에서 나무에 기대 눈물을 참던 소년을 잠깐 본 듯한 기분이 들었다. 그리고 그 뒤로 이 이야기는 내 마음이 수시로 기대는 이야기가 되었다.






마지막 대화 중 화자의 아빠가 한 말.

선생님한테 야단맞으면 나무 뒤에 숨어서 울기도 하고. 에서 저도 모르게 그 나무 뒤에 숨어서 울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순간 울컥하면서 눈이 땡땡해지더니 와락 눈물이 쏟아졌지 뭐예요. 야단칠 선생님도 없는데, 저는 왜 느티나무 뒤에서 울고 싶단 생각이 들었을까요?





*이미지 출처: 이돈삼, "나를 키운 나무...600번의 새봄_'모교' 담양 한재초등학교의 느티나무", 오마이뉴스, 18.05.09 https://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2432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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