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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VOKA Dec 23. 2022

I. 골고다 언덕

1화

※ 이야기 속 사건과 인물은 모두 허구를 바탕으로 하며 실제와 관련이 없음을 밝힙니다. 현재나 과거에 존재했던 특정 인물 또는 상황과 조금이라도 유사하다면 그것은 우연의 일치일 뿐입니다.


양 어깨에 똥바가지 짊어 메고 그놈이 돌아왔다.


이 놈은 나와 전생에 원수지간이었던 것 같다.


내 삶에 돌부리와 같은 존재들이 몇몇 있었지만 대부분 제풀에 지쳐 스스로 내 곁을 떠났었다.


하지만 이 놈은 다시 돌아와 버렸다. 다시 내 몸과 마음을 피폐하게 만들려고 돌아온 것이다.



3년 전,


오래전 중소기업이었던 회사가 대기업으로 흡수되며 나름 말년에 삶이 피려나 생각했었다. 그런데, 무늬만 대기업일 뿐 내 손에 쥐어지는 신사임당 누님과 세종대왕 형님이 헤쳐 모였다가 뿔뿔이 흩어지는 느낌이 들기 시작한다.


그래도 대기업 무늬를 달고 있다 보니 복지라는 타이틀은 일가친척들에게 생색내기가 좋은 수단이었다.


그런데 올 것이 오고야 말았다.


매년 20~30%씩 성장해오던 사업부였지만 이놈들은 호시탐탐 기회를 엿보며 매각할 생각만 하고 있었고, 업계에서 마이너스의 손으로 알려진 회장은 결국 우리를 팔아넘기게 된다.


사람과 근무지는 그대로 인대 대기업에서 졸지에 이름 모를 신생 기업이 되어버리니 중소기업 혜택은 많았지만 제약이 더 많았다.


중요한 건 이 놈, 나랑 전혀 관계없는 놈이었는데 회사에 모든 일을 혼자 하는 것 마냥 포장질을 하고 다니니 속편해 보이는 내가 잠시 그놈의 일을 도와주게 된다.


그게 화근이었다.


이 놈이 싸질러 놓은 똥이 한 바가지를 넘어서고 있는 상황에서 신생기업으로 탈바꿈하니 닥쳐올 후폭풍과 수습 불가 상황을 예상하곤 결국 퇴사란 카드를 꺼내 든다.


난 단지 그놈과 2개월 여 엑셀만 잠시 끄적였을 뿐인데...


무슨 소린지도 하나도 모를 막노동판 십장이 되어 버렸다.


회사도 이해 가는 게 짧은 시간 동안 아주 사소한 일만 도와줬다는 걸 알고는 있지만 단어 하나라도 내가 더 알고 있다고 수비수였던 포지션이 급 공격수로 전환되어 버린 것이다. 


그런데, 새로 부임한 사장은 '도 아니면 모'로 싫으면 나가란 배짱을 부리는데 인생 말년에 어디 가서 비비겠냐라고 생각하며, 이번 기회를 발판 삼아 인생 도약이라는 원대한 목표를 세운다.


지금 와 돌이켜 보면 그때 과감히 박차고 나와 배달의 민족에 합류했었어야 했다.


중요한 건 이 놈이 한 달도 채 안 되는 기간 인수인계란걸 해준다.


'..차장...여여..기 문서...에...보면 '


그렇다. 이 놈은 심각한 말더듬 장애를 안고 있었다. 함께 하루라도 옆에 있으면 나도 모르게 말더듬이 온몸으로 전염되는 것만 같았다.


시간은 그렇게 흘러 그 녀석의 퇴사일은 다가오지만 경험해보지도 못한 일을 인수받으며 도통 뭐라 하는지 머리에 하나도 안 들어온다.


역시 정해진 날짜에 칼같이 퇴사하며 나에게 보내는 눈 빛과 전해지는 메아리는 마치 복화술이라도 하는 것처럼 '넌 이제 뒤졌어!'라고 또렷이 전달되었다.


이놈이 나간 후 가장 큰 문제는 진행하던 프로젝트들의 변경계약을 모두 해야 했는데,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나지만 다른 동료들 역시 마찬가지였기에 누구한테도 도움을 받을 수 없었다.


심지어 L공사의 나이 지긋하신 어르신께서 서류를 짚어 던지며 나한테 한마디 한다.


"야! 너네 회사가 있는 거 맞니?"


얘네들은 걸핏하면 법인인감 찍어오라고 하는데 이게 전 회사 법인인감을 받아와야 상황에선 매우 곤란스러운 게 이건 회장까지 승인을 받아야 하기에 짧게는 1주 이상 길게는 2주 이상도 걸린다. 당연 우리 갑이신 L공사 어르신께선 당장 제출하라 닥달하다 결국 폭발하고 만 것이다.


이쯤 되니 정신병이 슬슬 몰려오기 시작한다.


'나는 누구? 여긴 어디?'를 왜 치며 울고 싶지만 어떻게 울어야 하는지 조차 까먹은 채 싸놓은 똥들로 샤워하듯 내 몸으로 쏟아지는 것만 같았다.


후에 알았지만 '번아웃'이란 걸 난생처음 겪게 된 것이다.


정신적인 고통에 휩싸이며 우울증이 극에 달할 무렵, 결국 어렵사리 예약하고 정신과 치료를 받으러 찾아가 본다.


상담치료 첫날,


내가 평소에 책은 안 읽어도 자기 계발서나 심리학 관련 책들은 주기적으로 섭렵하고 있었기에 책에서 본 것과 같은 내용들이 머리를 스치고 지나간다.


속으로 외쳤다.


'썅!'


그리고, 한순간 모든 마인드를 바꾸어 버렸다. 모르면 물어보고 욕하면 한 귀로 흘려듣자라는 마인드를 심는다.


그렇게 단 몇 개월 만에 모든 게 달라졌다.


똥통속에 빠져 악취를 풍기며 그 누구도 거들떠보지 않던 외톨이였지만 어느새 난 회사의 구원투수가 되어 있었던 것이다.


신입 사장의 인정과 함께 내 평생 등지고 살 것 같았던 골프란 운동과도 친해지며 베란다에는 용품들이 자리 잡기 시작한다.


승승장구 인생이 시작된 것이다.



다음 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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