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VOKA Dec 24. 2022

II. 골고다 언덕

2화

1년 전,


가까스로 불을 끄며 구원투수 역할과 함께 내가 맡은 업계에 얼굴도 알려지며 내외 적으로 인정받기 시작한다.


다만 맡은 업무 특성상 접대 문화에 특화되어 있어야 했기에 저녁엔 룸살롱 웨이터가 되고 주말엔 골프장 캐디가 된 듯 하루도 쉼 없이 누군가의 수발이 되어주는 피곤한 삶이 지속된다.


그러던 어느 날 집으로 마스크 한 박스가 배달된다.


묘한 기운이 느껴지며, 수십 년간 쌓아온 장인정신의 촉이 가동되기 시작한다.


'이거 분명 그놈이 보낸 거 같은데?'


마스크가 아쉽던 때인지라 한 박스라는 분량은 상당했었다. 아내도 흡족했는지 운영하던 미용실에 잔뜩 들고 간다.


그런데, 이놈에 마스크 줄은 시도 때도 없이 끊어진다. 


그놈하고 똑 닮아 있었다.


후에 알았지만 아내는 미용실에서 단골들에게 나눠준 마스크 덕에 싸구려 미장원으로 전락할뻔했다고 한다.


아니나 다를까.


그로부터 한 달 뒤 그놈이 들어온다. 


마스크는 전 회사에서 그놈이 벌려놓은 똥바가지의 산물이자, 처치곤란이 되어 쌓여 있던 쓰레기를 선심 쓰듯 내게 건넨 것이었다.


더 웃긴 건 제 버릇 남 못준다고 오자마자 자기가 그렇게 극찬하던 그 회사 사장 욕을 어찌나 하던지 이놈이 그 회사 가서 우리 회사 욕을 꽤나 했겠다는 생각이 밀려오기 시작한다. 


중요한 건 언 한 달을 인생극장이라도 찍어 온 것인 양 볼 때마다 연재를 해준다.


두 어달 지났을까?


둘만의 술자리가 생기게 되고 허심탄회하게 이야기하던 중 그놈이 내게 말한다.


" 차장, 혹시 나한테 하고 싶은 말 있어?"


난 기다렸다는 듯이 한마디 했다.


"저... 부장님, 하루에 제 얘기 5분만 들어주세요."


사람들 모여 있는 흡연실에 그 녀석이 나타나면 여지없이 그놈이 말 자르고 끼어든다. 말이라도 맛깔나게 하면 추임새라도 넣어줄 텐데 온통 자기 얘기로 화두를 바꿔 버리니 냉랭한 분위기 속에 하나 둘 자리를 떠버린다.


오죽하면 술자리에서 내 얘기 5분만 들어 달라고 했을까?


앞날이 선하게 그려지며 불길한 예감이 밀려온다.



다음 편에 계속

이전 01화 I. 골고다 언덕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