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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VOKA Dec 25. 2022

III. 골고다 언덕

3화

1부, 골고다 언덕 (3)

이놈의 특기가 하나 있다.


'1+1=2'를 이놈은 '(x-a) ²+(y-b) ²=r²' 이렇게 원의 방정식으로 바꿔놓고 세상 온갖 짐을 짊어지고 골고다 언덕으로 올라가버린다.


그나마 다행인 건 이놈이 언 6개월 여 생지옥에 불려 가 아주 가끔씩 회사에 오니 속 편히 살 수 있었는데, 다시금 기어 들어와 수작을 부리기 시작한다.


서로 부서가 다르더라도 이 놈은 어떻게든 엮어 놓고 위태롭다 싶으면 빤스라도 벗어놓고 도망쳐 버린다.


중요한 건 나도 직장 생활 20년 차에 다다르고 있고 그중 달인 못지않은 '촉과 위기관리 능력'을 쌓아왔다.


이 놈만 근처에 오면 싸한 기운 돌기 시작하며 아니나 다를까 뒤에서 수작질을 얼마나 해놨던지 결국 덫에 걸리고 만다.


그렇게 한 2개월 여 내 본분을 잊고 그놈의 수작질에 넘어가 고생은 고생대로 하고 돈 안 되는 수습질만 열심히 해댄 나로선 연말이 다되어 회사로부터 욕은 욕대로 먹는다.


중요한 건 이놈이 화도 낸다는 걸 보게 된다.


틈만 나면 수작질을 부리며 골고다 언덕으로 올라가는 녀석 덕에 늘 안테나 세우고 다니던 중 우리 팀원을 건드리는 걸 보게 된다. 대놓고 말하진 못했지만 나 또한 달인급 위기관리 능력을 소양하고 있기에 단칼에 잘라버렸다.


2주가 흘렀을까, 팀 간 자리 재 배치가 있던 날이었다.


우리 팀은 자리 재배치에 해당하지 않았는데 아침 부서 간 회의에서 대뜸 우리 팀 자리로 이동하겠다고 하는 거다. 그것도 말도 안 되는 이유를 들면서 말이다. 분위기는 그놈이 회사의 모든 짐을 짊어지고 골고다 언덕으로 올라간다고 생각했는지 그놈의 손을 번쩍 들어준다. 결국 예정에도 없던 우리 팀이 자리 이동을 하게 된다. 


회의 끝나고 30분이 흘렀을 까.


그놈은 자기 식구들 데리고 심지어 까지 꾸리고 와 우리 자리 근처에서 무언의 시위를 벌인다.


혀를 내둘렀다. 오전엔 급한 일도 많아 대부분 업무 끝날 무렵 자리 이동을 하는데 이놈은 '엿 좀 드셔보세요'하며 보란 듯이 일을 벌였다. 


자기 일을 잘라버렸다는 괘씸죄가 발동된 것이다.


화가 하늘 끝까지 솟구쳤지만 내가 그동안 키워온 또 하나의 능력이라면 자비와 용서였기에 아미타불을 외치며 자리를 이동했지만, 자리 이동 후 우리 팀원들은 모두 반차를 쓰고 집에 가버렸다.


마음 같아선 사장실 문이라도 걷어차고 들어가 사직서라도 던지고 나오고 싶었지만 왠지 그날은 내가 골고다 언덕을 올라가는 심정으로 불타는 금요일을 온몸으로 느꼈다.


그렇게 며칠뒤 이놈이 흡연실에 와서 자리 옮긴 이야기를 하며 미안했니 어쩌니 떠들어대기 시작한다.


아무리 내가 자비와 용서를 마음에 심고 다닌다지만 할 말은 해야겠기에 한마디 던진다.


"그러는 거 아닙니다, 부장님!'


나 보다 두 살 연배였고 그나마 다행인 건 그동안 나도 부장으로 진급해서 동급으로 얘기할 수 있었지만 최대한 형님 형님하면서 비위를 맞추어 주고 었다.


하지만 그날은 솔직한 마음 담아 한마디 던졌을 뿐인데 돌아온 건 동네 미친 형의 모습을 보게 된다.


이때 난 '이놈과 절대로 말을 섞으면 안 되겠구나'라는 마음속 깊숙한 곳에서의 울림이 느껴졌다.


도대체 나한테 왜 그러는 걸까?



다음 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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