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높이의 깊이> 신두호 詩
떨어지고 싶다는 생각을 해본 적 있다. 삶이 너무 버거웠던 날, 내가 꿈을 향해 가는 길이 내 길이 맞는지 확신할 수 없던 날. 지나온 길마저 후회로 무너지는 순간들. 그럴 때면 마음은 바닥을 향했고, 더 이상 버티지 않아도 되는 장소로 데려다주길 바랐다. 그러나 떨어지는 순간을 상상하면, 발끝이 아찔해지고 그 두려움이 다시 나를 붙잡았다.
'떨어지고 싶다'는 감정은 지금의 불안과 고통을 떨쳐내고 싶다는 간절한 갈망이었다. 그러나 떨어지는 일이 나를 편안하게 해 줄 수 있을까? 죽음은 행복으로 옮겨가게 해주지 않는다. 나는 또다시 나 자신을 붙잡고, 조금만 더 걸어보자고 스스로를 다독였다.
신두호 시인의 <높이의 깊이>를 마주하고 나서, 지금 내가 가고 있는 길이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 애쓰는 몸부림이고, 그 몸부림이 지지부진해 보일지라도, 이 모든 행위는 '깊이'를 쌓는 일이라고, '높이'를 향해 보는 것이 아닌, 내가 걸어온 '깊이'를 돌아보게 되었다.
높은 곳에서 떨어진다면 착지할 수 있을까
바닥이 높은 곳이 되고
다시 떨어진 곳에서 높이를 발견한다면
살아 있다는 사실을 실감하게 될까
양손을 펴고
번갈아 뒤집어보면서
실제로 태어난 것에 감사해 할 수도
있겠지만
아무것도 쥘 수 없을 때 손은
스스로의 깊이에 매료되었다
커지는가
무한해지는가
건네줄 수는 있는지
어쩌면 이는 누군가의 두 눈을 가리기 전에
피 흘리는 손목을 거두어들이는 일
물속에 팔을 담그고
바닥을 더듬으면 닿을지도 모르는
수심에서
바닥은 잃어버린 높이를 찾는다
내디딘 무게만이
매번 새로워지는 곳으로
떨어진다
'높은 곳에서 떨어진다면 착지할 수 있을까' 불안을 떨쳐내고자 하는 감정의 낙하, 혹은 자아의 재구성을 위한 시도이다. 떨어질 수 있다는 것은 지금 내가 높은 곳에 있다는 증거이며, 그 바닥은 단순한 종착점이 아니라 새로운 높이가 될 수 있다. 다시 떨어질 곳이 생기고, 올려다봤을 때 내가 올라갔던 높이가 존재한다. 그 '높이를 발견한다면'
'살아있다는 사실을 실감하게 될까' 존재의 감각을 되찾았을 때 '양손을 펴고 / 번갈아 뒤집어 보면서 / 실제로 태어난 것에 / 감사해 할 수도 있겠지만' 존재하고 있다는 데에 감사해 할 수도 있겠지만
'아무것도 쥘 수 없을 때 손은 / 스스로의 깊이에 매료되었다' 비움 속에서 자기 자신의 가능성과 확장을 본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건네줄 수 있는지'. 단지 개인의 내면 성찰에 그치지 않고, 타인에게 손을 내밀 수 있는가. 도움이 필요한 누군가에게 손을 내밀 수 있는지, 혹은 도움을 요청할 수 있는지.
결국 중요한 것은 '누군가의 두 눈을 가리기 전에', (그 누군가는 나 자신이 될 수도 있고, 타인이 될 수도 있다) 회피하지 않고, '피 흘리는 손목을 거두어 들'인다. 현재의 아픔을 직시하며, 치유한다.
고통을 치유하기 위해 '물속에 팔을 담그고' 나아갈 길을 찾기 위해 '바닥을 더듬으'며 과감하고 더 깊게 들어간다. '닿을지도 모르는 / 수심'으로.
'바닥은 잃어버린 높이를 찾는다' 정면을 직시했을 때 나는 나를 똑바로 마주 볼 수 있으며 결국 깊이를 발견한다.
'내디딘 무게만이 / 매번 새로워지는 곳으로 / 떨어진다' 지금 내가 버거워하고 있는 이 '무게'는 나를 성찰하게 만들고, '새로워지는 곳으로 / 떨어'지게 한다. 곧, 떨어진다는 것은 끝이 아니라 변화의 시작이며, 지금 내가 걷고 있는 이 길은 내 안의 깊이를 만들어 가는 과정이다.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높이'보다 '깊이'이다.
하나에 매몰되면 다른 중요한 것을 놓치게 된다. 특히 힘들고 고통스러운 순간엔 더욱 그렇다. 주위를 살피지 못하고, 내 안에 갇혀버린 채, 이겨내려 하지도 못하고 누군가를 탓하거나 후회의 수렁 속에서 스스로를 고립시켰던 순간들. 나에겐 그런 날들이 많았다.
신두호의 시 <높이의 깊이>는 그런 순간을 경계하게 하고, 위로를 건네며, 천천히 용기를 일으켜 세운다.
우리는 어떤 '높이'에 다다르기 위해 노력하고, 무너지고, 다시 일어서며, 또다시 나아간다. 그 모든 몸부림이 결국 높이를 향한 발걸음 같지만, 사실은 보이지 않는 '깊이'를 쌓는 일이었다는 것. 시는 내게 그렇게 가르쳐준다.
앞만 향하던 시야가, 문득 뒤를 돌아보게 한다. 내가 걸어온 발자국들, 그 아래에 차곡차곡 쌓여 있던 깊이. 지금도 내가 쌓고 있는 깊이.
그리고 그 깊이를 쌓게 했던 건 결국 나에게 주어진, 피하고 싶었던 '무게'였다. 시는 말한다. 무게를 두려워하지 말라고. 생각해 보면 정말 그 무게는 나를 '새로운 곳으로' 데려다주었다. '떨어진다'라는 말이 쓰였지만, 그 떨어짐은 두려움이 아닌, 새로운 도약의 에너지로 다가왔다.
바닥에서 다시 높이를 발견한다.
이 시가 그대의 '높이의 깊이'를 발견할 수 있는 시가 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