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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임자 산딸기 버터 마들렌

새로 만난 여름 친구

by 거울새

한낮에 차 문을 열면, 마치 사우나 문을 열었을 때처럼 후끈한 바람이 앞다퉈 쏟아져 나왔다. 자동차 안에선 한낮의 강렬한 햇볕을 그대로 머금은 자동차 시트가 마치 온돌인 양 지글지글 끓고 있었다. 한껏 가벼워진 옷차림 속에도 아직 발열 내의를 입고 있긴 했지만, 이제 에어컨 없이 차에 타는 게 쉽지 않은 계절이 돌아왔다.


바야흐로 여름이다.


남들은 미쳤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사실 나는 아직도 난방 텐트 안에서 잠을 자고 있다. 나라고 덥지 않은 건 아니었지만, 솔직히 아직도 새벽녘엔 쌀랑한 바람이 코끝을 스치곤 했다. 그 서늘한 바람이 알게 모르게 몸 주변을 감돌다 보면, 십중팔구 몸 상태가 나빠졌다. 열이 올라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늘어져 있는 것보단 조금 덥고 답답한 편이 나았다. 그래서 언제나 여름은 내게 쉽지 않은 계절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름은 나름 매력적인 계절이다.


무덥고 힘든 날씨가 이어지기에 더 빛나는 과일들이 있었고, 더 짜릿한 시원함이 있었다. 평소엔 과일에 그다지 큰 관심을 두지 않는 나도 여름만큼은 자꾸 과일에 눈을 돌리게 됐다. 형형색색의 새콤달콤하고 시원한 과일들은 지치고 힘든 여름을 견딜 수 있도록 도와주는 든든한 아군이었다.


이번 주엔 산딸기를 구매했다. 인근 지역에 산딸기 재배지가 있는지 부쩍 자주 보이는 데다, 가격도 나름 괜찮아서 근 10년 만에 산딸기를 샀다. 사실 나는 산딸기를 그리 선호하는 편은 아니다. 일단 금방 무르는 데다 보기보다 깔끔하게 손질하기가 힘들었다. 특히 산딸기는 특유의 구조상 내부에 벌레가 쉽게 꼬일 수 있는 형태인데, 이 벌레라는 게 식초 물에 담가놔도 쉽게 죽지 않는 데다, 죽는다고 해도 기어 나와 죽는 게 아니라 알맹이 안쪽 사이 어딘가에 그대로 남아서 사실상 벌레를 완전히 제거하는 게 힘들었다. 조금만 손을 타도 형태가 쉽게 어그러져서 원물의 형태를 그대로 살리려다 보면 더욱 곤란한 상황이 연출되곤 했다. 게다가 마치 무화과처럼 눈길을 끄는 매혹적인 외형에 비해 맛은 조금 밍밍한 경우도 많아서, 다양한 과일이 쉼 없이 쏟아지는 여름엔 더더욱 손이 가질 않았다.


오랜만에 다시 마주한 산딸기는 변함없이 선명한 붉은빛을 자랑하며 매혹적인 외모를 뽐냈다. 비록 깔끔히 씻어도 안쪽을 가만히 쳐다보면, 여전히 아주 작은 벌레가 당당하게 꼬물꼬물 발걸음을 옮기고 있어서 세심하게 씻어낸 노력을 무색하게 만들기도 했지만, 작은 알맹이를 입안 가득 털어 넣으면 은은한 단맛이 한 번에 터져 나오면서 자못 싱그러운 새콤달콤함을 느낄 수 있었고, 특유의 톡톡 터지는 자잘한 씨앗의 식감이 입안에 신선한 감각을 선사했다.


이 싱그러운 새콤달콤함을 마들렌에 담아낼 수 있을까?


처음 계획한 마들렌은 산딸기를 잔뜩 으깨 넣은 산딸기 마들렌이었다. 전자레인지로 적당히 수분을 제거한 산딸기를 절구로 으깬 뒤 마들렌 반죽에 넣고, 흑임자를 함께 섞어 은은한 고소함으로 맛의 균형을 맞춰줄 생각이었다. 하지만, 산딸기는 오디와 다르게 아주 자잘한 알맹이 안에 하나하나 모두 제법 큰 씨앗이 존재했고, 웬만한 노력으론 절구를 이용해 그 씨앗을 다 으깰 수가 없었다. 게다가 씨앗의 부피도 꽤 커서 내가 생각했던 것과는 사뭇 다른 반죽이 완성되었다. 새끼손가락으로 반죽을 살짝 찍어 먹어보니 역시나 산딸기의 존재감이 너무 부족했다. 어떻게 해야 선명한 산딸기의 존재감을 심어줄 수 있을까.



순간, 버터가 떠올랐다.


얼마 전 인터넷에서 유명 식빵 브랜드가 판매 중인 딸기 버터를 본 적이 있었는데, 산딸기로도 충분히 매력적인 산딸기 버터를 만들 수 있을 것 같았다. 마들렌 반죽에 넣고 남은 산딸기에 질 좋은 버터를 섞고 약간의 레몬즙과 소량의 설탕을 더했다. 레몬즙과 설탕을 넣으니 한층 맛이 선명해진 산딸기가 농후한 버터의 풍미를 뚫고 자신의 존재감을 자랑했다. 그렇게 흑임자 산딸기 버터 마들렌을 만들게 되었다.


퐁실하게 부푼 마들렌을 반으로 자르고 상큼한 산딸기 버터를 한 겹 두껍게 바르니, 분홍빛 버터 사이사이 붉게 물든 산딸기 과육이 마치 치타 무늬처럼 강렬하게 눈길을 끌었다. 산딸기 버터의 맛이 제법 저돌적이라 괜찮을까 싶었는데, 흑임자의 고소함이 산딸기 버터의 상큼하면서도 크리미 한 풍미를 아주 정중하고 부드럽게 감싸 안았다. 톡톡 터지는 산딸기의 선명한 식감처럼 은근한 고소함 속에 물들듯 퍼져나가는 새콤달콤한 산딸기 버터가 너무 매력적이었다. 아무래도 여름을 함께 견뎌줄 또 하나의 친구를 발견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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