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 티라미수 마들렌

가을을 배웅하는 맛

by 거울새

결국엔 욕심을 부리고 말았다.


나는 원래 그렇게 욕심이 많은 사람은 아니다. 없으면 없는 대로, 불편하면 불편한 대로 그럭저럭 적응해서 사는 데 익숙한 편이고, 몸이 안 좋아진 이후로는 이런저런 이유에서 포기해야 하는 게 더 많아졌기에, 역시 욕심과는 조금 거리가 먼 사람이라 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유독 욕심을 내려놓지 못하는 것들이 몇 가지 있는데, 그중 하나가 재료 욕심이다. 무엇보다 제철 재료에 대한 욕심은 조금 과한 편이 맞다고 생각한다.


올해는 여름 한 철을 유난히 힘들게 보냈다. 여름의 여파는 지금도 계속되고 있고, 다가올 겨울을 생각하면 나는 지금 최대한 몸을 아껴야 하는 상황이다. 가을 제철 재료에 눈이 돌아가서 무리한 작업을 진행하는 일은 당연히 피해야 했다. 특히, 보늬밤 조림같이 손이 많이 가고 번거로운 일이라면 무조건 외면해야 했다. 하지만, 올해도 마트에서 할인 중인 햇밤이 눈에 들어왔다. 조금만 만들면 얼마 안 걸리지 않을까. 고작 500g인데, 금세 만들지 않을까. 뭐, 엄밀히 말해서 틀린 말은 아니다. 그리 힘든 일도 아니고, 엄청난 노동을 요구하는 일도 아니다. 단, 몸이 멀쩡할 때를 전제로 한 이야기이다.


결국, 알이 굵고 매끈한 햇밤을 한 봉지 가득 구매하고 말았다.


몸 상태가 그리 좋은 건 아니었다. 상태를 생각하면 애초에 구매하지 말아야 했다. 하지만, 또다시 구매했고, 밤은 언제나처럼 냉장고 속에서 내 손길을 기다리며 말없이 나를 재촉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올해도 보늬밤 조림을 만들었다.


기왕 만들 거면 온전한 보늬밤 조림을 만들고 싶어 정성껏 밤을 손질했다. 아무런 흔적도 없이 속에서 큰 듯한 커다란 애벌레를 2마리 정도 만나긴 했지만, 올해는 대체로 밤 상태가 그리 나쁘지 않았다. 브랜디를 살짝 넣고, 알아차리지 못할 정도로 미량의 흑당을 섞었다. 시럽의 맛을 보니 절로 웃음이 났다. 이 정도면 양은 작아도 어디 가서 빠지지 않는 보늬밤 조림이 되리라. 한때의 기쁨과 즐거움이 되어주리라. 잘했다 싶었다.


그러나, 양이 작다고 작업 시간이 짧아지는 건 아니었다. 물론, 조금 짧아지긴 하겠지만, 보늬밤 조림이 번거로운 이유는 애초에 해야 할 일이 꽤 많기 때문이다. 양이 작다고 과정이 줄어드는 건 아니었기에 결국 종일 몸을 계속 움직여야 비로소 만족스러운 보늬밤 조림을 얻을 수 있었다. 그리고 그 피곤함은 알게 모르게 내 몸 여기저기에 차곡차곡 쌓이고 있었다.


인스타그램에 따로 언급하지 않아도 뭔가 바쁘고 피곤한 건 보통 이런 이유 때문이다. 요즘엔 퀴즈를 진행하기 때문에 마들렌에 사용하기 전엔 굳이 미리 작업한 재료에 대해서 언급하지 않는다. 괜스레 김이 빠지는 일이 될 수도 있으니까. 그래서 언제나 바쁘다. 그렇다고 모든 재료가 마들렌에 사용되는 건 아니다. 그렇게 열심히 쟁여 두어도, 상황에 따라 쓰지 못하고 지나가는 재료도 많다. 하지만, 어쩌면 쓸지도 모르니, 굳이 욕심을 내게 된다. 저번 봄에 그런 식으로 만들어 둔 재료 중 아직 쓰지 못한 재료가 지금도 몇 가지나 냉장고 한 편을 차지하고 있다. 아마, 저것도 내 욕심이겠지. 그럼에도 제철 재료에 대한 욕심을 쉬이 놓지는 못한다. 어쩌면, 혹은, 언젠가란 말을 붙이며 체력을 짜내고, 냉장고를 채워갈 뿐이다.


꼭 보늬밤 조림을 만든 탓은 아니었겠지만, 얼마 전엔 고열로 또 며칠을 움직이지 못했다. 건강을 생각하면 미련한 짓임을 알고 있다. 그래도 완성된 보늬밤 조림을 맛보고 나니, 이 정도 욕심은 부려도 괜찮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입안에 퍼지는 부드러운 달콤함을 느끼며 씁쓸한 미소를 띠어본다.


올해는 보늬밤 조림을 만들기 전 워낙 많은 밤 마들렌을 만들었기에 따로 마들렌은 만들지 않으려다가 저번 주 사용하고 남은 마스카포네 치즈를 소비하기 위해 밤 티라미수를 주제로 마들렌을 만들어 봤다. 이미 보늬밤 조림을 만드는 걸로 내 욕심은 다했으니, 더 이상 몸 상하는 일이 없도록 그저 보늬밤 자체의 맛을 오롯이 담은 형태로 만들었다.



그렇게 완성된 밤 티라미수 마들렌. 밤을 섞은 마스카포네 크림과 보늬밤 시럽에 적신 마들렌, 작게 잘린 보늬밤 조림과 보늬밤 가루까지, 나름 티라미수의 구성 요소를 성실히 담아냈다. 적당히 촉촉하고 부드러운 식감 속에 은은한 보늬밤 조림의 풍미가 가득 담겨 있었다. 그냥 보내긴 아쉬운 아름다운 가을의 맛. 밤 티라미수 마들렌의 묵직한 달콤함이 짧은 가을의 아쉬움을 위로하는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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