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말을 향해 가자.
불과 며칠 전만 해도 올해의 마지막 달을 어떻게 보내야 할지 많이 고민했던 것 같은데, 막상 12월이 되고 나니 묘하게 멍한 기분이 들었다. 벌써 한 해가 끝난 건가, 진짜 올해도 이렇게 지나가는 건가. 사실, 올해가 한 달밖에 남지 않았다는 게 도무지 믿어지지 않았다. 왠지 긴 꿈을 꾸고 있는 것 같았다.
심란한 마음을 접어두고, 요즘은 정리에 몰두하고 있다. 올해 썼던 글을 정리하고, 사진도 정리하고, 냉장고에 든 재료도 정리하고 있다. 집 정리 이후 그간 정리하지 못했던 많은 것들을 조금씩 정리하기 시작했다. 그중 가장 힘쓰고 있는 부분은 냉장고 정리다.
최근까지도 어머니께서는 고질적인 허리 통증으로 고생하고 계시다. 언제든 상태가 나빠질 수 있고, 위기의 순간이 항상 코 앞에 도사리고 있었다. 이 때문에 요 몇 주간은 좀 더 편하게 끼니를 해결하기 위한 노력이 끊임없이 이어졌다. 그리고 냉장고가 가득 찼다. 물론, 식재료가 다양한 건 언제나 환영할 만한 일이다. 메뉴의 선택권이 늘어나고, 어머니도 나도 숨통이 트인다. 하지만, 나는 마들렌을 만든다. 새로운 재료를 끊임없이 사 모으고, 혹시나 사용할지 모르는 제철 식재료를 여기저기 보관해 둔다. 그러다 보니, 냉장고가 가득 차 있으면 결국 부담이 된다. 못 먹고 버리는 식재료가 나올 수도 있고, 꼭 필요한 재료를 못 사게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냉장고 안에는 어머니와 나의 한 해가 담겨 있었다. 각 계절의 기억이 빼곡하게 들어차 있었다. 그리고 마들렌에 대한 나의 욕심이 가득 담겨 있었다.
그래도 비워내야 했다. 저장은 소비를 전제로 한다. 그득그득 모으기만 할 거면, 저장할 이유가 없다.
‘아끼다 똥 된다’라는 말은 괜히 있는 말이 아니다.
어쨌든 목표는 정체된 재료를 조금씩 비워내는 것이었다. 기왕이면 한 해의 시간이 지나, 다시 저장이 가능한 시기를 코 앞에 둔 것, 예를 들면 딸기 같은 게 첫 번째 대상이었다. 한 달 정도만 있으면 새로운 딸기를 구매할 것이고, 그럼 냉동실 가득 들어있는 딸기들은 보관의 의미를 잃게 될 것이다. 그래서 오늘은 딸기 정과를 이용한 마들렌을 만들었다.
‘딸기 정과’
지난겨울의 끝자락 나는 딸기 정과를 알게 되었다. 딸기 정과의 맛에 전율했고, 딸기 정과를 원 없이 만들었다. 어쩌면 기억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나는 올해 3월 말에 이미 딸기 정과로 마들렌을 만들었다. 그만큼 인상적이고 만족스러웠던 저장 식품이었다. 하지만, 마들렌을 만들고 난 이후엔 그다지 쓸 일이 없었다. 계속 다른 재료들을 쓰기 바빴고, 마들렌 외 다른 걸 만들만한 여유도 별로 없었다. 그렇게 딸기 정과는 냉동실 한 편을 차지한 채 한 해의 끝자락에 이르게 되었다. 딸기 정과의 맛은 여전히 뛰어났다. 그러나, 앞으로 몇 주 후면 제법 매력적인 가격에 품질 좋은 햇딸기가 하나, 둘 나타날 것이다. 당연히 햇딸기 정과도 만들게 될 것이고, 그럼 더 이상 묵은 딸기 정과를 보관할 이유가 없었다.
사실, 저번에 만든 딸기 정과 마들렌은 다소 아쉬움이 있었다. 딸기 정과의 쨍하게 선명한 풍미를 고스란히 담기 위해 마들렌을 만들었는데, 막상 마들렌을 만들고 보니 생각보다 딸기의 맛과 향이 너무 은은했기 때문이다. 물론, 다가오는 봄에 더없이 어울리는 맛이었지만, 아쉬운 마음은 어쩔 수 없었다. 그래서 이번엔 좀 더 선명한 딸기 정과의 풍미를 담아내기로 했다.
재료 자체에는 큰 변화를 주지 않았다. 다만, 저번과 달리 브랜디를 적당히 희석해 딸기 정과를 불렸다. 딸기 정과를 브랜디에 불리면 과육이 부드러워져 반죽에 섞기도 좋아지고, 단맛이 어느 정도 잡힌다. 단맛을 적당히 조절한 뒤 갈아 넣으면 정과의 맛을 훨씬 선명하게 느낄 수 있다. 소량의 레몬 제스트로 상큼함을 더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가장 중점으로 뒀던 건 역시 정과의 아름다운 맛과 향을 살리는 것이었다. 또한, 그 모습을 오롯이 담는 일에도 신경을 썼다. 맛은 입으로 보지만, 눈으로도 느낀다. 그래서 저번처럼 정과를 함께 굽지 않고, 다 구운 뒤에 살짝 올려서 짧게 한 번 더 구워냈다.
한겨울, 마들렌 위에 봄이 피어났다. 벚꽃이 한창 흩날리는 계절이 그리워질 만큼 아름다웠다. 화려한 멋만큼이나 화사한 맛도 좋았다. 이번에는 선명한 딸기 정과의 풍미가 오롯이 담겼다. 덕분에 눈과 입이 더없이 화사하게 빛날 수 있었다. 멍했던 기분이 맑아지는 것 같았다. 다시 힘이 났다.
그래, 올해도 마지막까지 힘내야지! 아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