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채로운 맛의 항연
새로운 마들렌은 어떻게 탄생하게 될까?
사실 매번 새로운 주제로 마들렌을 만들고 있지만, 그렇다고 매일 아이디어를 짜내기 위해 골몰하는 건 아니다. 보통은 일상에서 자연스럽게 작은 실마리를 발견할 때가 많다. 생소한 재료를 알게 되거나, 맛있는 음식을 맛보거나, 혹은 다른 디저트에서 문득 새로운 아이디어가 떠오르곤 한다.
그렇기에 평소 인스타그램에 올라오는 다양한 음식을 유심히 살펴보는 편이다. 그 범위는 비단 디저트에 국한되지 않는다. 다양한 장르와 수많은 국가의 요리를 두루 감상한다. 그건 파인다이닝 레스토랑의 음식일 때도 있고, 유명 파티시에나 홈베이커의 작업물 혹은 평범한 주부의 가정식이나 간식일 때도 있다. 굳이 시간을 내서 찾아보는 건 아니지만, 인스타그램에서 우연히 만나는 모든 음식은 잠재적으로 새로운 마들렌을 떠올리는 영감의 원천이 된다.
우선, 이 자리를 빌려 좋은 영감을 선사해 주신 쿠루미과자점 파티시에분께 감사의 말씀을 전하고 싶다.
작년 초, 인스타그램에 들어왔다가 쿠루미과자점 계정에 올라온 ‘발사믹에 빠진 딸기’라는 샌드위치를 보게 되었다. 앙버터를 기반으로 리코타 치즈와 발사믹에 졸인 딸기를 올려 마무리한 샌드위치였는데, 보는 순간 이건 맛있겠다는 확신이 들었다. 포근하고 농후한 풍미가 있지만, 자칫 무겁게 느껴질 수 있는 앙버터를, 발사믹 딸기의 산뜻함이 한결 가볍게 끌어올려 주는 구조였다. 여기에 지나친 산미를 잡아주면서도 적절한 무게감을 유지해 주는 리코타 치즈의 균형감이 더해져 더할 나위 없는 맛이 완성될 듯했다. 그렇게 사진만 찍어 두고는 까맣게 잊고 있었는데, 얼마 전 딸기 정과를 쓸 만한 곳을 고민하다가 문득 그 샌드위치가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갔다.
보통 우연히 마음에 드는 무언가를 만나면 습관적으로 스크린샷을 찍어 두는데, 워낙 많은 양의 이미지를 저장하다 보니 대다수는 그저 휴대폰 속 데이터의 한 조각으로 전락한다. 하지만 ‘발사믹에 빠진 딸기’ 게시물을 보았던 당시엔 마침 여러 가지 기록을 정리하고자 하는 의지를 잠깐이나마 가졌던 때라, 관련 메모가 짤막하게 남아 있었다. 덕분에 제대로 된 정보를 다시 확인할 수 있었고, 이를 토대로 발사믹 딸기 앙버터 마들렌을 계획하게 되었다.
사실 한 가지 마들렌에 담아내기엔 필요한 요소가 꽤 많았다. 기본적으로 발사믹 식초와 딸기, 리코타 치즈, 버터와 팥앙금이 함께 들어가야 했는데, 각 재료를 어떤 형태로 구현할지가 가장 큰 고민이었다. 처음엔 강조하고 싶은 맛을 필링으로 만들고, 나머지는 반죽에 섞어 베이스로 활용하려 했는데, 그러면 제대로 된 느낌을 담아낼 수 없을 것 같았다. 결국 합칠 수 있는 부분은 합쳐서 단순화하고, 살릴 수 있는 부분은 살려서 마들렌의 문법으로 재해석했다.
가장 중심이 되는 건 역시 필링. 발사믹에 조린 딸기와 치즈, 앙버터를 조화롭게 섞어낼 필요가 있었다. 모든 요소를 따로 넣기엔 한계가 있어 우선 딸기 정과를 발사믹에 조려 곱게 다져내고 치즈와 섞어서 딸기 치즈 크림을 만들었다. 치즈는 발사믹 식초의 산미와 자연스레 어울릴 수 있는 프로마주 블랑을 사용했다. 앙버터 역시 팥앙금에 버터를 섞어 단순화할 생각이었는데, 앙금과 버터를 완전히 섞어버리면 팥의 진한 맛을 뚫고 순간순간 콧속 가득 피어오르는 버터의 황홀한 풍미가 퇴색될 것 같았다. 그건 앙버터가 가진 고유의 정체성을 잃는 일이었다. 그래서 버터를 잘게 다져 팥앙금과 가볍게 버무린 앙버터 필링을 준비하기로 했다.
이미 필링의 맛이 너무 다채로워서 반죽은 최대한 힘을 빼기로 했다. 별다른 재료 없이 흑설탕만 살짝 섞어 진한 맛을 내었고, 토핑으로는 누룽지를 선택했다. 원래 누룽지는 계획에 없었다. 하지만 부드러운 필링과 대비되는 바게트의 바삭함도 하나의 매력일 텐데, 마들렌에선 그걸 살릴 수 없을까 고민이 되었고, 구수하면서도 바삭한 식감을 살리기 위해 버터에 살짝 볶은 누룽지를 준비하게 되었다.
마들렌은 정말 맛있었다.
어찌 보면 너무 단출한 표현이지만, 그만한 수식어가 없었다. 요소 하나하나를 뜯어보면 그 면면이 너무 아름다웠지만, 다 함께 자아내는 그 맛은 직관적으로 매력적이었다. 갑작스레 합류한 누룽지의 존재감도 눈부시게 빛났다. 한입 베어 물자마자 즉각적으로 터져 나오는 어머니의 뜨거운 찬사가 그 풍미를 온전히 증명했다. 진짜 ‘발사믹에 빠진 딸기’는 어떤 맛일지 언젠가 직접 방문해서 먹어보고 싶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