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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행복약사 Oct 31. 2018

정겨운 지옥속으로 다시 돌아와야 할지라도

《언젠가, 아마도》 ㅡ 김연수





언젠가, 아마도.
누군가를 만나리라는 것.
그게 나의 여행이라는 것.



 김연수. 이 작가에 대한 호평은 꽤 많이 들어왔었다. 마니아층도 있다고 들었다. 하지만 꽤 늦게, 아주 많-이 늦게, 이제서야 나는 그의 책 중 한 권을 펼치게 되었다.



 이건 내가 지금까지 몇번이나 언급했던, 나의 고질적인 성향이다. 서점에 들어섰을때, 베스트셀러 칸에 보란듯이 누워있는 책에는 이상하게 손이 가질 않고, 누군가가 '유명작가'라든가 '요즘 핫한 작가' 등의 호칭으로 지칭하는 그런 작가의 책에는 괜히 손을 뻗질 않는 성향. 이 때문에 많은 신인작가들을 접할 기회를 놓쳤고, 많은 베스트셀러들을 뒤늦게야 접하고는 했지만, 나자신이 딱히 그에 대한 불만이 없기에, 나의 그러한 성향을 일부러 고치려고 한 적이 없었다.



 김연수, 그의 작품 역시, 그의 유명세만큼이나 늦게서야 접하게 되었다. 그것도 ─ 다들 알법한 유명한 책 제목이 아닌, 그나마 '덜' 알려진 책으로.





여행이란
가지 못한 길에 대한 집착을 버리는 것이라고.





 이 책에 대한 나의 첫 인상은, 아주 진솔하게 표현하자면 ─ 그저그랬다. 뭐든지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큰 법. 나는 김연수라는 작가의 '여행에세이'라면 뭔가 더 특별한 무언가가 있을 것이라 나 혼자 지레 짐작 했음에 틀림없다. 그도 그럴것이, 이 책은 다년간에 연재되어온 그의 여행 칼럼을 한 데 묶은 모음집이었다. 그러기에 몇년에 걸친 그의 기록이고, 그 긴 시간 속의 단편적인 기록들을 묶어 놓았을 뿐이다. 그러다보니 내가 받은 인상은 솔직히 조금 산만했다. 게다가 나처럼 김연수라는 작가의 글을 처음 접하는 사람으로서는, 그런 구성의 산만함이 더욱더 집중력을 흐려놓았던 것은 아닐까 조심스럽게 생각된다.





이 인생은 모두 너의 것이고,
그게 외로움이라도 마찬가지야.
네 것인 한에는 네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거야.
우리라면 그걸 즐길거야.





 ─ 하지만. 그의 글은 읽어 나갈수록, 아니, 읽은 후에야 비로소 큰 울림을 주는 매력이 있다. 마치 화선지에 먹물 한방울을 뚝, 떨어트렸을 때, 떨어뜨린 그 순간에는 단순하게 다가오다가 조금 시간이 지나면서부터 서서히 주변으로 퍼져나가는 반향. 그리고 그 퍼져나가는 모습이 아름답게 느껴질 때가 있지 않은가. 김연수 작가의 이 책은 나에게 딱 그런 존재였다.



 읽고 있는 동안에는 그저그랬다. 그러다가 책을 덮을 때 즈음, 그리고 덮고 나서, 그의 조용한 한마디 한마디가 나의 가슴이 꽤 스며들어 있다는 것이 놀라웠다.





모든 것을 살 수 없다면, 그럼 무엇을 살 것인가?
모든 삶을 살 수 없다면, 그럼 어떤 삶을 살 것인가?





 작가 김연수씨의 고찰력은 뛰어나다. 살짝 자조섞인 듯해 보이는 고찰 속에는 깊이 들여다보면 볼수록 가슴을 울리는 깊은 철학이 담겨 있다. SNS에 끄적거리다가 인기가 많아졌다고 출판해내는, 겉으로 읽기에만 보기좋은 에세이들이 넘쳐다는 요즘 같은 세상에, 나는 이렇게 깊이 있고 진솔한 책을 접하면 기분이 좋아진다. 마치 오래된 상점가, 그 구석에서 몇십년간 변하지 않고 한 자리를 지키고 있는 숨은 장인의 손맛을 맛 보는 짜릿함이랄까. 











p31.

여행에서 두 번 다시란 없으니까. 다시 왔을 때 나는 그때의 그 사람이 아닐 테니까.




p46.

싸워보니까 금방 알겠더라. 안 되는 건 아무리 해도 안 된다는 걸. 안 되는 걸 뻔히 알면서도 죽을 각오로 덤비면 어떻게 되느냐면, 결국 죽으리라는 것.



p111.

대답할 수 없는 질문을 불러일으키는 존재만이 나를 매혹시킨다



p115.

외국에 나갔다고 해도 결국 영주하지는 못한다. 정겨운 지옥 속으로 돌아와야만 한다는 뜻.




p121.

여행의 교훈은 내가 보는 세상이 이처럼 상대성의 원리로 움직인다는 사실을 깨닫는 것인지도 모른다.



p141.

조직은 인간을 난쟁이로 만든다는 것, 고독은 우리의 성장판이라는 것, 누가 알아주든 알아주지 않든 해야 할 일을 할 때 인간은 자기보다 더 큰 존재가 된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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