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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행복약사 Oct 30. 2018

두 번은 없다. 그러니까 괜찮아.

《그냥 흘러넘쳐도 좋아요》 ㅡ 백영옥






만약 당신의 인생이 하나의 긴 문장이라면,
거기에는 반드시 쉼표가 필요합니다.





 참으로 지리한 초가을이었다. 가을은 독서의 계절이라는데, 나는 왜 그렇게도 글자가 눈동자를 그저 미끄러져내리기만 했던 것인지. 마치 오일로 잘 코팅된 매끈한 면을 물방울이 또르르 구르는 마냥, 눈은 글자를 읽어 내리는데 글자는 나에게 들어오질 않았던 시기였다. 그래서였다. "아르떼"라는 출판사의 책수집가에 지원하게 된 것은. 약간의 강제성과 약간의 새로움과 약간의 자극이 필요했다. 그렇게해서 받은 첫 책이 바로 백영옥의 <그냥 흘러넘쳐도 좋아요>였다.



 이 책을 접하기 전까지는 백영옥이라는 작가에 대해 전혀 문외한이었다. 그리고 아주 솔직하게 말하자면 ─ 나는 이런 유의 에세에집에 큰 호감을 느끼는 편도 아니고, 이런 유의 책에 큰 기대를 가지지 않는 편이다. 그리하여 이 책 역시, 그저 그러려니, 라는 담담한 마음으로 첫 장을 폈다.




무언가를 사랑하며 산다는 건
그것이 주는 행복뿐 아니라
고통도 함께 원해야 하는 것이죠.



 책의 초반부까지만해도 그저 읽어 내려가면 되는, 단순하게 느껴지는 에세이집이었다. 여느 서점에 들러 에세이 칸에 들어가면 흔히 있을 법한 그런 종류의 책. 참으로 담담하고 단순하고, 한편으론 쉬웠다. 그렇게 쉽게쉽게 와 닿는 챕터를 한 장 한 장 넘기는 가운데, 나도 모르게 편안해졌다. 그리고 그 순간 깨달았다. 아 ─ 이 책은 이런 책이구나.




 복잡한 세상 속에서 복잡하지 않고, 어려운 세상 속에서 어렵지 않고, 차가운 세상 속에서 차갑지 않은 그런 책. 그래서 오히려 너무 평범하고 단순하다고 가볍게 치부해 버릴 법도 한 그런 책. 하지만 그녀의 문장 하나하나가 점점 독자에게 와닿기 시작하는 그런 책. 적어도 나에게는 그런 책이었다. 그리고 읽어 나가면서 조금씩 알게 되었다. 그녀와 나는 생각이 참 많이 닮아 있다는 것을.





p149.

살아보니 간신히 알게 되는 것들이 있습니다. 삶에 있어 대박 같은 건 거의 없다는 것을요. 소박한 행복이 모이면 그것이 대박이 되는 거죠. 작은 행복에 감사하지 못하면 큰 행복에도 감사하지 못하는 사람이 됩니다. 당연함의 세계에는 감사함도 없어요.




 단순히 '좋은 글귀'따위로 회자될 만한 글을 쓰려면 얼마든지 쓸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녀의 글은, 아니 그녀는, 두 발이 단단히 땅에 닿아있다는 느낌이 든다. 그녀 나름의 산전수전을 겪고, 실패와 좌절을 경험하고서 겨우 겨우 얻은 것은 바로 자기 자신을 바로 세우는 일. 그것은 세상이, 사회가, 주변 환경이, 다른 누군가가 세워주는 것이 아니라, 본인 스스로 자신의 장소를 찾아 올곧게 서 있는 일. 그녀는 그 토대가 참으로 단단한 작가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세상 어디에 있어도, 세상 어디에서 어떤 일을 당해도, 돌아올 수 있는 자신만의 장소에 스스로 단단히 서 있다는 것. 그것은 어떤 글로도 설명 되지 않는 가장 멋진 자세가 아닐 수 없다. 그러기에 나는 어떤 명문장의 에세이보다 그녀의 글이 참 좋아졌다. 어쩌면 그녀의 '글'이 좋아졌다기 보단 '그녀'가 좋아졌다고 표현해야 더 맞는 것일지도 모른다.



 글이 예쁘고 감동적이길 바란다면 조금 실망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녀가 이번 에세이집에서 다루고 있는 주제들에 대해서 만큼은 나에게 있어서는 두고두고 기억하고 싶을만큼 인생의 자산이 될 것만 같다. 그녀가 이 에세이집에서 인용한 책이나 시 중에서도 읽어보고 싶은 목록이 생겼다. 지리한 가을을 시작하고 있던 나에게, 그런 나를 다그치기라도 하듯 백영옥 그녀의 에세이가 운명처럼 다가온 것만 같다.




살면 살수록, 힘주는 것보다
힘을 빼는 게 더 어려운 일 같아요.



 조금 지친 마음에 의욕이 사그라드는 기분이 들때, 한번쯤 읽어보면서 자신을 돌아보면 좋을 것 같은 책. 조금은 힘을 빼고 자신만의 길을 뚜벅뚜벅 갈수 있게 도와주는 책. 나 자신을 채찍질하기보다, 앞만 보고 내달리기 보다, 높은 곳만 쳐다보기 보다, 내 발 밑을 똑똑히 보고 단단히 디디고 설 여유를 알려주는 책. 이 책은 그런 책이 아닌가 싶다.






* 출판사 "아르떼"에서 '책수집가 1기'로서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글이지만, 절대적으로 지극히 개인적인 견해만으로 작성한 글임을 알려드립니다.










p42.

같이 있으면 괴롭고 혼자 있으면 외로울 테니, 괴로움과 외로움 중 무엇을 선택할지 고르면 됩니다.




p47.

"누군가를 사랑하고 있는가?그렇다면 그것이 사랑이라고 어떻게 정의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에 작가 조나단 프란젠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내 마음이 그렇다고 이야기했다. 그리고 내 이기심이 줄어들었다."




p71.

걱정 많은 고슴도치는 우리와 닮았어요. 다가가기에는 거절이 두렵고, 홀로 있기에는 너무 외로운 우리. 관계에 지쳐 혼밥을 먹으면서도, 기어이 사진을 찍어 SNS에 올리고 '좋아요'를 기다리는 마음.




p102.

바라는 것을 말하기 전에, 내려놔야 할 것이 무엇인지 먼저 묻는 마음이 필요하다는 것도 배워요. 기도가 원하는 모든 것을 얻게 해주는 건 아닙니다. 오히려 이 길이 내 길이 아니라면 포기하고 다른 길로 갈 수 있는 지혜를 달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포기가 실패의 동의어는 아니니까요. 가다가 멈출 줄 아는 게 더 큰 용기예요.



p130.

진정한 재능이란 지루한 반복을 견디고 지속하는 힘이라는 생각이 드는 요즘이에요. 지구인에게는 지구력이 필요합니다.




p152.

행복의 다른 이름에 대해 생각했어요. 고마움이 아닐까 싶어요. 내가 이미 가지고 있는 것의 귀함을 아는 마음. 주위에 이미 존재하는 행복을 더 깊게 느낄  수 있는 예민한 더듬이를 가지고 싶습니다.




p158.

남을 흉내 내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활을 쏘는 게 중요합니다. 바람도 마찬가지예요. 삶에는 끝없이 바람이 붑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바람을 멈추는 게 아니라, 거센 바람 속에서도 중심을 잡으려는 자세와 화살을 목표에 명중시키려는 마음일 거예요. 비록 화살이 빗나간다 하더라도 말이죠.




p211.

속도의 시대에, 느리게 가는 것보다 더 활기찬 일은 없으리라. 산만함의 시대에, 주의를 기울이는 것보다 더 호화로운 기분이 드는 일도 없으리라. 그리고 끊임없이 움직여야 하는 시대에, 가만히 앉아 있는 것보다 더 시급한 일은 없으리라.

ㅡ 피코 아이어, 《여행하지 않을 자유》




p236.

떠나는 행위 자체보다 더 중요한 건 다시 '돌아오는 것'이라는 걸요. 우리의 현실은 잠깐의 여행이 아닌 매일의 일상에 있으니까요.




p251.

희망이라는 말은 꼭 희망 속에만 있지 않습니다. 절대 절명의  순간, 어둠 속에서도 우리는 그걸 기억해야 해요. 바람이 불고 나무가 흔들려도, 삶은 계속될 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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