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 (Bohemian Rhapsody)》
※ 저의 영화 리뷰에는 스포일이 항상 포함되어 있으니 읽기 전 참고바랍니다.
솔직하게 말하자면 나는 "Queen"이라는 밴드에 대해서는 문외한에 가깝다. 그나마 음악을 좋아하기 때문에 퀸의 유명한 곡들을 알 뿐이었고, 그마저도 '퀸'의 노래인지 모르고 좋아하고 알고 있는 경우가 태반이었다. 나의 퀸에 대한 지식은, 'Love of my life'라는 곡을 들으며 '이거 옛날에 드라마 M에 나온 노래인데'라는 생각이 먼저 드는, 그 정도 수준 밖에 되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내가 먼저 이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의 포스터만 보고 끌렸다거나, 이 영화의 개봉을 기다렸다거나 그럴리는 만무했다. 지인의 덕분이었다. 이런 영화가 개봉을 할 예정이고, 그는 한때 퀸에 심취한 적이 있는 퀸의 팬이었기에, 이 영화를 꼭 보고 싶다고 말했다.
─ 그리고 늘 그렇듯, 아무 생각없이 접한 영화가 더 큰 감동을 주는 경우가 많은 법이다.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는 제목에서 충분히 느껴질 법하듯, 말그대로 "Queen"이라는 밴드와 그 리드싱어인 '프레디 머큐리'에 대한 실화를 바탕으로 재구성한 영화이다. 그것만으로도 스토리를 충분히 예상 가능하다. 그러기에 솔직하게 말하자면 플롯이 아주 좋다거나 스토리가 아주 잘 짜여진 영화라고는 말하기 어렵다. 그도 그럴것이, 프레디 머큐리에 대한 이야기를 다 담아내기에 영화 러닝 타임은 지나치게 짧지 않겠는가. 그 짧은 영상 속에 그를 담아내어야 하는데, 아무래도 조금 꾸역꾸역 집어넣어야하지 않을까.
영화 초반 도입부에서의 나는 조금 영화에 몰입도가 떨어지는 기분이었다. 밴드를 결성하고 그 밴드가 어느 정도의 성공가도에 오르기까지의 이야기, 주요 등장인물들이 하나 둘 등장하고 그들의 성격을 담아내야 하고, 그 인간관계를 집약적으로 나타내야하고, 그 와중에도 스토리는 진행되어야 하고. ─ 그렇다보니 조금은 뚝뚝 끊기는 기분이 느껴졌다. 심지어 나는 퀸이나 프레디 머큐리에 대한 사전지식이 전무했기에, 그 많은 정보를 빠르게 받아들이는데에 약간의 산만함이 있었다.
─ 하지만. 이 영화는 조금의 산만함을 지나는 순간, 곧바로 관람객들을 끌어들인다. 나처럼 사전지식이 조금도 없는 사람조차 영화를 보는데에 전혀 무리가 없고,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더욱 몰입되기 시작한다.
우리는 부적응자들을 위해 연주하는
부적응자들이에요
이 영화는 단순히 한 뮤지션의 인생을 찬양하고 재미있게 재구성한 영화에서 그치지 않기 때문에 더욱더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프레디 머큐리, 그는 여러가지로 삐걱거리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누구보다 천재적인 재능을 가지고 있었다. 외모도 일반적이지 않았다, 가정환경도 지나치게 보수적이어서 자유분방한 예술가적 성향을 그와는 잘 맞지 않았고, 아버지와는 사사건건 부딪히기 일쑤였으며, 평범하게 영국에서 태어난 영국인이 아니어서 인종적으로도 일반적이지 않았으며, 이후, 그는 성적인 취향 역시 일반적이지 않았다. ─ 그리하여 그는 고독할 수 밖에 없었고, 늘 혼자라고 느끼게 된다.
그의 성적 취향의 변화를 서서히 묘사해가는 과정이 조금도 어색하지 않고 급작스럽지 않아서 관객 모두는 프레디에게 이입하게 되고 그를 이해할 수 밖에 없다. 그가 너무나도 사랑했던 메리가 그에게 한 말 처럼 말이다.
당신 잘못이 아니라서 더 슬퍼.
그 말을 하고 싶지 않으면서도 해야만 했던 메리의 마음은 어떠했을까. 굵은 눈물을 뚝뚝 흘리며 그 말을 하는 그녀의 배경으로, 프레디가 메리를 생각하며 작곡한 "Love of My Life"가 흐른다. 그리고 그녀는 그녀가 그토록 사랑했던 그를 있는그대로 받아들이기로 했나보다. 그녀의 마음은 공허하고 힘들지라도, 그 역시 힘들 것을 알기에. 그러기에 그녀는 "당신은 앞으로 더욱 힘들어질거야"와 같은, 프레디 그 자신보다도 더 그 자신을 이해하고 꿰뚫어보는 말을 할 수 있었던 것이 아닐까. ─ 짧은 장면이었지만, 같은 여자로서 나는 그 장면의 메리의 눈물과 그녀의 말이 오래도록 잔향으로 남는 것 같다.
밴드는 망하기보단 깨지기 쉽다고 했던가. 퀸 역시 그 절차를 피해갈 수 없었다. 누구보다 가족처럼 생각하는 밴드였지만, 프레디는 그 속에서 계속 '혼자'라는 느낌을 받게 된다. 아마도 그의 타고난 재능과 그의 일반적이지 않음이 그를 더욱더 고독하게 만들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는 그때까지만 해도 몰랐다. 그가 결코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그의 방황은 영화를 보는 관객들을 가슴 아프게 한다. 그가 맞는 비는, 그를 응원하는 마음으로 보고 있는 모든 사람들의 마음을 적신다. 그리고 비가 쏟아지는 어느 밤, 메리의 "집"으로 돌아오라는 말이 억수같이 가슴을 적시는 그날 밤, 그는 비로소 깨닫는다. 그가 있어야 할 장소가 어디인지.
내가 언제 썩었다고 느끼는지 알아?
주변에 날파리가 꼬일 때.
그리고 그 돌아온 탕아는 그의 진정한 가족들과 그가 진정으로 있어야 할 그 장소에 다시 선다. 그것도, 예전보다 더욱더 꼿꼿하고 당당하게. 에이즈라는 무서운 병의 존재를 깨닫고 나서도 그는 그 자신을 불태워 노래한다. 특히, 영화의 마지막 '라이프 에이드' 공연 장면은 보는 내내 심장이 쿵쿵 울린다. 가슴이 전율한다. 소름이 돋는다. 뇌가 멈춘다. 몸속 깊은 곳부터 뜨거워 진다. ─ 이 영화의 하이라이트는, 여느 소설의 진부한 전개방식처럼 기-승-전-결이 아니었다. 마치 콘서트 장에서의 하이라이트는 제일 마지막 곡이듯, 이 영화의 하이라이트는 '전' 단계가 아니라 '결'이었다. 마지막 엔딩 크레딧이 올라가기 전까지 수 분에 걸친 퀸의 공연장면. 그것은 ─ 영화를 함께 보러간 지인에 따르면 ─ 실재 라이프 에이드 공연실황을 그대로 옮겨 놓은 듯하다. 그리하여 영화를 보는 관객들은 시간을 거슬러, 1980년대의 그 시간 속으로 빨려들어간다. 어느 누구도 예외는 없다.
이 영화는 그렇게 크나큰, 그리고 기나긴 감동을 선사하면서 막을 내린다.
다시한번 말하지만, 적어도 나에게 있어서는 이 영화는 단순히 어느 유명한 뮤지션의 일대기를 다룬 영화가 아니었다. 단순히 음악이 좋은 영화도 아니다. 플롯이나 편집이 조금 엉성하게 느껴진다 할지라도, 그것은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
인종와 출신의 문제, 성적 취향에 대한 문제, 마약과 에이즈와 같은 어두운 사회의 문제, 가족간의 소통의 문제, 진정한 친구란 누구인가에 관한 문제, 그리고 그 무엇보다도 진정한 자신을 찾아나가는 것에 대한 문제. ─ 이 영화는 대단하다. 이 모든 것을 퀸의 음악에, 프레디 머큐리의 삶속에 녹여냈다. 아니, 어쩌면 프레디 머큐리의 삶 자체가 그 모든 것이 녹아들어간 인생 그 자체였으며, 그의 음악은 바로 그것을 담아낸 집약체였기에 가능한 것이 아니었을까.
모르고 지나칠 뻔 했던 엄청난 영화를 봐 버린 듯 하다. 스케일이 크다거나 장엄한 그 무언가가 있는, 그렇게 만들어진 영화가 아니라, 퀸이라는 밴드의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관객 스스로 그러한 모든 것들을 찾아내고 이해할 수 있도록 되어 있는 영화. ─ 그리고 그 모든것을 웅장한 스테레오로 감싸안듯이 퀸의 음악이 울려퍼진다.
언제 내릴지 몰라 평일 저녁 시간을 쪼개서 달려간 영화관. 이 영화는 반드시 지금 봐야 한다. 아직 보지 않은 사람들이 있다면 강력 추천해주고 싶은 영화. 왜 이렇게 볼만한 영화가 없냐며 영화관을 한동안 멀리했던 나에게 , 이 영화를 알려 준 지인에게 몇번이고 감사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