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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행복약사 Nov 14. 2018

끝을 알면서도 단지 보고싶다는 마음으로 사랑한다는 것

─ 영화, 《나는 내일, 어제의 너와 만난다 (2016)》



※ 제 영화리뷰에는 어느정도의 스포일이 포함되어 있으므로 읽기 전 참고 바랍니다.





끝을 아는 사랑을 한다는 것은 어떤 마음일까.
끝을 알면서도 보러 가고 싶은 마음 하나로
보러 달려가는 마음은 어떤 마음일까.



 영화 《나는 내일, 어제의 너와 만난다》는 꽤 오래전부터 내 주변에 어른거렸음에도 불구하고 꽤 오랜 기간 멀리했었다. 일본 영화 특유의 판타지 학원 로맨스물에 그칠 거라는 생각에서였다. 내가 좋아하는 일본 영화나 일본 드라마는, 영화로 말하자면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영화, 드라마로 말하자면 <그래도 살아간다> 류이기에, 이 영화의 포스터나 대략적인 내용 자체만으로는 그다지 매력을 느끼지 못하고 있었다.



 단순히 우연한 기회였을 뿐이었다. 내가 일본영화를 좋아한다는 것을 아는 어느 가까운 친구가 이 영화를 같이 보지 않겠냐고 했고, 그렇게 남는 시간 중 하나를 이 영화에 할애하게 되었을 뿐이었다.












 초반부는 그냥 귀여웠다. 스무살의 귀엽고 풋풋한 사랑에 달콤한 파르페를 한 스푼씩 떠먹는 기분으로 영화를 보게 되었다. 일본영화 특유의 파스텔톤 화면도 예뻤다. ─ 그렇다. 예쁘고 사랑스러운 영화였다. 그렇게 단순한 로맨틱한 기분으로 보던 중에, 난데없이 ─ 하지만 사실 어느정도 예상했었던 ─ 판타지적 요소가 끼어든다. 일본영화에서 자주 다루어지는 타임리프 판타지.




 스무살의 타카토시와 에미. 타카토시가 전철안에서 한눈에 반해 에미에게 말을 거는 것으로 시작되는 그들의 사랑은, 사실은 반대로 흐르는 시간속에 잠시 겹쳐지는 한 부분에 불과했던 것이다. 이러한 사실을 말하는 에미를 보면서, 솔직히 나는 이 영화의 여자주인공의 감정은 결국 거짓 아니냐는 생각을 순간 했었다. 그리고 ─ 곧 그 생각은 바로 뒤집어져서, '에미'가 품어온 사랑의 깊이에 안타까움을 느끼게 되고 말았다.












 이 영화는 타카토시의 시간의 흐름대로 진행되고 있다. 하지만 에미가 그들의 시간이 반대임을 말하는 순간부터 나는 그 모든 시간들을 에미의 입장으로 보게 되었다. 그녀가 그를 사랑하면 사랑하게 될수록, 그의 감정은 멀어져 간다. 어떻게 보면 타카토시의 입장도 마찬가지일 수 있으나, 처음부터 모든 것을 알고도 ─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를 만나러 오는 에미의 마음가짐은 그 밀도나 무게에 있어서, 왠지 더 안타까운 마음이 들게 만든다.











그가 처음으로 그녀를 만나서 처음 보는 사람처럼 말을 거는 그 날이, 에미에게 있어서는 가장 사랑이 깊어져있을 날이고 그를 만날 수 있는 마지막 날이라는 것 ─ .




내일 만날 수 있을까


 라는 타카토시는 두근거리는 마음을 안고 설레면서 물어보지만, 에미는 "응"이라고 대답하면서도 조용히 눈물을 훔칠 수 밖에 없었다. 그녀에 있어서는 그의 '내일'이 그녀의 '내일'이 아니기 때문에, 그녀의 내일 속에는 더이상 타카토시가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타카토시의 입장에서도, 그의 부모님께 에미를 소개시켜드리고 돌아오는 버스 안. '우리는 왜 가족이 될 수 없는 걸까'하며 굵은 눈물을 뚝뚝 떨어트리던 날, 그 옆의 에미는 단지 그를 이틀 만났을 뿐이었다. 그러기에 가슴을 움켜쥐며 눈시울을 붉히는 그를 보면서 단지 "미안해"라는 말밖에 하지 못한다.






둘의 감정선이 다르다는 것




분명히 서로 사랑 하고 있지만, 그의 감정선과 그녀의 감정선이 다르다는 것. 그리하여 그의 눈물에 진심으로 응해줄수 없는 자신이, 자신의 운명이, 그리고 우리의 운명이 그녀도 가슴을 아팠을 것이다. 하지만 단지 두번밖에 만나지 않은 그를 진심으로 위로하고 공감할수는 없었으리라.











 단순한 타임리프 영화, 판타지 영화, 일본 로맨스물, 유치한 스토리 ─ 이렇게 치부해버리고 끝일 수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이상하게 이 영화는 보고 나서 계속 곱씹게 된다. 어쩌면 이것은 나에게 있어서는, '일본영화'가 가진 특유의 성질 같기도 하다. 나에게 있어서 일본영화는, 언제나 보고 있는 동안보다 오히려 보고나서가 오래간다.




 이 영화도 그랬다. 단순하게 시간이 거꾸로 가는 두 사람의 운명적인 사랑 이야기, 라고 평하고 풋풋한 영화 잘 봤다,로 끝낼 수도 있었겠지만, 이상하게 여러거지 생각이 더 난다. 꼭 이것이 타임리프의 판타지로만 볼 것이 아니라 우리가 지금 이 세계에서 하고 있는 모든 사랑에 대해 확장시켜 생각해볼 수 있는 문제이지 않을까. 결국 두 사람이 만나서 같은 시간을 공유하면서 같은 감정선으로 서로 사랑할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큰 행복이고 축복인지, 그리고 그렇게 사랑하던 사람 역시 인연에 따라서는, 나의 시간은 앞으로 가는데, 상대의 시간은 거꾸로 가는 듯한 느낌을 받을때는 얼마나 많은가. 그렇게 나의 감정선과 그의 감정선이 어긋나고, 두 사람의 곡선이 반비례하게 되는 경우도 허다하지 않은가. 그런 상대를 바라보는 마음은, 결국은 이 영화 속 에미의 마음이자, 타카토시의 마음이 아닐까.




 그리고 이 영화에서 다루고 있는 '사랑'의 모습 역시 여러 생각을 하게 만드는 것 같다. 어차피 둘다 이 사랑의 끝을 분명히 알고 있다. 이렇게 불가능한 사랑을 계속 유지하고 답습하는 이유는 뭘까. 어차피 안 될 인연 그만하면 그만 아닌가. ─ 하지만 그들은 그렇게 하지 못한다. 끝을 아는 사랑임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지금 상대가 보고 싶은 것이다. 그러기에 달려간다. 끝을 아는 사랑을, 단지 보고싶다는 마음 하나로 보러 달려가는 그런 마음은 어떤 마음일까 ─ .




어떻게 보면 너무나도 유치하고, 판타지스런 플롯이겠지만, 이 영화에서 다루고 있는 '사랑'이 예상했던 어떤 사랑보다도 깊고 농밀해서, 이런 판타지 이야기에도 가슴이 아려오는 것은 아닐까.










 같은 시간을 공유하고, 같은 추억을 쌓고, 같은 기억을 공유하고, 같은 감정선으로 나아갈 수 있는 사랑을 할 수 있다는 것. 그것은 그것만으로도 크나큰 축복이 아닐 수 없다. 그러기에 우리는 누군가를 사랑한다면, "지금" 사랑해야한다. '지금' 그를 보고 싶은 마음을 애써 숨기고 배척하고, 다음으로 미룰 것이 아니라, '지금' 만나러 가야 하는 것이다.





 단순하고 유치할 줄 알았던 영화가 내 마음에 작은 돌맹이 하나를 던졌나보다. 잔잔한 수면에 동그라미를 그리며 잔물결이 이는, 그런 기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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