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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행복약사 Apr 12. 2021

새 생명의 탄생

─ 내 생애 첫 출산의 기억(1)


 도저히 지나갈 것 같지 않은 시간들이 지나가고 벌써 35주차에 접어들었다. 임신 첫 3개월간은 사소한 몸의 움직임에도 전전긍긍하면서 지냈었다. 말한마디도 함부로 하지 않고 주변사람들에게 헛바람만 들게 하지 말아야지,하면서 조심 또 조심했었다. 그 이후에도 나의 작은 몸상태, 아기의 작은 움직임에도 한시도 긴장을 놓을 수 없었었다. 임신성당뇨 판정이 뜨면 어쩌나, 기형아검사결과가 안좋게 나오면 어쩌나, 작은 검사 하나하나에도 가슴을 졸였었다. 체중계에 올라가는 것도 하나의 의식이 되고, 임산부에게 있어서 '의식'이라 함은 곧 '스트레스'를 의미하는 것이었다. 주변에서는 다들 '배 안에 있을때가 제일 좋을 때다' 같은 공감하고 싶지 않은 말들을 조언이자 위로로 건네주었지만, 정작 나 자신은 얼른 이 시간이 끝나고 해방되고 싶다는 생각을 간절히 하면서 달력을 넘겨 나갔었다. ─ 그리고 지금의 나는, 그때 그 주변사람들과 같은 생각을 하면서, 그 때 내가 간절히 원했던 '해방'이 결코 '해방'이 아님을 깨달았다. 



 "아기가 조금 크네요. 머리둘레도 큰 편이에요."

 "출산을 조금 앞당기는게 좋을 것 같아요. 걷기 운동 열심히 하세요."



 초음파상으로 보이는 아기는, 평균보다 무거운 무게에 머리둘레도 꽤 큰편이었다. 무게는 거의 상위 10프로 안팎. 나는 걷기, 계단오르기와 같은 숙제를 매번 받아왔었고, 내 나름대로는 열심히 실천했지만 가진통도 심하지 않았고 아기가 내려올 기미는 보이지 않았다. 



 유도분만도 생각해보자는 의사선생님께 첫 내진을 받은 날의 밤. 그날 새벽부터 피가 나왔고, 한번씩의 통증은 있었지만 참을수 있는 정도의 통증이었다. 나는 새벽 3시깨부터 한숨도 못자고 통증기록 어플에다가 통증을 기록하면서, 어플이 분석해주는 조언을 한줄기의 새끼동앗줄마냥 부여잡고 있었다. 그리고 통증이 잦아들면,  나의 부족한 지식은 언제나처럼 인터넷으로 충족시키고 있었다. 내진 받고 나서 나오는 내진혈이 생리하는 것 마냥 나올수도 있다는 인터넷상의 글자를 곧이곧대로 믿었었고, 나 역시 피가 꽤 나고 있었지만 한번씩 속옷을 갈아입거나 화장실에 다녀오는 걸로 그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새벽 5시쯤, 그날따라 함께 있지 못하는 남편에게 전화를 걸어, 피가 나고 통증이 있다고는 말했으나, 남편은 잠에 취한 목소리로 '진통이 온것 같아? 병원 가봐야 할것 같아?' 라고 물었고, 나는 '그정도는 아닌것 같애'라고 대답했다. 그렇게 몇시간을 간헐적 통증과 출혈 속에서 보냈다. 



 다음날 아침. 병원은 아직 외래진료를 시작하지 않았을 이른 시간. 나는 내가 다니던 병원 분만실에 전화를 했다. 현재의 증상을 설명하고 지금 가봐야 하는지 물었다. 간호사선생님은 통증을 좀더 지켜보다가 그 주기가 더 짧아지거나 통증의 강도가 더 강해지면 찾아오면 될것 같다고 했다. 다시 지켜보는 시간 ─. 병원에서 가까운 친정에서 지내고 있었던 나는, 나는 내가 처녀적 지냈던 그 방에서, 그 침대에서 부스스 일어났다. 아직 부모님께 깨어나시지 않은 시간, 나는 천천히 피가 묻은 옷들을 손빨래 해두고 몇주전부터 준비해뒀던 출산가방을 다시한번 점검해보았다. 그리고 부모님께 일어나셔서 아침식사를 드실때쯤, 나는 병원에 다녀오겠다고 했다. 하혈 때문에 진료를 받아볼까 한다고. ─ 그때만해도 조금도 출산의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있지 않았었다.


 

 외래진료가 아직 시작하지 않은 이름 아침시간, 나는 분만실로 바로 올라갔다. 분만실 간호사에게 새벽에 전화했던 산모이고 현재상태가 어떠한지 간략히 설명했다. 내가 담담했던 탓인지 모르겠으나, 내 기억으로는 간호사도 딱히 서두르는 느낌은 아니었던 것 같다. 조용한 분만실 방 한칸에 짐을 내려놓고 옷을 갈아입고 조심스럽게 병원침대에 올랐다. 그리고 나의 상태를 확인한 간호사선생님은 ─ "피가 많이 나셨는데요? 왜 이제야 오셨어요?"라고 물었다. 그 동그란 눈이 너무나도 거짓없이 맑은 궁금증을 담고 있어서 부끄러웠던 기억. "인터넷에서는 분만진통은 딱 느낌이 온다던데.. 전 그정도는 아닌것 같아서.." 나는 그 진통을 오롯이 참고 있었던 것일까. 원래도 워낙 통증에 대해서는 무딘 나이긴 하지만, 참 나도 나답다, 라고 생각했다. 



 "아기가 많이 내려와 있어요. 바로 준비할게요."



 그래도 적절히 병원으로 오긴 온것 같았다. 그 이후부터는 꽤나 배가 많이 아팠다가 다시 풀어졌다가 다시 아팠다가를 반복했으니까. 특히 골반쪽 통증이 매우 컸다. 아마 아기는 내려와 있는데, 나의 자궁문은 아직 열리지 않은 상태로 계속 진통을 겪고 있었기 때문이리라. 무통주사를 놓기로 하고 분만준비를 시작한건데도, 좀더 진행되고 나서 무통을 달아야한다는 간호사의 말에, 나는 또다시 미련하게 그 고통을 혼자 감내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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