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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행복약사 Apr 13. 2021

새 생명의 탄생

─ 내 생애 첫 출산의 기억 (2)




 이 글을 남편이 읽게 된다면 남편에게 조금 미안해질 수는 있겠지만, 나의 글 속에서 남편은 조금 서운한 존재로 남을 듯 하다. 임신했을 때부터,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출산의 순간 꽤 나에게 서운함을 안겨주었기 때문이다.


 

 "오빠, 이거 꼭 봐줘. 아내가 출산할때 남편이 아내를 도와줄수 있는 영상이래."



 나의 임신기간은, 왕복 1시간 30분 거리의 출퇴근과 모든 가사전담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그와중에 뱃속의 아가의 건강과 임신한 나의 건강까지. 두 사람의 몫을 살아가면서 세 사람의 뒷바라지를 하고 있었다. 남편도 그런 나를 위하는 마음은 언제나 있었다는 것을 알지만, 현실적으로 그가 나를 정말로 도와줄 여건은 못되었다. 나 역시 그런 남편의 상황을 잘 알기에, 그 모든 것들을 기꺼이 내 몫으로 짊어졌었다. 초기 입덧지옥시기부터 배가 남산만하게 불러왔던 만삭까지─. 그런 내가 막달이 다가올 즈음부터 남편에게 유튜브 동영상 링크를 보내주면서, 이것만 봐달라고 했던 순산호흡법 동영상이었다. 휴식을 취할때 종종 유튜브를 자주보는 남편인걸 알기에, 그 중에 잠깐만 시간을 내어 한번만이라도 봐주길 바랬다. 고작 30분도 넘지 않는 그 짧은 동영상을.



 진통은 계속 되었다. 아기의 혈압과 심박수를 체크하는 기계음이 계속 울려왔다. 한번씩 견딜수 없는 통증이 오면 나는 몸을 뒤틀면서 그 고통을 온 몸으로 받아쳤다. 그리고 그 고통 속에서도 왼쪽 모니터의 숫자를 보면서 아가가 건강한지 확인했다. 숨이 턱까지 올라오는, 도저히 신음소리조차 내기 어려운 극심한 고통을 견뎌내면서도, 혹여나 아기의 심박수가 지나치게 떨어지면 어쩌나 그게 걱정이었다. 통증이 살짝 풀릴 즈음엔 다시 아기의 심박수가 제자리를 찾았고, 다시 통증이 오면 아기의 혈압과 심박수도 같이 흔들리는 걸 볼수 있었다. 




 '아가도 나와 같이 아파하면서도 힘내고 있구나'




 그런 생각으로 버티는 시간─. 나는 임신기간 중에 봤던 호흡법을 계속 상기시키면서 긴장을 풀고 순산할수 있기를 온맘 다해 기도하고 있었다. 무통주사도 달고, 간호사선생님이 아기는 내려와서 기다리고 있는데 아직 자궁문이 많이 안열렸다고, 조금더 호흡하면서 힘줘보라고 했다. 그리고 남편보고 이렇게 다리를 잡고 아내가 힘주는걸 도와주라고 했다. 그 때 내가 보냈던 동영상이 힘을 발할 수 있을까, 기대했던 것도 잠시. ─ 남편이 동영상을 보지 않았구나, 라는 것을 절감했다.



 "임신했을때 서운하게 하면 평생 간대"



 어디서 주워들은 이 말을 자주 하면서, 그만큼 잘해주려고 노력했던 남편인데. 출산의 그 순간, 남편은 나를 철저히 배신했다. 그 때 나는 남편에 대한 서운함과 실망감과 ─ 그리고 분노가 치밀었다. 그 작은 것 하나, 그 짧은 동영상 하나 볼 시간이 없었다는 게 말이 되나. 나는 혼자서 호흡하고 힘을 주면서, 남편이 도움이 안된다는 걸을 절감하고 다시 간호사 선생님을 불러달라고 했다. 




 "어라, 바로 분만준비할게요"




 사실, 분만실에서의 기억은 단편적인 기억이다. 반나절 진통하던 그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시간(12시간 넘게 진통하는 산모들도 있으니까.)을 전부 파노라마처럼 기억하진 못하겠다. 마치 끊어진 필름을 조금씩 돌려보는 것 마냥, 순간의 기억들이다. 어떤 순간은 내가 골똘히 생각해내고 싶어도 안개속에 갇힌듯 희미하고 흐릿해서 안 보이는 기억도 있고, 마치 누가 칼로 끊어낸듯 끊어져서 아무리 복기해도 형체도 없이 사라진 순간도 있다. 


 

 실제로 나는 내 글에 있는 것보다 간호사선생님을 찾았던 횟수가 더 많았었고, 무통주사를 맞기 전부터 나는 구역감에 시달리면서 구토를 했었고, 비닐봉지를 달라고 해서 실제로 올리기도 했었고, 올릴것 같은 기분에 봉지를 쥐어봤다가 다시 내려놓기도 했었다. 좀더 분만과정이 더디게 진행될거라 생각했던 간호사선생님들의 예상과는 달리 진행과정이 빨랐던 것 같고, 혼자서 고통스럽게 진통하다가 이제쯤 무통 달아야 하진 않을까요?라는 나의 요청에 얼른 무통을 달아주셨던 기억. 무통주사를 달고난 직후엔 나도 모르게 기절하 듯 스르르 잠이 들기도 했었고, 그 이후 진통을 하면서는 나랑 아가랑 둘다 심박수가 현저히 떨어지면서, 흔히 말하는 눈이 돌아가는 그런 느낌으로 의식이 혼미해지면서 힘이 빠진적도 있었다. ─ 지금 생각해보면 그런 상황들은 꽤나 아찔한 순간들이 아니었을까 싶다. 아마 나는 흔히 말하는 무통주사빨(?)은 받지 못한것 같다. 이미 생으로 통증을 다 받아내고 있다가 뒤늦게 무통을 달았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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