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행복약사 Aug 12. 2016

여름밤, p29

더워서 쓰는 일기




잘 사는 법을 까먹었다.
언제는 알기는 했던걸까.


연애하는 법을 까먹었다.
언제는 알기는 했던걸까.




 선풍기가 돌아가는데, 분명 선풍기 바람이 한번씩 스치는 데에도, 이마엔 땀이 송글송글. 묘하게 피부가 끈적이는 밤이다. 공기중의 먼지들이 죄다 내 피부에 들러붙을 것만 같은 기분. 내가 걸어간 자욱이, 마치 민달팽이 지나간 자리에 남아있는 끈적이는 액체처럼 남아 있을 것만 같다.



ㅡ 아 싫다.



 어렸을때부터 사계절 중에 여름이 제일 싫었다. 한국의 장점이라면서 사계절이 뚜렷하다고 배울때면 그게 무슨 장점이냐고, 여름따위 사라져버렸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을 정도였으니까. 지금은 그래도 나이먹은 만큼이나, 뭔가를 '없어졌으면 좋겠다' 싶을 정도로 싫어해봤자 소용없음을 알게 되었기 때문일까. 모든 부분에서 그렇듯, 또다시 이 더위와 적당히 타협점을 찾아서 살아가고 있다.



푹푹찌는 더위속에, 복날의 삼계탕 속 털 뽑힌 닭마냥, 맨살을 내놓은 채 부끄러운 모양으로 꾸역꾸역 살다보면, 문득 그런 생각이 든다.



나, 잘 하고 있는 걸까.
이대로 괜찮은걸까.




 사실은 괜찮지 않을 지도 모르겠다. 어제 읽은 책에서는 "지금 당장 움직여라" "우물쭈물 거리다보면 뒤쳐진다"와 같은 문장들이 줄줄이 나를 옭아매고, 주변을 둘러보아도 다들 무언가를 하고 있는 것만 같고, 한번씩 만나는 사람들은 나를 편하게 사는 한량 취급을 하고 있으니까. 그렇다고 아니야, 라고 부정하고 싶진 않다. 분명, 이 세상에서 나보다 발에 불나게 사는 사람들이 많은 것이 현실이니까. 그리고 나보다 더 민달팽이처럼 사는 사람들도 어딘가에는 있겠지.



매번 그랬다. 대학때도, 사회초년생일때도, 뭔가 더 하지 않으면 안될 것 같은 압박감과 싸워왔던 것 같다. 그런 압박감은 느낀다면 뭔가를 하면되지 왜 그래?, 라고 무심하게 반문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봐도, 밤새 생각해봐도, 뭔가를 더 하는건 내가 행복해지는 길이 아니라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었으니까.





그렇다. 나는 항상
지금이 제일 행복했다.





 행복한 사람이 무슨 그렇게 고민이 많고, 그렇게 감정조절 안되고, 그렇게 힘들어하냐고 비웃을지도 모르겠다. 쓸데없이 사치스럽고 욕심이 많은 여자로 보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러한 모든것을 합쳐서 지금이 행복한 거니까. 행복한 사람은 1년 365일, 하루 12시간, 1분 1초 매순간, 무조건 웃고만 있어야 하는건 아니잖아. 행복한 사람도 고민할수 있고, 이래도 되는 건가,하는 ─ 어떻게 보면 인간 본연의 고찰을 할수도 있는거잖아. 그렇게 고민하다가도 다시 스스로 행복해질수 있는 사람이니까, 행복한 사람인거잖아.





행복하다 라는건,
완벽하다 라는 것이 아니니까.






매거진의 이전글 괜찮아. 잘될거야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