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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행복약사 Aug 31. 2016

인생을 '잘' 사는 법

《내 안에서 나를 만드는 것들》 - 애덤 스미스, 러셀 로버츠












p38. 인간이 아무리 이기적인 존재라 할지라도, 기본 바탕에는 이와 반대되는 선한 본성도 있다. 그래서 인간은 다른 사람의 운명과 처지에도 관심을 갖는다. 또 자신에게 아무런 이득이 없을지라도 다른 사람의 행복을 진심으로 바라기도 한다.



p40. 그렇다면 이기적인 인간은 어떻게 타인이 원하는 것을 주게 된 것일까? 이 의문에 대한 답은 간단하다. 스미스가 새로 정의한 이기심 때문이다. 우리는 타인이 원하는 것을 그냥 주는 게 아니라, 타인이 답례로 무언가를 줄거라고 전제했기 때문에 주는 것이다.




p44. 공정한 관찰자란 인간의 상상 속 인물로, 스미스에 따르면 인간의 행동은 이 공정한 관찰자와의 상호작용에 의해 이루어진다. 공정한 관찰자는 우리와 대화를 나누며 우리의 행동이 도덕적인지 확인해주는 공정하고 객관적인 인물이다. 즉, 어떤 행동이 도덕적인지, 어떤 행동이 옳은지 판단해야 할 때 우리는 이 인물과 얘기를 나눈다.



p45. 우리는 오직 공정한 관찰자를 통해서 나 자신, 그리고 내가 가진 것들이 미미하다는 것을 배운다. 우리는 공정한 관찰자의 눈을 통해서만 잘못 발현된 자기애를 바로잡을 수 있다.



p46. 우리가 신성한 미덕을 실행하는 것은 이웃과 인류를 사랑해서가 아니다. 이웃에 대한 사랑이나 인류애보다 더 큰 사랑, 더 강력한 애정 때문이다. 그것은 명예롭고 고상한 것에 대한 사랑, 존엄과 위엄에 대한 사랑, 그리고 탁월한 자신의 인격에 대한 사랑이다.



p62. 인간은 선천적으로 사랑받기를 원할 뿐 아니라 사랑스러운 사람이 되기를 원한다.



p69. 이렇듯 과분한 칭찬은 어떤 의미에서는 비난과 같다. 내가 할 수 있었지만 못 한 일을 상기시켜주기 때문이다.



p70. 가장 나약하고 가장 천박한 인간들만이 칭찬을 받으면 크게 기뻐한다. 자신이 절대 그럴 자격이 없음을 알면서도 말이다. 하지만 현명한 사람은 거짓 칭찬을 거부할 줄 안다.



p73. 스미스는 우리에게 이런 아첨에 속지 말라고 조언한다. 그는 자기 자신을 솔직하게 대면하라고 권한다. 그래야 현실이 정반대임에도 불구하고 '나는 충분히 사랑스러워'라며 자기최면을 거는 우를 범하지 않기 때문이다.



p83. 공정한 관찰자가 정한 기준, 혹은 주변 사람들의 기준에 왜 부응하지 못하는지, 그 이유에 대해 스미스는 다른 견해를 갖고 있었다. 바로 인간이 자기 기만에 빠지기 쉽기 때문이다. 그에 의하면 우리는 "공정한 관찰자가 실은 그렇게 공정하지 않아"라며 스스로를 속인다. 결국 자기애에 취한 나머지 공정한 관찰자이자 '가슴 속 그 사람'을 짓물러 버린다는 것이다.




p84. 자기기만은 솔직한 자기인식보다 훨씬 마음을 편하게 만든다. 그래서 사람들은 스스로를 속이기를 좋아한다. 자기 자신을 속이는 게 심적으로 훨씬 더 즐겁기 때문이다. 솔직한 자기인식에 있어서 사람들은 모두 겁쟁이다.



p86. 당신은 당신이 생각하는 것 만큼 사랑스럽지 않다. 나도 내가 생각하는 것만큼 사랑스럽지 않다. 이 현실을 직면하지 못하는 무능함, 자신이 실제보다 더 사랑스럽고 도덕적이라는 착각 때문에 우리는 자신의 결점을 고치지 못한다.



p90. 사람들은 실제로 이기적인데도 자신이 이타적이라고 말하는 이유는, 이타적으로 보이고 싶기 때문이다. 그것은 일종의 자기광고다. 사랑받고 싶어하는 바람을 이타적인 행태로 표현할 뿐이다. 자신의 이기심을 더욱 친절해보이는 행동으로 은폐하는 것이다.



p97. 길을 잃은 것도 모르면서 지나친 자신감을 갖는 것 보다 차라리 길을 잃은 현실에 직면하는 게 낫다.



p99. 많은 것을 알아갈수록, 앞으로 알아야 할 게 얼마나 많은지 더 깊이 깨닫게 된다. 그러니 모든 것을 알고 있는 척할 필요가 전혀 없다. 무지를 인정하면 더없이 행복할 수 있으므로.



p120. 인간의 삶이 비참하고 혼란스러운 가장 큰 이유는 소유물이 곧 나 자신이라고 착각하기 때문이다.




p121. 스미스가 말하는 정의란, 타인에게 상처나 피해를 주지 않는 미덕이다. 그가 말하는 신중이란 행동의 결과를 가늠케 하는 선견지명을 의미한다. 그리고 미래를 위해 오늘의 무언가를 포기할 수 있는 자제심, 이를 바탕으로 자신의 돌보는 미덕을 의미한다.




p134. 궁정에서의 화려한 노예생활을 과감히 버리고, 자유롭고 두려움 없이 독릭적으로 살겠다고 진지하게 결심했는가? 그 고결한 결심을 지킬 수 있는 한 가지 방법이 있다. 아니, 오로지 이 방법 밖에 없다. 한번 들어가면 되돌아 나온 사람이 없는 그 곳, 야심의 소굴로 절대 들어가면 안된다. 그리고 세상 거의 모든 사람들의 관심을 사로잡은 지배자들과 자신을 절대 비교해서도 안된다.




p135. 가능하면 내가 좋아하고 존중하는 일을 하고, 그렇게 해서 가족이 먹고 살 수 있다면, 그것에 만족하라. 그외의 모든 것은 '뜻밖에 얻은 횡재'로 생각하라. 있으면 좋지만 없어도 그만인 것이다.




p140. 20대에는 의지, 30대에는 기지, 40대에는 판단이 지배한다.

오래 살기를 바라기보다 잘살기를 바라라. - 벤저민 프랭클린




p154. 두 음이 정확히 똑같은 것이 동음이다. 반면 두 음이 똑같지 않아도 듣기에 좋은 것이 협화음이다. 동음이 아닌 협화음이야말로, 사람과의 관계에서 우리가 바랄 수 있는 최상의 결과다.




p158. 슬픔과 기쁨에는 차이점이 있다. 일반적으로 기쁨은 작을수록, 슬픔은 클수록 쉽게 공감하는 경향이 있다.




p163. 슬픔보다 기쁨에 더 많이 공감하는 인간의 성향 때문에, 우리는 부를 과시하고 가난을 감춘다. 많은 사람들 앞에서 고통스러운 우리 모습이 드러나는 것은 매우 치욕적인 일이다. 가난한 우리 처지가 만천하에 드러났음에도, 우리가 겪는 고통의 반만큼도 연민하는 사람은 존재하지 않는다. 이는 크나큰 비애다. 인간의 이런 본능때문에 우리는 부를 추구하고 가난은 피하는 것이다.




p172. 신중한 사람은 활동적이며 자신의 꾸준히 관리한다. 또한 열심히 일하고 빚을 지지 않으며 벼락부자와 같은 허황됨을 멀리한다. 즉, 한탕주의를 경계하고 성실하게 일해 조금씩 나아지는 삶을 살고자 한다.




p185. 선행의 원칙들에 있어 애매한 부분이 많기 때문에, 선하게 사는 일이 무척 힘들 수 밖에 없다. 무엇을 할지 확신하지 못해서가 아니다. 아주 정확하게 지킬 수 있는 선행들의 원칙들이 없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아주 이기적인 일을 하고도 자신이 이타적인 일을 했다고 착각하기가 쉽다.




p198. 어쩌면 세상을 더 좋은 곳으로 만드는 최고의 방법은 그저 최고의 남편, 최고의 엄마, 최고의 이웃이 되는 것일지도 모른다. 혹은 훌륭한 회사원이나 관리자, 사업가가 되는 것일지도 모른다. 가끔 사람들은 직업을 이기적인 부분으로 치부하는 경향이 있다. 직업이라는 것은 단지 돈을 버는 수단이라는 것이다. 반면, 자선 단체에 기부하거나 자원봉사를 하거나 헌혈을 하는 등의 행동만이 이타적이라고 오해한다. 하지만 자기 일을 잘 해내는 것 역시, 남에게 도움이 되고 더 좋은 세상을 만드는 데 충분히 기여한다. 사람들은 이 사실을 왜 까맣이 잊는걸까.




p235. 내가 손잡이를 힘껏 돌리다고 해서 세상의 모든 문이 다 열리는 건 아니다.













건강하고, 빚이 없으며
양심에 거리낌 없는 사람의 행복에 무엇을 더하겠는가.





 애덤 스미스. 보이지 않는 손. 국부론. ─ 정규교과과정을 마친 사람 중에서 이 세 단어를 접해보지 않은 사람이 누가 있을까. 나 역시 뼛 속까지 이과생인데다가, 경제학쪽으로는 거의 문외한이나 다름 없는 사람이지만, 이 세 단어는 알고 있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경제학'의 아버지라는 애덤 스미스에 대해서는 마치 무역과 셈과 경제적 이익에 대해서만 관련이 있는 어떤 인물로 치부해 왔었다. 하지만 이 책을 접하면서 완전히 생각이 달라졌다.




 '경제학이야말로 인생을 최대치로 활용하는 방법에 관한 학문이다'

인생은 끊임없는 선택의 연속이다.
인생을 최대치로 활용한다는 것은
곧 인생에서 현명하고 훌륭한 선택을 최대한 많이 한다는 뜻이다.
이렇듯 하나를 취하고 다른 하나를 버리는 선택에 대하여,
그리고 내 선택이 다른 사람들의 선택과 어떤 관계가 있는지 잘 이해하는 것이
바로 '경제학의 본질'이다.






 이과생이라서 몰랐어 라든가, 전공이 아니라서 모르는게 당연해 라는 자기합리화로 나 자신에게 면죄부를 줄수 있을지는 모르겠으나, 이 책은 여러가지로 나의 사고관 전체를 환기시켜 주는 신선한 책이었음은 분명했다. 단순히 수적 개념으로만 받아들여 왔던 '경제학' 자체에 대한 관념까지 완전히 바꾸어 놓았으니까. 그리고 경제학이라는 학문이 그러하기 때문에, '국부론'의 저자 애덤 스미스가 어떻게 이렇게 까지 '인간'과 '삶'에 대한 깊이 있는 고찰을 할수 있었는가에 대해서도 완벽하게 이해하게 된다.






 그는 돈, 명예, 야망, 미덕을 어떻게 다뤄야 하는지에 대해
시대를 초월한 현실적인 방법과 해결책을 제시한다.





 그렇다. ─ 그러하기 때문에 애덤 스미스는, 그 무엇보다도 "잘 사는 법"을 심층있게 다루는 책을 쓸 수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 책은, 너무나도 잘 알려진 '국부론' 보다도 애덤 스미스 스스로도 애착을 갖고 죽는 날 까지 수정에 수정을 거듭해 왔다는 것이다.



 이 책은 정확히 말하자면, 애덤 스미스의 <도덕감정론> 그 자체의 번역서는 아니다. 하지만 그 어렵고 방대한 책을 간단하고 집약적으로 해석해준 이 책이 있기에 우리는 감사할 따름이다. 오래 전에 쓰여진 그 방대한 책을 읽다가 마는 것보다는, 대략적으로라도 핵심을 짚어서 깨닫는 편이 훨씬 나으니까. 어쩌면 경제학적인 효용성으로 보더라도 그 편이 나을지도.





감정을 누그러뜨려 주위 사람의 감정과 조화를 이루려면,
원래 올라가 있던 음에서 반음을 내려야 한다.





 솔직히 요즘 서점을 가면, 너무나도 많은 자기계발서들과 인문학 책, 에세이 집이 널려있다. 그만큼 지적으로 습득할수 있는 선택의 가지의 수가 많고, 그만큼 많은 지혜를 쉽게 얻을 수 있다는 이야기일 수도 있으나, 한번씩은 서점 입구에서부터 정신없이 널려있는 수많은 책들을 볼때면, "방만하다"라는 단어가 생각나곤 했다. 책임없이 일단 써내려간 글들, 일단 남들 앞에 내 보이고는 한번 읽어봐, 라고 말하는 듯한 무책임함─이라고 생각한다면 내가 너무 비판적으로 바라보는 것일까. 하지만, 솔직한 나의 느낌을 그러했다.




 하지만 이 책은 분명 다르다. 그토록 오랜 시간 전에 쓰여졌다는 것이 믿기지 않을 정도의 깊이 있는 통찰력과 수려한 비유. 우리는 애덤 스미스의 문장 하나하나에 감복하고 만다. 그냥 지나가다 생각나서 써내려간 글이 아님을, 우리는 그의 생각을 접하면 접할수록 깨닫게 된다. 단순히 겉으로만 '잘 사는 법' 이 아니다. 이 책에는 진심이 있고 진실이 있다. 때로는 그 진실이, 요즘 같은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호된 채찍질을 할 지언정, 우리는 분명 그 진실을 받아들이고 달라져야만 하는 것이다.




 

p180.

살다보면 주체 못할 욕망과 평소 옳다고 생각하는 신념이 충돌할 때가 있다. 이 때는 세상의 규범과 도덕의 원칙이 공정한 관찰자의 목소리를 지지 않은 역할을 한다. 스미스는 '빚은 항상 갚아야 하고, 남의 물건은 훔치면 안되며, 배우자를 배신해서는 안된다.'와 같은 상식적 원칙에서 벗어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이는 특히 자기기만에 맞설때 중요하게 작용한다. 이 원칙이 깨지는 순간, 인간은 자기 합리화에 빠진다. 그리고 스미스의 표현 그대로, 그 어떤 흉악한 범죄도 거리낄 게 없어진다.





 가령 예를 들면, "빚은 항상 갚아야 하고, 남의 물건은 훔치면 안되며, 배우자를 배신해서는 안된다"와 같은 상식적 원칙 ─ 우리는 이러한 기본적인 상식조차 잊고 살아가고 있는 것은 아닌가. 우리 모두가 자기기만과 합리화에 빠져서 허우적대고 있는 것은 아닌가. 이젠 누구나 그 자기기만에 빠져살기에, 오히려 그러한 당당함으로 가장한 '뻔뻔함'과 '가식'을 내세우지 않으면 바보라고 손가락질 하는, 그런 뒤집어진 세상이 되어버린 것은 아닌가. 이런 생각이 들 때면, 책을 읽으면서도, 이런 애덤 스미스 책 따위가 무슨 세상을 바꾸겠냐며, 그런 그의 옳은 소리는 다 헛소리야, 라며 내던지고 싶은 마음도 들수도 있다. 하지만 그런 상황까지 예측한 것일까. 러셀 로버츠는 분명히 이렇게 말한다.






요즘 세상에선
몸을 사리다가 기회를 놓치면 바보가 된 것 같은 기분이 들 수도 있다.
그러나 저렴해보이는 야바위꾼보다 차라리 바보가 되는 것이 낫지 않을까.






 우리는 분명 선택의 기로에 서 있게 된다. "저렴해 보이는 야바위꾼"이 될 것인지, 아니면 "바보같아 보이는 제대로된 인간"이 될 것인지. 어짜피 나 하나가 바로 산다고 해서 이 야바위꾼이 넘쳐나는 세상은 쉽게 바뀌지는 않을지도 모른다. 특히 요즘 우리 나라의 모습은 참으로 참담하다 못해, 사기꾼이 판을 치는 세상이 아닌가 싶을 정도이지만. 그래도 우리는 바르게 살아야 한다. 원칙을 지키며 살아야 한다. 물욕에 어두워 사기를 치고, 남의 뒷통수를 치고, 그러고도 그렇게 독하게 살아야 한다며 자기 합리화하지 말고, 제대로 살아야 한다. 바르게 사는 사람에게 박수를 치고, 사기꾼들의 혀놀림을 세차게 걷어차버릴 수 있는 강단을 갖고 살아가야 한다. 비겁한 야바위꾼이 되지 않고, 정직하게 살아야 한다. 정의롭게 살아야 한다.





어쩌면 세상을 더 좋은 곳으로 만드는 최고의 방법은
그저 최고의 남편, 최고의 엄마, 최고의 이웃이 되는 것일지도 모른다.






 비록 30대 밖에 되지 않는 사회 꼬꼬마일지라도, 그동안 여러 인간관계와 사회생활을 겪으면서 고민이 많던 차에, 이 책을 감히 나는 "나의 인생 책"이라고 명명하고 싶다. 가식과 뻔뻔함이 넘쳐나는 세상 속에서 반듯하게 살아가는 사람은 항상 손해를 봐야 하는가, 세 치 혀로 놀리는 자기합리화가 그 뻔뻔함과 결부되면 놀라운 힘을 발휘하게 되고, 그것이 좋아보여서 너도나도 휩쓸려서 서로서로 뒷통수치고 거짓말과 허세로 치장하는 세상에 환멸을 느끼던 요즈음, 이 책은 마치 나에게, '그래도 네가 생각하는 삶이 바른 것 맞다'라고 말해주는 것만 같아서.



 정직하게 살고 싶다. 신중하게 살고 싶다. 그렇게 살다 가고 싶다. 나의 정직함이 자신의 치부를 드러내보이게 만들기에 오히려, 나의 정직함에 돌을 던지는 자들에게 휘둘리지 않고 그렇게 살고 싶다. 나와 닮은 사람들 속에서 착하게 살다 가고 싶다. 진정으로 잘사는 법을 알고 싶어 하는 사람들에게, 나는 이 책을 반드시 손에 쥐어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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