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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행복약사 Aug 23. 2016

0.1mm 굵기의 펜으로 그린 마음의 세밀화

《마음》 - 나쓰메 소세키






 책을 읽게 되는 데에는 여러가지 동기가 작용한다. 시간을 떼우기 위해서, 혹은 좋아하는 작가라서, 베스트셀러라서 등등. 내가 이 책을 읽은 것은 순전히 "지적 욕구" 였다. 지적욕구라고 하니, 마치 내가 엄청난 다독가인것 같지만, 실상은 정반대일 것이다. ─ 너무 몰라서. 그것이 이유였다.



 나쓰메 소세키. 그 유명한 글자를 몇번이나 접하고서도 20대 중반이 넘어서까지 그의 책을 단 한권도 안 읽었다는 것에 대한 지적 굴욕감, 그것이 이유였을 것이다. 그리고 그 부끄러움을 나는 '욕구'니, '호기심'이니 하는 단어로 포장하고 있을 뿐. ─ 그렇다. 나는 단순히, 일본 문학계에서 그렇게 유명하다는 그의 소설을 하나 읽어보고 싶었을 뿐, 단지 그것 뿐이었다.





인간을 사랑할수 있는 사람,
사랑하지 않고는 못 배기는 사람,
그러면서도 자신의 품 안으로 들어오려는 사람을
두 팔 벌려 껴안을 수 없는 사람,
그가 바로 선생님이었다.





 모든 소설이 그러하듯, 처음엔 뭘 말하려고 하는 소설인지 어리둥절 한 채로 몇 장을 넘기게 될 것이다. 그러다가 우리는 자연스럽게 그 어리둥절함이 호기심으로 바뀌는 순간으로 넘어가게 되고, 재밌는 소설과 재미없는 소설, 좋은 문학과 그렇지 않은 문학, ─ 그것을 판가름하는 것은 그 다음부터이다. 나쓰메 소세키의 《마음》이라는 소설의 묘미는 초반의 나즈막한 언덕을 살짝 넘어가는 순간부터 시작된다. 정신없이 빨려 든다. 그러다가 중후반으로 접어들어서부터는 내 자신도 잃고 완전히 몰입하게 된다. 휘몰아친다. 가슴이 뛰는 것으로 모자라, 뇌 속에 마치 좌심방 우심실이 있는 것 마냥 뇌가 쿵쾅거린다. 머리가 뻑뻑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동공은 더 커진다. 그렇게 ─ 완벽하게 이입한다.




 내가 이 책을 덮었을 때의 기분을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이렇게 표현할 수 있을 것 같다. ─ 세밀하다. 이렇게 세밀한 묘사는 본 적이 없다. 인간의 내면묘사를 이렇게 확실하게 표현해내다니! 소설을 잃는 내내 나는 나쓰메 소세키, 그의 통찰력에 감탄하게 된다. 무라카미 하루키처럼 유려하고 아름다운 묘사력과는 사뭇 다른 세밀함. 뛰어난 비유라든가 문장이 아름답다거나 하는 세밀함이 아니라, 말그대로 '적나라한' 세밀함 그 자체. 어떤 부분도 빙빙 돌려서 묘사하지 않는다. 너무나도 적나라하게 표현하고 있다. 마치 이게 바로 '인간의 내면 그 자체야'라고, 그동안은 사실에서 눈돌린채 살아가고 있던 독자에게 비수를 꽂듯이 보여주는 것만 같다.





향내를 맡을 수 있는 건 향을 피우기 시작한 순간뿐이고,
술맛이 느껴지는 건 술을 마시기 시작한 찰나인 것처럼
사랑의 충동에도 그런 순간이 존재한다고 생각하네.






 인간의 원초적인 감정인 질투와 사랑과, 번민과 고독과, 물욕과 배신감과, 그 사이에서 일어나는 모든 미묘한 내면을 이렇게 잘 표현해 낸 작품이 또 있을까. 어설프게 인물관계를 해석하고 사랑했니 안했니, 잘했니 못했니, 하는 1차원적 관점은 버려두길 바란다. 이 책은 그 자체의 스토리 또한 탄탄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인간의 내면에서 일어나는 여러가지 감정의 도가니를 온몸으로 받아들이는 것일 것이다. 그것이 때로는 너무 추악하고, 괘씸하고, 비겁하고, 어리석을지라도, 우리는 잘 알고 있으니까. 그것이 또한 '나'의 일부라는 것을.






과거에 그 사람 앞에서 무릎을 꿇었다는 기억이
이번에는 그 사람의 머리 위에 발을 얹으려고 하지.
나는 훗날 모욕당하지 않기 위해 지금의 존경을 거절하고 싶네.
지금보다 더 외로운 미래의 나를 견디는 대신
지금의 외로움을 견디고 싶어.
자유와 독립, 그리고 자아로 충분한 현대에 태어난 우리는
그 대가로 모두 이 외로움을 맛봐야 하는 거야.






 메이지 유신으로 대표되는 일본의 시대적 상황과 연관지어서 어떤 의미를 더 부여할 수도 있겠지만, 그러한 번민하는 '지식인'의 일기로 치부하기에는, 이 책에 담긴 이야기는 그러한 편협된 공간에만 속한다고 보기엔 너무나도 광범위하다. 개인차가 있겠지만, 적어도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인간의 내면에서 일어나는 감정 변화의 모든 것을 얇은 굵기의 펜으로 세심하게 그려낸 한 폭의 세밀화 같은 소설. 나는 단순한 지적 자격지심에서 비롯하여 읽은 소설이었지만, 나쓰메 소세키의 다른 소설들도 분명 읽어볼 것이다. 그의 깊이 있는 통찰력과 그에 못지 않은 표현력에 완벽하게 매료되어 버렸으니 말이다.

 










p26. 나는 이 세상에서 여자라는 존재를 단 한사람 밖에 알지 못하네. 아내 이외의 여자는 전혀 여자로 보이지 않거든. 아내 역시 나를 이 세상에 단 하나뿐인 남자로 생각하지. 그런 의미에서 우리는 세상에서 가장 행복하게 태어난 한 쌍이어야겠지.




p35. 나는 내 자신조차 믿지 않는다네. 요컨대 자신을 믿지 못하기 때문에 남도 믿을 수 없는거야. 자신을 원망하는 수 밖에 달리 방법이 없어.





p35. 날 너무 믿지 말게. 얼마 안돼 후회할 테니까. 그리고 자신이 기만당한 보복으로 잔인한 복수를 하게 될지도 모르지.





p64. 태어날 때부터 나쁜 사람은 없어. 평상시에는 모두 착한 사람들이지. 적어도 모두들 평범한 사람들이야. 그러다가 한순간 악인으로 돌변하니까 무서운거지. 그러니까 방심하면 안되는 거야.





p123. 나는 비겁했네. 그리고 비겁한 많은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번민했네.





p148. 내가 종교에만 쓰는 이 단어를 젊은 여자에게 쓰는 것을 보고 자네는 이상하게 생각할지도 모르지만 나는 지금도 굳게 믿고 있네. 진정한 사랑은 신앙심과 그다지 다르지 않다는 걸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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