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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행복약사 Apr 11. 2017

역사에도 '오프'가 있다면

《일요일의 역사가》 ㅡ 주경철







p140.

거시사는 이 세상의 큰 줄기를 과학적으로 파악하여 전체적인 세계상을 제시하는 것을 목표로 삼고 있다. 다시 말해서 이 세상을 설명하는 모델을 구축하는 것이다.

(중략)

그러나 그렇게 망원경으로 세계를 바라보는 것만으로 이 세상을 다 이해할 수는 없는 일이다. 인간의 삶은 통계분석과 거대서사 속에 편입될 정도로 기계적이지 않으며, 이 세상은 법칙으로 이해하기엔 너무나 불확실하다. 우리 주변에서 자주 보듯, 세상에는 정신이 이상한 인간들, 폭력적인 인간들, 성질 고약한 인간들이 넘쳐난다. 온 세상 사람들이 모두 합리적으로 생각하고 선량하게 살아갔다면 이 세상은 벌써 지상천국이 되었을 테지만, 인간은 그런 존재가 아니다. 그러니 차라리 생각을 바꿔 우리가 바라보는 역사의 틀을 확 좁혀서 정밀하게 읽어보는 것도 한 방법이다.




 언제나 새로운 것을 접하면 기분이 좋다. 나에게 이 책은 일종의 일탈이었다. 역사나 인문학, 예술을 싫어하진 않는다. 오히려 좋아하는 쪽이라서, 즐겨 찾아 읽곤 하는 분야이다. 하지만 그런 책들에서 흔히 예상할 수 있는 이야기의 흐름이랄까, 전개양식이랄까, 정보의 주제와 내용이랄까, 그런 류와는 다른 책을 읽고 싶었던 것 같다.



'일요일' ─ 그것은, 일종의 오프였다. 휴일이고, 쉬는 날이다. 작가 주경철은 서문에서 그 뜻을 밝힌다. 고리타분한 흐름을 벗어난, 일종의 휴식이자 일탈. 그것이 일요일이고, 그리하여 이 책은 역사의 변두리, 혹은 주로 언급되고 주목받는 부분에서 살짝 벗어난 이야기를 하겠노라고. 이 책은, 분명 역사를 이야기 하고 있는데, 고전문학부터 시작하여, 회화, 소설, 영화에 이르기까지 다방면에서 끄집어낸 역사 이야기를 하고 있다. 그렇다. 역사가가 항상 늘 똑같은 이야기만 할 필요 있는가. 이 책은, 늘 똑같은 이야기만 하고 있을 것만 같은 역사가의, 휴식시간 잡담 같은 책이다.






p25.

세상에서 가장 쉬운  일이 무엇인가? 남에게 충고하는 일이다. 
그렇다면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일이 무엇인가?나 자신을 아는 것이다.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 탈레스의 말이다.




솔직하게 말하자면, 이 책은 잘 읽히지 않는다. 특히 책의 앞부분은 졸음과 사투를 벌이며 꾸역꾸역 읽어 나가야 할지도 모르겠다. 분명히 '일요일'이니까 이야기가 가볍고 재미만 있을 줄 알았는데, 뒷통수를 맞은 기분이다. 하지만, 조금만 참고 더 읽어보자. 앞부분은 유럽의 고전 및 신화, 철학에 대한 지식이 어느정도 바탕이 되어야 잘 읽히는 성격의 주제이기 때문에, 다소 생소한 우리들에게는 조금 힘겨운 것이 당연할 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고비를 조금만 이겨내면, 




아─, 읽히기 시작한다. 흥미롭다. 심지어 빠져든다.







p131.

그러면 그대는 우리가 어느 것이 올바른 계율인지 모른다고 생각하는가?
그렇습니다. 모든 사람은 자신의 신앙만이 옳다고 생각하지만, 진정 어떤 것이 좋은지는 알 수 없지요.






우리가 지금까지 접해온 '역사'는 '거시적'인 관점이었다. 이 책에서 보여주는 '미시적 역사'들은 꽤나 흥미롭다. 한 시대 살았던 어느 농부 한명의 재판기록을 가지고도 그 시대의 민중의 마음을 읽어나가고, 어느 인쇄소에서 벌어진 사건을 가지고 그 시대의 어두운 모습을 끄집어 내기도 한다.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중세시대의 마녀사냥에 담긴 진짜 의미를 캐치해내기도 하고, 우리가 흔히 생각했던, '연약'하게만 여겨진 여성에 대한 관념이, 사실은 그 일면에는 '파격'과 '일탈'의 주모자로서의 관념이 더 컸을 수도 있다는 사실을 새롭게 접하게 된다. 그냥 어린시절 재미있게 읽었던 소설 '로빈슨크루소'가 내포한 진짜 시대상은 무엇이었으며, 실제로 일어난 한 비극적 사건으로 하여금 인간의 잔혹성과 악랄함의 끝을 보여주기도 한다. 내가 너무나도 좋아했던 영화 '쉰들러리스트'는 사실 헐리우드의 감성적 산물에 지나지 않을 수 있다는 비판과 함께, 영화가 보여주는 역사의 한계를 다시 파헤친다. 





p306.

기억은 끊임없이 다시 창조된다. 기억을 놓아버려서도 안 되며. 기억을 독점해서도 안 된다. 기억은 우리 존재의 핵심 구성요소이기 때문이다.




이 책은 어떤 '감상'을 말해야 하는 책이 아니다. 재밌다, 라든가 좋다, 라는 형용사를 붙일 법한 책이 아니다. 이 책은, 그저 '읽어보아야 할' 책이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알고있는 역사관을 살짝 비틀어 놓을 수도 있고, 그 역사의 내밀하고 은밀한 곳까지 깊이 파고들 수도 있다. 




다만, 처음엔 이 책에 적응하는 게 조금 부담스러울 수도 있지만, 걱정하지 말길 바란다. 그것은 시간이 충분히 해결해 줄 수 있을 것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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