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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행복약사 Mar 09. 2017

막힌 가슴을 뚫어주는, 엉뚱하고 우스운 정신과 이야기

《공중그네》 ㅡ 오쿠다 히데오








인생, 길지 않다.
지금 당장 내뱉어야 할 걸 쏟아내지 못하면.





 오쿠다 히데오의 《공중그네》. 내가 이 책을 몇 번이나 읽었을까. 몇 년전 이 소설을 처음 접했을 때, 나는 그의 단백하고 속도감 있는 문체에 빠져 단숨에 이 책을 읽어버렸었다. 그리고 주변에 정말 재밌는 소설을 발견했다고 추천하고 다녔었다. '오쿠다 히데오'. 나는 그의 글이 좋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유려하고 아름다운 문체나 이병률의 따뜻하고 풍요로운 문체처럼, 시간이 지나도 눈가에 촉촉하게 남아있는 여운이 긴 미문들도 좋지만, 군더더기 하나 없이 단백한 글 속에 모든 내용을 순식간에 담아내는 오쿠다 히데오의 글도 좋다. 특히나 나처럼 글을 만연체로 길게 쓰는 성격의 소유자는, 오쿠다 히데오처럼 단박에 읽혀지는 깔끔한 문체를 보면 경이로울 뿐이다. 짧고 깨끗한 하나의 문장에 이렇게 모든 것을 담아낼수 있다니.



아마도 5번은 족히 넘었을 것이다. 내가 이 책을 읽은 것은. 다만 한 가지 부끄러운 것은, 이렇게 그의 소설에 빠져버려 놓고는 정작 그의 다른 작품들은 전혀 읽어보지 않았다는 사실. 시간이 없어서, 여유가 없어서, 이미 읽을 책들이 많아서, 등등의 갖은 변명을 내어보지만, 결국은 나의 모순된 모습이 아닐 수 없다. 그러하기에 나는 어느 잠들기 전의 밤, 또다시 그의 소설을 집어들면서 다시한번 다짐해 본다. ─ 조만간 꼭 그의 다른 작품을 읽어보아야지.




p106.

"그런 희한한 놈도 살아갈 수 있으니 세상은 아직 살 만한 곳이다, 그런 안심이 되는 거겠지."
"뭐, 그러면 또 어때. 주위 사람을 편하게 해주는 성격이 소중한 거지."




정신과의사와 환자 간에 일어나는 에피소드로 엮어진 이 소설은, 솔직히 많이 엉뚱하다. 특히 전형적인 정신과 치료와는 동떨어진, 그리하여 거의 판타지에 가까운 정신과치료의 행태를 보면 현실감이 떨어지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이 소설이 우리가 완전히 동떨어진 이야기를 하고 있다고 생각되지가 않는다. 그저 빠져든다.



─ 어쩌면 이 환자는 '내'가 아닐까.




그렇다. 현대인들이 앓고 있는 크고 작은 정신적인 상황을, ─ 조금 과장하긴 했지만 ─ 이 소설에 나오는 환자들의 양상으로 드러내 보이고 있다. 내가 느끼는 강박적인 모습들이라든가, 우울함이라든가, 질투심으로 인한 히스테리라든가, 타인에 대한 적대심으로 인한 트라우마라든가, 이 모든 모습들은 지극히 '사소한' 상태이지만, 그것을 과장해서 표현한 모습이 바로 이 소설 속에 있는 것이다. 그러기에, 우리는 이 소설 속 인물에게 연민과 공감을 가지고 지켜보게 된다.



그리고 가장 현실감 떨어지는건, "이라부 정신과"의 모습이지만, 우리는 현실에는 존재하기 힘든 그의 치료법을 소설로라마 간접적으로 체험하고는, 이 책을 덮을 즈음엔 왠지 모르게 꽉 막혀 있던 우리 가슴 한 구석이 뻥! 뚫리는 기분을 느끼게 된다. ─ 아마도 나는, 그 뻥! 뚫리는 기분이 좋아서 이 소설을 그렇게나 많이 읽었었나보다.





무너져버릴 것 같은 순간은 앞으로도 여러 번 겪을 것이다.
그럴 때마다 주위 사람이나 사물로부터 용기를 얻으면 된다.
모두들 그렇게 힘을 내고 살아간다.





좌충우돌. 뒤뚱뒤뚱. 넘어지고 부딪히며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정신과의사 이라부는 아무것도 모르는 아이같은 모습으로 다가오지만, 사실은 우리들을 정확하게 꿰뚫어보고는 적절한 치유법을 제시해준다. 나 자신이 만들어 놓은 틀 속에 갇혀, 혈관에 막힌 플라그처럼 응어리 맺혀 있던 나의 모습을 깨뜨려 주는 소설. 내가 만든 갑갑한 틀을, 마치 이라부의 둥글둥글한 인상마냥 둥글게 바꾸어 주는 소설. 그리하여, 사실은 인생은 이렇게 살아가야 해,라고 어깨를 툭툭 치면서 위로해 주는 소설. 



역시 이 소설을 읽고 나면 왠지 머리가 맑아지는 기분이다. 오쿠다 히데오의 간결하고 담백한 문장 역시, 그 맑은 기운에 더욱 힘을 실어주는 듯 하다. 



현대를 살아가는 사람들 중에서, 가슴이 퍽퍽하고, 머리가 꽉 막힌 기분이 드는 사람이 있다면, 모든 걸 내려놓고 한번쯤 읽어보라고 권하고 싶다. 어쩌면 그 사람은, 지금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될지도 모르겠지만 말이다.












p188.

"이봐, 체면 때문에 절절매고 사는 거 힘들지 않아? 꾸밈없이 소탈하게 사는 게 훨씬 편하잖아?"



p208.

재능을 타고난 사람들은 자기가 어떻게 그렇게 할 수 있는지 생각해보질 않아. 그러니까 일단 톱니바퀴가 어긋나기 시작하면 고치기가 어렵지.



p306.

인간의 보물은 말이다. 한순간에 사람을 다시 일으켜주는 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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