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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행복약사 Mar 03. 2017

입맛에 잘 맞는, 퓨전 요리같은 소설

《브루클린의 소녀》 ㅡ 기욤 뮈소








살다보면 180도로 휘어지는 커브 길이 나타나기도 하는데,
하필 그럴 때면 우리는
언제나 전속력으로 달리고 있게 마련이다.
-스티븐 킹





기욤 뮈소. 그를 참 오랜만에 접했다. 나의 대학시절 어느 서점이나 들어가면 눈앞에 딱, 놓여있었던 것이 기욤 뮈소의 책들이었는데. 그로부터 벌써 꽤 오랜 시간이 흘러버렸다. 나 역시 그 긴 시간동안 기욤 뮈소라는 '이야기꾼'의 존재를 잊고 지냈던 것 같다. 그러다가 우연히, 그의 신간이 나온다는 소식을 접하게 되었고, 나는 푸른색 대학 교정을 거닐던 풋풋한 기억을 떠올리며 이 책을 집어 들게 되었다.



─ 오랜만에 만난 그는, 여전히 뛰어난 이야기꾼이었다. 



그럴 때가 있다. 책을 읽고 싶으면서도 글이 눈에 들어오지 않는 기간. 책이 읽히지 않는 갑갑하고 지리한 시간. 고구마 먹은 듯한 퍽퍽함으로 책장이 무겁게만 느껴지는 기간. 요즈음 얼마간 그런 기간속에 속해 있었던 나는, 다시 책이라는 세계에 뛰어들게 해줄 무언가가 절실했다. 그러다가 나는 언젠가 사두고서는 아직 읽지 않았던, 그의 책을 집어들었다.



처음 얼마간은 집중이 잘 되지 않을 것 같았다. 그 동안의 책이 읽히지 않는 시간들의 연장선일테지. 하지만 이 책은 놀라웠다. 처음부터 휘몰아쳐서, 독자가 책을 내려놓지 못하게 막아서고 있었다. ─ 아, 역시 기욤 뮈소는 탁월한 이야기꾼이다.



이 소설의 장르를 칭하자면 어떻게 칭할수 있을까. 서스펜스 스릴러 추리 로맨스? ─ 그렇다. 이 책은 여러 장르가 한데 섞여 있는 퓨전 소설 같다. 그것도 우리 입맛에 맞게 잘 혼합된. 초반부터 독자들에게 "물음표"를 커다랗게 찍어 놓고는, 그 물음표를 좀처럼 풀어주질 않는다. 독자는 궁금해서, 너무나도 궁금해서, 다음 장을 읽어나가지 않으면 안되게 된다. 그렇게, 기욤 뮈소의 스토리에 포획되고 만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 소설이 무슨 삼류소설마냥, 독자의 흥미만 좇는 그런 소설은 단연코 아니다. 이 소설의 놀라운 점은, 말 그대로 '재미 위주'의 스토리 속에 냉철한 현실에 대한 자각이 같이 녹아들어 있다는 것이다. 그것이 읽는 이로 하여금 불편할 정도로, 대놓고 사회를 비판하거나 손가락질 하는 형태가 아니라, 너무나 자연스럽게 녹아들어 있어서, 혹자는 그저 스쳐지나가고 말 법할 정도로만 관여하고 있을 뿐이다. 





p236.

내 질문에 그 여기자는 '시민의 알 권리 차원'이라고 답변했다.
피해자는 물론 가족들 모두가 괴로워하고 있는데 '알 권리'를 충족시켜주어야 한다는 미명 아래 원색보도와 과장된 보고, 심지어 관음주의적인 성향의 보도까지 덧붙일 필요가 있을까? 기껏해야 술을 마실 때 가십거리로 삼을 이야기를 널리 퍼뜨리고, 사건의 본질과는 전혀 관련없는 내용으로 시청률을 끌어올려 광고나 팔아보려는 사람들이 과연 '알 권리 차원' 운운할 수 있을까?




희대의 납치범에게 납치된 십대 소녀. 그녀가 그토록 그녀의 과거를 숨기고 신분을 숨겼던 이유. ─ 우리는 미디어로부터 정보를 얻지만, 그 미디어의 동전의 양면성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자극을 위한 자극, 이슈를 위한 이슈, 논란을 위한 논란. ─ 나는 이 모든 것을 증오한다. 일명 특종이라고 불릴만한 관심을 위하여, '진실 없는 정보'를 퍼뜨리고, 정작 정확한 진실이 밝혀질때쯤에는, 벌써 또다른 이슈를 퍼뜨리느라 이전의 정보에 대한 수정을 대대적으로 하지 않은채, 얼렁뚱땅. 우리 독자들은 또다시 미디어에 휘둘려, 과거 사건의 진실은 뒤안길로 보내버리고, 눈앞에 놓여진 새로운 정보에 놀라고 있다. 자극할수 있는 이야기라면 개인의 존엄성을 파괴하면서까지 이슈를 시켜버리는, 그리하여 피해자가 제대로 된 생활을 할수 없을 정도로 파헤쳐버리는 습성. 그것이 독자인 우리들이 '알아야 할 권리'라면 나는 그 권리를 당장 쓰레기통에 던져버리겠다. 



지금은 그녀가 단두대에 올라가 있지만, 언젠가는 나 역시 그 단두대에 올라 갈 수도 있으며, 그 때에도 미디어는 나 이외의 모든 사람들의 '알 권리'를 운운하며 나를 옥죄고 파헤칠테니까. 



그리하여 나는, ─ 오롯한 진실만을 알고 싶다. 그들의 그때그때 찌라시로 들려오는 특종따위엔 관심 없으니까. 빠른 정보보단, '정확한 정보'를 원하니까.





p261.

카메라는 인간의 눈이 놓쳐버린 찰나의 순간을 포착해 증거로 남기지만 이미 증발해버린 잔상에 불과하지 않은가? 카메라는 셔터를 누르는 순간 반드시 표적의 심장을 관통한다. 아무리 시간이 흘러도 사진으로 남아있는 과거의 순간은 강력한 위력을 발휘한다. 사진 한 장에는 안타깝게 잃어버린 기회와 다시는 찾아오지 못할 사랑의 추억이 담겨 있기도 하고, 이미 과거가 되어버린 쓰라린 기억들이 오장육부를 뒤흔들어놓기도 한다.





소설은 언제나 현실을 반영한다. 기욤 뮈소의 "브루클린의 소녀"는 픽션이고, 단순한 재미위주의 스릴러일 뿐이지만, 그녀가 존재하는 것은, 현실이 없다면 불가능하다. 이 소설은 결코 판타지는 아니니까. 




한동안 책이 읽히지 않아서 답답해 하던 나에게 사이다 같은 청량감으로 다가온 이야기. 기욤 뮈소는 역시 뛰어난 이야기꾼이다. 







인간은 진실을 안다고 이야기하지만
언제나 그 자신이 생각하는 진실만을 알고 있을뿐이다.
다시 말해 인간이 알고 있는 진실은
자신의 관점에서 바라본 하나의 양상에 지나지 않는다.
-  프로타고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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