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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행복약사 Feb 08. 2017

살다보면 사랑도 그렇게 완성될 겁니다

《바람이 분다 당신이 좋다》 ㅡ 이병률






아무도 사랑하지 않아서 터져버릴 것 같은 시간보다
누구를 사랑해서 터져버릴 것 같은 시간이
낫지 않느냐고 묻고 싶다.





이병률이 왜 좋으냐고 묻는다면, 나는 그의 '글' 그 자체가 좋다고 말하고 싶다. 어떤 주제라든가, 스토리라든가, 구성력이라든가, 그런 류의 문학적 논리가 적용되지 않는 범위. ─ 그것은 그의 글을 접할때 느껴지는 감동. 그것은 그저 "그냥"이라는 단어로밖에 표현되지 못할지도 모른다. 마치 무라카미 하루키의 《상실 시대》를 좋아하는 이유가, 역시 딱 읽는 순간 느껴지는 그의 미문(美文)이라고 답하는 것처럼.



내가 이병률을 처음 접했던 책, 《내 옆에 있는 사람》이 '여행' 중인 책이라면, 《바람이 분다 당신이 좋다》는 '사랑'중인 책이라고 할 수 있을까. 순전히 나의 주관적인 느낌이지만, 나는 두 권의 책을 짧은 간격을 두고 읽었을때 처음 받은 느낌이 그러했다. ─ 그렇다. 이 책은, 사랑하는 책이다.





사랑이 없다고 말하지는 말라. 사랑은 없는 것이 아니라 사랑을 불안해하기 때문에 그렇게 말하고 믿으려는 것이다. 사랑은 변하는 것이 아니라, 익숙해지는 걸 못 견뎌하는 것이다. 사랑이 변했다, 고 믿는건 익숙함조차 오래 유지할 수 없음을 인정하는 것 뿐이다. 사랑은 있다. 사랑이 없다면 세상도 없는 것이며 나도 이 세상에 오지 않은 것이며 결국 살고 있는 것도 아니질 않는가.





사랑,이라는 주제. ─ 이 주제는 수세기 전부터 많은 사람들의 테마였을지도 모르겠다. 철학적 사고가 오고가고, 때로는 세속에 물들어 지나치게 적나라하게 드러나기도 했고, 때로는 답답할 정도로 모호하게 표현되기도 한 이 주제에 대해서, 작가 이병률은 어떻게 담아낼까. 궁금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 궁금증으로 이 책의 끝까지 책장이 넘어갈수 밖에 없었다.



소곤소곤. 이병률, 그의 글은 언제나 참 따뜻하다. 한 겨울 따뜻한 난롯가에 모여앉아, 서로의 손을 잡고서, 어깨는 닿을락말락, 목소리는 차분하고 조용하게, 그렇게 소곤소곤. 따뜻한 온기와 함께 얇은 미소를 띄울 수 있는 시간, ─ 내가 이병률, 그의 책을 접할때 마다 느끼는 정경이다.



이 책 역시 그랬다. 이 각팍하고 팍팍한 세상에, 어떻게 이렇게 따뜻한 눈길을 보낼 수 있을까. 그의 글을 읽으면 사랑하지 않고는 못 베기겠다. '사람'에 대한 무한한 애정. 한 사람을 사랑함으로써 시작된 애정이, 전 인류에 대한 따뜻한 시선으로 바뀌어 가는 기적. 그의 책은 항상 경이롭다.



그렇다고 항상 장밋빛 사랑만 다루진 않는다. 새파랗게 질리는 이별을 말하기도 하고, 새하얗게 차가운 슬픔을 말하기도 하지만, 어딘지 그의 글은 위로가 된다. 그 이별조차도 아름답게 승화시킬수 있는 그만의 능력이, 이 책에서 또다시 드러나고야 만다.





적어도 사랑은 붉게 오리란 걸 알고 있습니다. 예감은 그런 것 아닌가요. 난데없는 것. 금방이라도 붉게 물들어버릴 것 같은 것. 사로잡히는 것. 문득 어느 날 첫눈이 내려도 흰색의 눈발이 아니라 붉은 눈발이 흩뿌릴것 같은 것. 그렇게 심장의 통증이 시작되는 것.





우리 주변에서 너무나 쉽게 접하는 평범한 이야기를 평범하지만은 않게 써내려 가서 좋다. 우리같은 일반인이 마치 로맨틱 영화의 주인공마냥 절절하게 아름다워져서 놀랍다. 내 삶이, 우리들의 삶이, 이토록 아름답다는 사실을 새삼 느끼게 해줘서 감사하다. 지금의 힘듦을 따뜻함으로 승화시켜 다시 힘을 불어넣을 수 있게 해줘서 다행이다. 차가운 세상에 이입되어 싸늘하게 식어가던 내 심장이 다시금 팔딱팔딱 뛰게 되어서 행복하다. ─ 그리하여, 어떻게 보면 단순한 에세이집에 불과한 이 책이, 그리고 이병률 그가, 이토록 감사할 수가 없다. 나는 오늘도 내 삶을 사랑하기 위해, 그리고 또 다른 누군가를 사랑하기 위해, 이병률의 책을 손에서 놓지 않을 것이다.






그래, 사랑을 하자.
사랑을 하더라도 옆에 없는 사람처럼 사랑하자.
옆에 없는 사람처럼 사랑하는 일,
그것은 사랑의 끝이다.
완성이다.














우리는 그 무엇도 상상할 수 없다.

적어도 사람에 관해서는 더 그렇다. 한 사람을 두고 상상만으로 그 사람은 이럴 것이다, 저럴 것이다 아무리 예상 해봐도 그 사람의 첫장을 넘기지 않는다면 비밀의 문은 열리지 않는다.



사실 여행을 떠나 있을때 우리가 더 많이 가지고 있는 것은 돈이 아니라 시간 쪽이질 않은가.



살다보면 그렇게 됩니다. 아무것도 셈하지 않고, 무엇도 바라지 않으며, 있는 그대로를 기쁘게 받아들이는 일. 살다보면 사랑도 그렇게 완성될 겁니다.

우리가 사랑을 하면서 이토록 힘이 드는 건, 행복을 바라기보다  맨 앞에다 자꾸 사랑을 앞세우기 때문입니다.



유연해지고 싶었어요. 다시는 이 사람을 안 봐야겠다 싶은 마음이 들었다면 강한 걸로는 안돼요. 이 사람이 아니어도 되겠다 싶은 유연함 때문이겠죠.



예감보다 늦는 이별도 없다. 이별은 예감만큼 잔인하게 온다. 죽은 것도 아니고 살아가는 것도 아닌 중간인 것, 그것이 이별이다.



말 한마디가 오래 남을 때가 있다. 다른 사람 귀에는 아무 말도 아니게 들릴 수 있을텐데 뱅그르 뱅그르 내 마음 한가운데로 떨어지는 말. 한마디 말일 뿐인데 진동이 센 말. 그 말이 나를 뚫고 지나가 내 뒷편의 나무에 가서 꽂힐 것 같은 말이.



그냥 당신을 질투함으로써 좋아하기로 한다. 당신의 아름다움이, 당신의 눈부심이 나를 그렇게 가난하게 한다. 사랑하면서도 이토록 가난한 것은 당신이 나를 미워하는 것보다도 무섭다.



불행의 기준은 같지만 행복의 기준은 변질되어 있다. 그전그런 불행에 우린 죽지 않지만 그저그런 행복에조차 도달하지 않으면 우리는 불행하다.



높은 것, 아름다운 것, 벅찬 것, 기쁜 것, 영원한 것, 그것들을 모른 체하지 않으며, 그 방향으로 조금씩 조금씩 움직이는 사람에게 바퀴는 굴려진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사람이 세상을 놀래킬 수는 없다.



많이 아는 체하는 날들은 고개 숙이지 못하게 한다. 고개를 숙이지 못하면 남보다 먼지를 더 들이마시게 되고 그 먼지는 씻겨나가지 못하고 몸안에서 굳어지고 딱딱해져서 생각과 함께 돌이 된다.

조금은 바보 같기로 한다. 눈을 감고 잠시만이라도 모르기로 한다.



잠시, 하얀 기억을 살았다. 그것이 부끄러웠는지, 왜 감정이란 녀석이 그 모양이었던 것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그냥 충돌일 뿐. 아주 낯선 하나와 하나가 부딪혀 거대한 하양이 튀는 그저 충돌일 뿐. 빛을 먹어버려서 인화지 위에 새하얀 얼룩들만 쏟아놓은 사진들처럼 너를 그냥 휘발시켜버리면 그만이다. 하얗게, 하얗게. 어떤 사랑은 하얀색으로 기억된다. 그만두자고 돌아서는 마음이 하양을 만든다.



어쩌면 우리 인생의 네비게이션은 한 사람의 등짝인지도 모릅니다.

좋은 친구, 아름다운 사람, 닮고 싶은 어떤 사람.

그리고 사랑하는 누군가의

등.

그걸 바라보고 사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방향입니다.



누군가가 마음에 들어와 있다는 건 전혀 예상하지 않았던 날씨처럼, 문득 기분이 달라지는 것. 갑자기 눈가가 뿌예지는 것. 아무것도 아닌 일에 지진 난 것처럼 흔들리는 것.



즐겁게 살자는 말의 의미는 분명하다. 어떠한 일이 있어도 고통의 반대편이어야 할 것. 이 삶의 그 어떤 작은 고통까지도 모두 지워내자는 것.



사랑은 한다고 해서 다가 아니라 사랑할 때의 행복을 밖으로 제대로 드러낼 수 있는 상태가 사람을 키운다. 애써 채우는 것이 아니라 자연스럽게 넘치는 상태만이 사랑이기 때문이다.



인간은 사랑이라는 어려운 고통을 겪어야만 행복으로 건너갈 자격을 얻는다.



하지만 세상 어디에 완성이 있을까. 그래도 혼자인 것을 잘 견디며, 쓸쓸한 저녁을 잘 이해하고, 밤 불빛을 외로움이 아닌 평화로움으로 받아들이며, 사랑하면서 사는 삶이 무엇인지 객관적으로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만으로도 그녀는 한때를 완성한 것 아니겠는가.



사실 나이 든다는 게 괜찮을 때도 있더라구요. 묵직해져서 덜 흔들리고 덜 뒤돌아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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