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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행복약사 Feb 03. 2017

홈런이 없는 삶

《양과 강철의 숲》 ㅡ 미야시타 나츠








생소한 제목과 생소한 작가. 그저 집어든 이 책은, 말그대로 생소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이 책을 넘기게 된 것은, 피아노라는 주제. 그 음악 소리가 들려왔기 때문이었다. 


내 마음을 끌었던 것은 '피아노 조율'이라는 단어였다. '조율'이라는 단어에서 느껴지는 특유의 떨림과 긴장감. 한 치의 오차도 허용되지 않을 것 같은 느낌. 그리고 그것들이 이루어낸 놀라운 화음. 나는 단지, '조율'이라는 단어 하나에서 그 많은 것을 연상해냈고, 이 책을 읽고 싶어졌었다. 



─ 그리고. 내 예상은 적중했다. 




숲 냄새가 났다. 
가을, 밤에 가까운 시간의 숲.
바람이 나무를 흔들어 나뭇잎이 바스락바스락 우는 소리를 냈다.
밤이 되기 시작한 시간의 숲 냄새.





'양'과 '강철'의 '숲'. 얼핏 보기에는 아무런 연관성 없는 세 단어는 이 책을 조금만 읽어내려가다보면 금방 매치가 된다. 피아노의 뚜껑을 열어서 그 구조를 들여다보는 기분으로, 이 책장을 슬쩍 열어보기만 하면 된다. 



작가 미야시타 나츠는 피아노의 세계를 하나의 거대한 '숲'으로 표현했다. 그리고, 그 숲에 매료된, 진짜 숲에서 자란 소년 도무라가 조율사의 길을 걸어가는 이야기. ─ 그렇다. 이 책은 딱히 드러낼만한 스토리가 전혀 없다. 드라마틱하고 스릴 넘치는 스토리를 기대한다면 이 책은 당장 내려놓아야 할지도 모른다. 그만큼 이 책은 참 지루하고 지리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 책이 참 좋다.





p143.


재능이라는 단어로 도망치면 안 된다. 포기할 구실로 삼아서는 안 된다. 경험이나 훈련, 노력이나 지혜, 재치, 끈기, 그리고 정열. 재능이 부족하다면 그런 것들로 대신하자. 어쩌면 언젠가, 도저히 대신할 수 없는 무언가의 존재를 깨닫는다면 그때 포기해도 되지 않을까? 




우리에겐 생소한 '피아노 조율사'라는 직업을 내어 놓고서, 이 책은 우리에게 많은 교훈을 주고 있다. 인생을 살아가는 법이라고 하면, 지나친 비약일까. 하지만, 나는 이 책을 통해서 삶의 정도(正道)를 보았다. 꿈을 안고 나아감에 있어서, 과연 이 길이 맞는지, 내가 잘하고 있는지, 언제쯤이면 나도 다른 사람들처럼 잘 해낼수 있을지, 내가 재능이 없는것은 아닌지, 그리하여 언젠가 내가 걸어온 이 길과 시간에 대해 후회를 하게되면 어쩌지,,, 우리가 순간순간 겪는 많은 고민들. 그 고민들에 대한 무식한 해답을 내놓고 있다. 그리고 그 해답은 무식해 보이지만 전혀 무식하지 않다.



이 책의 주인공 도무라 역시 우리들과 다르지 않다. 정말이지 엄청난 노력파가 아닐수 없다. 저렇게 우직하게 한 길만 나아가는 것이 가능하기나 한걸까. 한편으로는 그 우직함이 부럽고, 한편으로는 미련스러워 보인다. 하지만 이 책은 그 모습이 아름답다고 보여준다. "노력한다는 생각도 없이 노력하는 것"의 미학. 이 책은, 우리에게 편법을 가르치지 않는다. 돌아가더라도, 늦게 가더라도, 편법없이 갈 때에 그 길이 진짜 길이라고 말해주고 있다. 






'차근차근 수비하고 차근차근 히트 앤 런입니다'

'홈런은 없네요'

'홈런을 노리면 안됩니다.






차근차근, 이라는 말. 너무나도 빨리 변해가는 세상속에서 우리는 이 말의 가치를 잊어 버린 것은 아닐까. 차근차근하다가, 뒤쳐지고 말 것 같은 기분에, 이리저리 휘적휘적 거리고 있는 것은 아닐까. 사실은, 차근차근 노력하는 것이 많은 노력과 끈기를 요하는 일이기에, 우리는 단지 그 길을 택하지 않는 것일 뿐이면서. 그 길을 가지 않기 위하여, 온갖 합리화와 변명을 들이대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렇다. 인생에 홈런 한방도 있을지도 모른다. 그런 사람이 바로 내 옆에 있을지도 모른다. 이러면 안되는 줄 알면서도 왠지 배가 아플지도 모른다. 하지만, 홈런을 바래서는 안된다. 홈런이 없는 삶이 잘못된 삶인 것은 아니니까. 우리는 홈런을 바라지 않고, 차근차근, 그렇게 나아가는 수밖에 없다. 그 과정에서 우리는 우리의 이정표를 끊임없이 수정하고, 새로운 꿈을 꾸며, 또다시 차근차근. 그것이 인생이다. 그것이 삶이다.













p68.

"밝고 조용하고 맑고 그리운 문체, 조금은 응석을 부리는 것 같으면서 엄격하고 깊은 것을 담고 있는 문체, 꿈처럼 아름답지만 현실처럼 분명한 문체."



p82.

그래도 모르는 척했다. 운이 좋다거나 타고난 소질처럼, 부러워해도 어쩔수 없는 것에 집착하면 반드시 보아야 할 것을 놓칠 테니까.



p142.

"그래도 괜찮지 않겠어? 두려우면 필사적이 되니까. 온 힘을 다해 실력을 기를 테니까. 조금 더 그 두려움을 느껴봐."




p143.

"재능이란 무지막지하게 좋아하는 감정이 아닐까? 무슨 일이 있어도 그 대상에서 떨어지지 않는 집념이나 투지나, 그 비슷한 무언가. 나는 그렇게 생각해."




p220.

노력한다는 생각도 없이 노력하고 있기에 의미가 있다. 노력한다고 생각하면서 하는 노력은 보상을 받으려는 마음이 있어 소심하게 끝난다. 자기 머리로 생각하고 있는 범위 안에서 노력하고 그 대가를 회수하려고 하다 보니 그저 노력에 그치고 만다. 하지만 그 노력을 노력이라고 생각하지 않으면서 하게 되면 상상을 뛰어넘는 가능성이 펼쳐진다.



p249.

"아무리 해도 완벽함에는 도달하지는 못해. 어느 지점에서 과감히 결심하고 이걸로 끝, 마지막이라고 포기해야 한다는 뜻이야."

"포기하지 못하면 어떻게 되나요?"

"영원히 포기하지 못한다면 언젠가 미치지 않을까."



p251.

그래도 진실이라고 생각한다. 재능이 있어서 살아가는 것이 아니다. 그런 것은 있어도 없어도 살아간다. 있는지 없는지 모를 그런 것에 휘둘리기 싫다. 좀 더 확실한 무언가를 이 손으로 더듬어 찾아가는 수밖에 없다.




p271.

어쩌면 이 길이 틀리지 않았는지도 모른다. 시간이 걸려도, 빙 돌아가도, 이 길을 가면 된다. 아무것도 없다고 생각한 숲에,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했던 풍경 속에, 모든 것이 있었다. 숨겨져 있지도 않고, 그저 발견하지 못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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