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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행복약사 Aug 18. 2017

가면을, 쓰다

─ 우리는 진실로 만나고 있는가





약사님은 밖에서 뵐 때와
일하면서 뵐 때가 다른 사람 같아요.




 내가 한번씩 듣는 이야기다. 아니, 어쩌면 꽤 자주 듣는 이야기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것보다 더 중요한 진실은, 그러한 상황을 내가 만들어내고 있다는 것이다. 나는 분명 일할 때의 모습과 평소의 내 모습을 확실히 구분짓고 있다. 그것이 나의 사회생활을 원활하게 하기 때문도 있지만, 조직이라는 공간에서 나 자신에 대한 방어벽을 쌓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어릴 때부터 좋아했던 디즈니 만화영화 <미녀와 야수>를 보면서 그 속의 장미가 마치 나의 모습같다는 생각을 종종 했었다. 실제는 너무나도 연약해서 겉으로 방어벽을 탄탄히 세우고, 그 안으로 타인이 들어오는 것을 막고 있는 모습. ─ 그것이 나의 어렸을 때 부터의 성격이었다. 친구들과의 사이도 좋고 학생회 활동도 하고 친구들도 많았던 나였지만, 왠지 내 안의 진정한 모습을 보여준 친구는 거의 없었던 것 같다.



 대학교에 와서도 제일 친한 친구를 만들기까지 2년이란 시간이 흘렀고, 그 때 그 친구도 나에게 "친해지기 어렵다"는 말을 했었다. 왜 나는 이렇게 내 안의 진실한 나를 보여주지 못한 채, 겉으로 보이기 위한 또다른 모습을 나 스스로에게 씌우고 있는 것일까.






페르소나 [persona]                                   

그리스 어원의 ‘가면’을 나타내는 말로 ‘외적 인격’ 또는 ‘가면을 쓴 인격’을 뜻한다. 스위스의 심리학자이자 정신과 의사인 칼 구스타프 융(Carl Gustav Jung)은 사람의 마음은 의식과 무의식으로 이루어지며 여기서 그림자와 같은 페르소나는 무의식의 열등한 인격이며 자아의 어두운 면이라고 말했다. 자아가 겉으로 드러난 의식의 영역을 통해 외부 세계와 관계를 맺으면서 내면세계와 소통하는 주체라면 페르소나는 일종의 가면으로 집단 사회의 행동 규범 또는 역할을 수행한다.           

출처 : <네이버 백과사전>





 심리학적으로나 영화적인 관점으로나, 그러한 가면을 쓰는 것이 당연한 인간의 본성인 걸로 받아들여지도 있으나, 나는 왠지 나의 가면이 거추장스러워질 때가 있다. 그리고 더욱더 놀라운 것은 그러한 가면의 종류가 꽤 많다는 사실이다.











우리는 진정으로 만나고 있는가




 동성의 친구를 만날 때의 나, 연인 앞에서의 나, 가족들과 함께 있을 때의 나, 직장에서의 나, 그리고 심지어 나 혼자 있을 때의 나. ─ 살면서 겪는 여러가지 상황들에서 나는 그 상황에 따라 조금씩 다른 가면을 나 자신에게 씌우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렇다면 지금 내가 누군가를 만날때, 혹은 어떤 일을 접할때, 그 때의 나는 누구인걸까. 그 때의 나를 '나'라고 온전히 지칭할 수는 있는 걸까. 그리고, 지금 내 앞에 있는 사람은 온전히 '그' 사람인것은 맞는 걸까.



 한번씩 이런 생각이 들때면 흔들리는 배에서 멀미하는 것 마냥 속이 울렁거리는 것만 같다.  마치 나를 반듯하게 세우고 있는 대들보가 뿌리부터 흔들리는 것만 같아서. '내가 나를 모르는데, 네가 나를 알겠느냐'던 오래된 노래 한 구절마냥, 나의 존재에 대한 의구심, 내가 알고 있는 사람들에 대한 의혹이 스멀스멀 솟아나는 것이다.










─ 하지만 다음 순간 나는 그 흔들리는 기둥을 다시 부여잡는다.






그것도, 나다.
그것도, 너다.




 내가 지금 쓰고 있는 가면도 나다. 네가 쓰고 있는 가면도 너다. 너와 나는 비록 지금 가면과 가면이 마주댄 것 지만, 가면 속에 숨은 너의 본질과 나의 본질은 분명히 통했으니까 여기에 함께 있는 것일테다.




 그리하여 한참을 흔들리던 '나'는 다시 몇 개쯤 되는 나의 페르소나들 중에서 하나에 손을 뻗어 그 가면을 스스로 쓴다. 여기서는 이 가면을 쓰고 싶은 나의 진정한 자아에 충실하기 위해서. 그리고 내 앞에 너는, 너의 가면 중 하나를 쓰고 앉아 있으나, 나는 그것이 네가 내 앞에서 쓰고 싶은 너만의 가면임을 온전히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다.










 

 세상은 복잡하게 보면 복잡해지고, 단순하게 보면 단순해진다. 마치 만화경으로 들여다보면 모든 것이 혼돈의 세계에 빠지고, 현미경으로 들여다보면 오직 그 한 부분에만 집중할 수 있는 것처럼. 나는 나를 단순하게 받아들이기로 한다. 내가 가진 수많은 가면들도 나에게서 떨어진 또다른 무언가가 아닌, 나를 구성하는 하나의 조각들이라고. 그리고 그 조각들 덕분에 지금도 나는 사회를 살아가는 윤활유를 얻게 되는 것이라고. 그러니 가면을 쓰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고, 타인이 쓴 가면을 무조건 배척하지 말겠다고.




 다만 ─ 그 가면이 '나'의 조각이 아닌, '익명으로 창조'해 낸 조각이라면, 나는 그 가면을 과감히 깨트려버릴 것이다. 그리고 마찬가지로, 내 앞에 '본인의 조각이 아닌' 가면을 쓰고 나타나는 사람이 있다면, 그를 가려낼 수 있는 혜안을 갖기를, 더 나아가, 가면을 쓰는 우리들의 연약한 모습을 이용하려는 악의적이고 거짓된 그의 가면을 벗겨내어 온 천하에 드러낼 수 있는 용기를 갖기를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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