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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행복약사 Mar 16. 2018

현재를 살아간다는 것

─ 영화 《미드나잇 인 파리 (Midnight in Paris)》



* 제 영화 리뷰에는 스포일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






 참 유명한 영화인데도, 이제서야 접했다. '우디 앨런' 이라는 이름에서 일단 약간은 거부감 아닌 거부감을 느꼈을지도 모르겠다. 영화가 나쁘다는 것은 아니다. 정확히 말하면 '우디 앨런' 영화를 높이 평가하는 편이다. 하지만 ─ 그의 영화 특유의 음울한 분위기와 난해한 스토리에 대한 어느정도의 마음의 준비가 없이는, 그의 영화를 가벼운 마음으로 관람하기 힘든, 내 개인적인 이유에서였다.



 이 영화, <미드 나잇 인 파리>는, 본론부터 말하자면 ─ 우디 앨런 영화 '치고' 매우 상업적이며 재미있는 영화임에 틀림없다. 그렇기 때문에 나처럼 우디 앨런 영화를 접하기 전 숨고르기가 필요한 관객이라할지라도, 가벼운 마음으로 즐겁게 충분히 관람할 수 있을 것이라 장담한다.








 이 영화의 도입부. 나는 이 영화 전체 중에서 영화의 도입부의 영상이 제일 좋았을지도 모르겠다. 파리의 느낌을 ─ 엄밀하게 말하자면, 현실적인 모습이라기 보단 우리의 상상 속에 들어있는 파리의 이미지를 표현한 것일 것이다 ─ 정말이지 아름다운 색감으로, 동화적이면서도 환상적으로 표현해 낸 도입부가 아닌가 싶다. 단 한번도 파리를 가보지 않은 사람조차, 이 영화의 도입부만으로도 파리와 얼마든지 사랑에 빠질 수 있을 것이다.











 영화 <노트북>, <어바웃타임>의 여주인공, 레이첼 맥아담스가 이렇게 사랑스럽지 않게 보일수가 있다니 ─ . 개인적으로 사랑스럽고 순수한 이미지의 레이첼 맥아담스를 매우 좋아하는 나로서는, 이 영화는 꽤 신선했다. 일단 그런 개인적인 감상은 차치하고, 우리는 길(오웬 윌슨)과 이네즈(레이첼 맥아담스)가 어딘지 모르게 삐걱거린다는 것을 쉽게 느낄수가 있다. 




 그렇다. 속물적이라면 속물적이고, 현실적이라면 현실적이라고 말할수 있을법한 이네즈. 그리고 파리의 환상과 현재보단 과거의 예술세계에 푹 빠져 지내는 문학가 길. 파리에서 비를 맞는 낭만을 조금도 알려고도 하지 않는 이네즈와, 파리에서 비를 맞는 낭만을 즐기고 싶은 길. 결혼반지와 혼수가구에만 집중하는 이네즈와, 과거 파리에서 활동했을 예술가들의 정취를 맛보려고 하는 길. 마치 맞지 않는 옷을 억지로 껴입은 느낌. 억지로 껴입고서 괜찮다고 비실비실 웃는, 그런 어색함. ─ 그것이 길과 이네즈 커플이었다.












 그리고 결국 일은 영화 제목 그대로, "미드 나잇 인 파리"에서 벌어진다. 파리의 어느 한적한 골목, 자정의 시간, 왠지 고전적인 느낌의 마차 한 대가 길을 눈앞에 나타난다. 누군지 알지도 못하는 사람들의 성화에 못 이겨 길은 그 마차에 올라타게 되고, 그것은 소설가 길을 새로운 세상으로 이끈다.












 바로 ─ 길이 그토록 향수를 느끼고 있던 바로 그 시대의 예술가들의 세계로 통한다. 바로 시간여행이라는 모티프가 들어가는 것이다. 그가 사랑에 마지 않는 어니스트 헤밍웨이를 비롯하여, <위대한 개츠비>의 저자 피츠제럴드와 그의 아내, 초현실주의 화가 살바도르 달리에다가 피카소까지 ─ . 길이 그토록 원하던 시대의 예술가들을 만나는 환상적인 일을 경험하게 된다. 



 그러한 일을 이해시키기 위해 이네즈를 데려가려고도 하지만, 역시 그녀와는 뭔가 맞지 않다. 길을 그렇게, 이네즈와의 교감없이 혼자서 파리의 밤거리를거닌다. 하지만 그가 밤마다 찾아가는 그곳은, 현재는 아니었다. 그가 끊임없이 이네즈에게 설파한, 자신이 사랑하는 과거의 어느 시대였던 것이다. 











 그리고 그 시대에서 너무나도 매력적인 한 여성을 만나게 된다. 바로 아드리아나 (마리옹 꼬띠아르)이다. 그녀는 이미 그 시대의 수많은 예술가들의 뮤즈가 될 법한 여자였다. 길 역시 그녀의 매력에 사로잡혀, 현실의 약혹녀 이네즈의 존재를 잊을 정도가 된다. 분명 잘 통하는것은 아드리아나 였다. 하지만 그는 역시 이네즈를 버릴 수는 없었다. 










 과거의 아드리아나와 현재의 이네즈 사이에서 방황하던 길 ─ . 늘 과거의 환상에 젖어 살던 그가 '현실'이라는 것에 눈을 뜨게 된 것은, 아드리아나 역시 그녀가 살고 있는 현재 (그 현재는 길이 그토록 아름답게 생각하는 과거이다.)에 대해 불만을 갖고, 오히려 그보다 더 전의 시대를 동경하는 모습을 보았을 때였다. 



 아드리아나와 길은, 그들이 있는 시간에서 또 다시 시간여행을 한다. 바로 아드리아나가 동경에 젖어 있는 바로 그 시대. 아드리아나는 그녀의 현재로 돌아가지 않고, 그곳에 남겠다고 한다. 


 

     

여기 머물면 여기가 현재가 돼요.
그럼 또 다른 시대를 동경하겠죠.
현재란 그런거예요.
늘 불만스럽죠.
삶이 원래 그러니까.  




 그렇다. '지금 여기'에 불만을 갖고, 실제로 어떠했을지 알지도 못하는 '과거'를 동경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었다. 그런 삶을 산다면, 어느 곳을 가도 매한가지일 것이다. 매순간 그보다 더 나을것 '같은' 상상 속의 동경의 시대를 만들어놓고, 현재에 불만족하고 말 테니까.













 어쩌면 그것은 꼭 '시간'에만 국한된 이야기는 아닐지 모르겠다. 매순간, 매사에서, 우리가 이미 가지고 있거나 누리고 있는 것들에 대해서는 불만족하기 쉽다. 옛말에 '남의 떡이 커보인다'는 말도 있지 않은가. 결국 우리는 어디를 바라보느냐 ─ 의 문제로 귀결됨을 알수 있다. 우리가 서있는 '이 곳'이 어디인가 ─. 나의 두 다리는 어디에 발 붙이고 서있는가.



 결국 우리는 우리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부터 시작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자기자신을 알아야 한다. 머릿속 환상과의 싸움에서는, 우리는 언제나 질 수 밖에 없다. 그러기에 두 눈 단단히 뜨고 자기자신을 바로 알며, 자신의 현재를 똑바로 인식하며, 그리하여 궁극적으로는 그것을 수용할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할 것이다.










 우디 앨런의 영화치고 상당히 '재미있는' 영화가 아닐 수 없다. 하지만 우디 앨런이 그렇게 단순히 재미만 보여줄 리가 없지 않은가? 이 영화는 낭만적이고 환상적인 스토리에, 철학적이고 어떻게 보면 다소 교훈적인 주제까지 다루면서도, 파리라는 이국적이고 여행적인 요소까지 가미가 된, 복합선물세트 같은 영화가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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