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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구비 Oct 08. 2024

[단편소설]죽음을 받아들이는 방법(1)

죽음에 직면하는 것이 가능할까?

K가 집 근처 종합병원으로 이직을 했다. 병원 본관 정문으로 들어가면, 주력 진료과인 정형외과가 가장 가까운 곳에 사람들의 시선을 끌고, 곧이어 항상 북적이는 영상검사실과 심장내과가 나온다. 다른 내과 분과들과 신경과 진료실을 지나쳐서 신관의 가장  모퉁이에 다다르면 K진료실이다. 미닫이 나무 문을 열면 컴퓨터가 놓인 책상 뒤로 통유리창에 하얀 블라인드가 반쯤 내려져 있다. K는 의자에 아무렇게나 걸쳐 놓았던 흰 가운을 챙겨 입고 먼저 회진에 나섰다. 그가 주치의로서 치료하는 환자는 없지만, 타과 주치의가 입원 환자 협진을 의뢰하면 정신과적 치료를 병행한다.


G가 머물고 있는 7층의 1인실은 산 쪽으로 창이 나 있어서 녹음 짙은 숲이 잘 보였다. 병실 안은 적막하리만치 고요했다. 는 식사를 대신하는 하얀 수액을 달고 누워 있다가 K가 들어오자 몸을 일으켰다. 머리가 희끗희끗하고 야위었으나 외견상으로는 그렇게 병색이 완연해 보이지 않았다. 부인은 옆자리까지 움푹 파여 있는 소파에 앉아있다가 일어나서 G 역시 의사라고 귀띔했다. K는 좀 긴장되는 것을 느꼈다.

"그동안 건강 검진에서는 아무것도 안 나왔어요. 그런데 왜 자꾸 미열이 나는 건가, 혈액 검사를 해보면 염증 수치가 올라가 있는 건가. 친구 병원에도 찾아가 보고 대학 병원에 검사받기 위해 여러 차례 입원했었어요. 개원한 의사가 휴진하고 검진받는 게 쉽지 않거든요. 할 만큼 했던 거요, 삼 년 동안이나."

그럼에도 G는 죽음이 새어 들어오는 틈을 막지 못해 침몰하고 있었다. 올해 초에 간암 4기로 진단받았고 항암치료를 한 차례 시도했다가 중단했다. 한 달 전부터는 집에서 지내는 것이 힘들어져서 입원해서 보존적 치료를 받고 있었다.  


 부인과 사이가 원만하고 자녀들이 다 잘 살고 있어서 가정에 아무런 근심이 없었다. 40대 후반에 개원한 내과 의원은 점차 번창해서 다른 봉직의 세 명을 두었다. 60대까지 살아오면서 단 한 번도 우울했던 시기가 없었다. 그는 말기암 선고를 받고서도 우유부단하게 고민하지 않고, 가장 오래 함께 일했던 봉직의에게 적당한 값에 의원을 넘긴 뒤 신변을 정리했다. 그러니까 그는 본래 K의 진료실로 좀처럼 걸어 들어오지 않는 종류의 사람이었다.

"죽으면 어떻게 된다고 믿으세요?"

" 없는 잠 같은 상태겠지요. 개원하고 병원 운영을 위해 교회도 나가고 종교인들을 많이 만나 봤지만 신앙을 가지게 되지는 않더군요. 이번에 구급차를 타고 올 때, 정신이 아득해지면서 이대로 눈앞이 깜깜해지고 죽게 되는 거겠구나 생각했어요. 결국 이렇게 다시 깨어났지만, 어쩌면 다음에는 정말로 끝이겠지요."

보통의 의사답게 합리적인 생각이었다. 그렇지만 K는 죽음 앞에서도 그와 같이 생각할 수 있을지 자신이 없었다. 죽음에 임박해서 서둘러 종교에 귀의하는 사람들을 많이 보았었다.


K는 구내식당에서 점심식사를 마치고서 진료실로 돌아왔다. 진료실 유리창 일부가 실은 유리문이어서 위험한 상황에서 대피할 수 있도록 되어 있다. 이 샛문을 밀고 나가 보면, 길고양이만 이따금 지나다니는 막다른 골목이다. 오른편 길로 걸어가면 장례식장 입구 근처에 성모상과 흡연실이 나란히 서있다. 그 맞은편으로 나 있는 길은 인근 숲 공원 언덕길로 이어진다. 그는  공원을 향해 걸어가면서 초여름 햇볕에 달구어진 공기 때문에 숨이 답답해지는 것을 느꼈다.

오래지 않아 숲길에 들어서자 선선한 공기에 둘러싸였다. 삼나무와 자귀나무 잎사귀 틈새로 빛이 내려쬐었고 나뭇잎의 그림자 윤곽이 희미하게 둥글려져 있었다. 이 숲 속을 걸어 다니면 병의 치유에 도움이 될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나무 데크 산책길은 완만해서 노쇠한 몸으로 걷거나 휠체어를 타고 다니기에도 괜찮아 보였다. 죽음을 앞둔 G를 보았던 영향인지, K는 이 병원에서 오래 일한 끝에 의사가 아닌 환자가 되어 이곳을 산책하는 자신을 상상했다. 어차피 집에서 생을 마감하는 사람은 거의 없어서 어딘가 병원을 택해야 할 것이다. 숲이 가까운 병원은 말년을 맡기기에 괜찮은 후보로 보였다. 하지만 G와 같이 수액을 맞고 있으면 폴대를 끌고 산책하러 나갈 수 없을 것이다, 어디든 상관없을지도 모른다.


K는 일주일 뒤 다시 G의 병실에 들렀다. 작은 테이블에 빈 음료수 병들과 흰 봉투가 놓여 있고 공간이 떠들썩했던 온기가 남아있었다. 손님과 함께 나갔는지 부인이 자리를 비운 상태였다.

"첫째가 와서 손주가 영재반에 들어갔다 이야기해 줬어요. 절 기쁘게 해주려고 한 소리였어요. 저는 아이들을 키우는 것이 인생에서 가장 가치 있는 일이라고 믿었거든요. 그 아이들이 잘 살아가는 것을 보는 것이 큰 기쁨이었고요. 그런데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더군요. 내가 죽음을 앞두고 있는데 그게 무슨 소용인가? 어머니 아버지를 보내드릴 땐 이별이 슬픈 것만 알았지 그 마음을 몰랐습니다. 한 번도 겪어본 적 없는 죽음 앞에서 두렵고 외로우셨을 텐데...... 아이들도 저와 마찬가지로 이런 죽음을 겪어야 한다고 생각하니 셋이나 낳은 게 잘한 일인지 모르겠어요."

G는 죽음을 앞두고 있다기에는 의식이 지나치게 명료하고 풍부해 보였고, 그로 인해 더 고통스러워 보였다. 신체는 건강한 편이지만 의식이 흐릿하고 빈약해져 있는 치매 노인들과 반대였다. 치매처럼 서서히 의식이 사라지면서 죽음을 향해가는 병에도 장점이 있을지 모른다.


마지막으로 면담하러 간 날 G는 더 이상 K에게 자발적으로 말을 꺼내지 않았다. K가 수면이 괜찮았는지 묻는 것마저 알아듣지 못하고 되물었다. 웅크리고 누워서 시선은 여전히 반대편 벽 쪽을 응시하고 있는 것이 어색해 보였다. 귀 기울여 들어보니 이런 말을 했다.

"지금 신약이 개발 중이요. 여기에서 이러고 있으면 안 돼, 미국으로 가야 하는데......"

면담을 마치고 K가 복도로 나가자 부인이 따라와서 목소리를 낮추면서 이야기했다.

"원래 헛소리를 가끔 했는데 더 많아졌어요. 미국 병원에 가서 임상시험에 참여해야 한대요."

K는 섬망이 나타날 위험성을 높이는 약을 중단하고 나머지 수면제만 쓰려고 했다. 부인에게 설명하자 고개를 저었다.

"아니에요, 그냥 조금이라도 더 잘 수 있게 해 주세요. 약 없이는 조금도 못 자요. 깨 있으면 통증 때문에 힘들어요."

K는 진료실로 돌아와 차트를 검토하고 책을 뒤적이다가 결국 비슷한 처방을 반복하는 것으로 회신을 입력했다.

그리고 G에 대한 협진 의뢰가 오지 않은지 열흘 이상 흘렀다는 것을 깨닫고 의무기록 차트를 열어 보았을 때, 그가 사흘 전 세상을 떠났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면담이 가능한 환자만 보살피는 정신건강의학과 의사는, 그들이 죽음까지 가는 길을 끝까지 함께 할 수 없다.


호우 주의보가 내리고 장맛비가 세차게 내리고 있었다. K는 샛문으로 나와 장례식장 입구에서 손을 모으고 있는 성모상을 올려다보았다. 거기에는 눈도 입도 새겨지지 않은 얼굴이 있었다. 장례 리무진이 세워져 있길래 혹시 G의 가족들인가 했지만 낯선 사람들뿐이었다. 검은 상복을 입은 여성이 자녀들에게 나지막하게 '하늘도 슬퍼하나 보다'라고 말하는 것이 들렸다. 위로가 되는 말이었다. 앞으로 매년 G의 기일 즈음에도 비가 내릴 것이다.

그는 숲길을 걷다가 커다란 물 웅덩이에 빗방울이 떨어지는 것을 바라보았다. 빗방울이 수면에 떨어져 만들어낸 주름이 가장자리로 밀리면서 사라져 가고 쉴 새 없이 또 다른 빗방울이 떨어져 새로운 주름을 만들어냈다. 멍하니 한참을 보고 있게 되는 풍경이었다. 그가 들고 있던 우산을 비스듬하게 기울여 비를 가리자 수면의 파동이 조금 잦아들었다. 하지만 이내 바람이 불어 우산살이 휘어지고 굻은 물방울이 후드득 웅덩이로 떨어졌다.


그 뒤로 K는 밤마다 의사와 철학자, 과학자가 쓴 모종의 책들을 읽었다. 한 달도 채 되기 전에 생생하게 뭔가를 경험하고 표현했던 G의 정신은 정말로 세상에서 사라져 버린 것일까. 자신의 끝에도 그와 같은 죽음이 기다리고 있는 것일까. 죽음에 대해 다루는 책들은 오래된 것이 많았고 새로운 책이어도 옛날 책과 내용이 비슷했다.

K는 주말에 고속도로를 달리면서 아내에게 이야기를 꺼냈다.
"퀴블러 로스 책에 나온 사람들은 죽음을 앞두고도 평안한 마음으로 지내. 이미 죽은 절친한 사람이 마중 나온 걸 봤다고 하면서 마음 편히 기다리는 거야. 학회에서 발표를 들은 적도 있어. 말기암 환자가 의미심장한 꿈을 꾸고 불안이 나아졌대. 꿈속에 절대자가 나타나 '널 위해 새 옷을 준비해 뒀다' 그랬다는 거야. 아니면, 어린아이들을 두고 떠나야 하는 엄마가 꿈속에서 아이들이 자기 없이도 잘 살아가는 미래를 보고 안심했다는 거야."
"소망을 충족시키는 꿈 아니야?"
"글쎄, 그럴지도 모르지. 그렇지만 내 주위에는 그조차 없어. 온통 섬망을 겪으면서 의식이 처지다가 생을 마감하는 사람들뿐이거든. 어떤 신비한 일도 없이, 그저 고통스럽고 비참하게 끝이 나는 느낌이야."

세상에는 임사 체험, 전생, 귀신과 같은 신비한 현상에 대한 풍문이 떠돌았지만 막상 K 주변에서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유리겔러가 시키는 대로 엄지 손가락으로 숟가락을 눌렀을 때 그의 가족들 것은 꼼짝도 하지 않았던 것처럼. K는 머릿속에 유리겔러가 떠오른 것이 무슨 의미일까 생각했다. 유리겔러는 사기꾼이 아니었던가. 사기꾼이라는 말이 과하다면, 적어도 초능력자인 척했던 마술사였고, 속임수를 썼다는 점이 실망스러웠다. 죽음에 대한 책을 쓴 작가도 비슷한 부류가 아닌지 의심이 들었다.

"난 정말이지 사람들을 호도하는 미신이 싫어. 사람들이 듣고 싶어 하는 말을 들려주고서 돈을 버는 작자들이 싫어. 그러고 보면 과학은 단 한 번도 감상적인 세상을 보여준 적이 없었어. 천동설, 창조론 같은 것이 폐기되었듯이, 영혼이나 내세 같은 것도 마찬가지 신세가 될 거야."

그는 불만스러운 표정으로 입을 다물었다. 구불구불한 산길이 나타나서 운전하는 데 집중하느라 둘의 대화는 그만 끊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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