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알던 그 good 이 그 good이 아니야?
미국에서 여름방학마다 지역 어린이들을 위한 자원봉사 프로그램이 있었다.
엄마, 아빠 모두 일하는 히스패닉계 가정이 많았기 때문에, 아이들이 방학 동안 집에서 방치되지 않도록 돕는 지역 사회의 따뜻한 배려이자, 동시에 냉정한 현실을 직시하는 프로그램이었다.
그 프로그램을 처음 봤을 때, 한편으론 부러웠다.
자원봉사라는 개념이 미국에선 특별한 일이 아니었다.
그냥일상처럼, 자연스럽게 누군가를 돕는 일. '나눔은 이런 거구나' 싶었다.
나는 잠시 생각했다. 혹시 나만 봉사 따위는 모르는 이기적인 인간인가?
한국에서 내가 했던 봉사는 수행평가,취업 스펙, 의무감으로 시작된 것들이었다.
솔직히 말하면, “이 시간이 언제 끝나나…”를 기다리는 게으른 봉사자의 대표주자였다고나 할까.
그런데 여기선 달랐다. 봉사하는 사람들의 얼굴엔 적어도 진심이 있었다.
즐겁게, 기꺼이, 자신이 가진 것을 나누는 모습이 낯설면서도 따뜻했다.
덕분에 나도 처음으로 알게 됐다. 누군가를위해 시간을 내는 일이 기쁨이 될 수 있다는 걸.
하지만 또 한편으론, 국경을 넘어온 남미 아이들이 처참한 환경에 방치되는 모습은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자유와 풍요의 땅이라고 불리는 이곳에서, 왜 이 아이들은 그림자처럼 존재해야 하는 걸까.
나눔은 기쁨이 될 수 있다. 하지만 그 기쁨이 모든 아이에게 닿는 건 아니었다.
아이들에게 나는 인기 있는 선생님은 아니었지만, 적어도 뭔가 열심히 도와주려는 아시아인 선생님이었을지도모른다. 그도 그럴 것이, 미국 아이들은 덩치가 너무 컸다. 초등학생이라고 했지만 내 키의 세 배쯤 되는 친구들도 있었다.
나는 한국에선 통통한 여대생이었지만 미국에선 “마른 아시아인”으로 분류됐다. 실제로 내 기숙사룸메이트는 내가 뼈만 남았다고 걱정했는데, 그때 나는 163cm에 75kg이었다. '뼈만 남았다고?' 속으로 경악했다.
어느 날, 우리 조에 있던 귀여운 Jamie의 엄마가 나를 찾아왔다. 엄마 아빠와 콜롬비아에서 왔다는 Jamie는 커다란 눈에 곱슬머리를 가진 귀여움이 터지는 아이였다.
Jamie가 나를 좋아했는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Jamie를 꽤귀여워했고, 항상 정크푸드 같은 도시락을 들고 오는 그 아이에게 내가 만든 샌드위치를 나눠주기도 했다. Jamie 엄마는 공사장에서 일한다고 했다.
“Hello, Miss Kim!” (김선생님 안녕하세요?)
“Hello!” (안녕하세요!)
“How’s my son, Jamie?” (제 아들 제이미 어때요?)
“Jamie? Jamie is doing good!” (제이미요? 제이미 잘하고 있죠!)
그 순간, Jamie 엄마의 표정이어두워졌다.
뭐지? 자기 아들이 세상 천재인 줄 아나?
매일 이상한 색깔 젤리와 이게 점심인가 싶은 비스킷만싸오는 Jamie의 도시락이 떠올랐다.
뭘 기대한 걸까? 그런 환경에서 마약에 빠지지 않고 저렇게 잘 자라주는 것만으로도 나는 Jamie가 대단하다고 생각했는데.
“Ms. Kim? Any problems?” (김선생님 무슨 문제 있나요?)
“no!! he’s doing good!!” (아니요! 제이미 잘하고 있다니까요!)
그날 이후, 나는 Jamie에게 샌드위치를 나눠줄 때 조금 더 조심스럽게 웃었다.
그건 그냥 음식이 아니라 작은 감정의 연결이었으니까.
나중에 알았다.
정말 잘하고 있다면 “amazing!” “excellent!” “he’s doing great!”
이렇게 확실하게 말해줘야 그게 진짜 칭찬이었다.
나는 그걸 몰랐고, 그냥 “Jamie is doing good”이라고 말해버렸다.
그 말을 듣고 살짝 실망했을 Jamie 엄마를 생각하니
조금 미안했다.
나는 진심이었지만, 그 진심이 문화의 언어를 타고 감정 없이 전달되었으니까.
미국에서는 칭찬할 때, 그야말로 '영혼까지 끌어모은 듯한' 엄청난 형용사로 오버를 한다.
“You’re fantastic!” (당신 정말 환상적이에요!)
“That was incredible!” (그거 정말 믿을 수 없었어요!)
“He’s absolutely outstanding!” (그는 정말 최고입니다!)
과장이 일상인 그들의 칭찬 앞에서, 나는 익숙지 않은 문화 탓에 말 그대로 **‘무미건조’**하게 "good"만 내뱉고 말았다. 진심은 있었지만, 그 진심이 너무 담백해서 오히려 상대에게 충분히 전해지지 못한 것이다.
'이게 과연 칭찬인가, 아닌가…' 그들의 화려한 칭찬 속에서 나는 혼란스러웠다. 'good' 한마디로 내 마음이 온전히 전달된다고 생각했던 내가 어리석었다. 상대의 눈을 마주하며 '진심은 통한다'고 굳게 믿었던 나의 순진함은, 그들의 '칭찬 언어'라는 거대한 벽 앞에 여지없이 무너져 내렸다.
그날 이후, 나는 알게 됐다. 진심은 말만으로는 부족하다는 걸. 특히 미국에서는.
감정을 표현할 때 형용사를끌어모아 영혼까지 흔들어야 그게 '칭찬'이 된다는 걸.
그들의 과장된 표현은 단순히 허세가 아니라, 사회를 지탱하는 '긍정의 언어'이자 관계의 윤활유였다.
나는 Jamie를 좋아했고, 잘하고 있다고 생각했고, 그래서 "good"이라고 말했는데—
그 말은 너무 담백해서 감정이 빠져 있었다. 그리고 그걸 Jamie 엄마의 눈빛에서 처음으로 느꼈다.
내 진심이, 그들의 언어라는 필터를 통과하며 무미건조한 정보로 변질되는 순간이었다.
그날 이후, 나는 Jamie에게 샌드위치를 나눌 때 조금 더 웃었고, 조금 더 말했고, 그리고 조금 더 진심을 '과장'하는 법을 배웠다. 그것은 타협이 아니라, 나의 진심이 온전히 닿기 위한 새로운 소통의 기술이었다.
나는 Jamie를 좋아했고, 잘하고 있다고 생각했고,그래서 “good”이라고 말했는데—그 말은 너무 밋밋해서 감정이 빠져 있었다.그리고 그걸 나중에야 알았다.
감정은 말이 아니라 말의 온도에서 느껴진다는 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