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강아지에게 ‘May I’라고 말했더라면...
미국에서 나의 유일한 낙은, 동네 공원을 전력 질주하는 것이었다. 한국에 있을 때도 날씬한 편은 아니었지만, 미국에 와서는 고칼로리 음식의 유혹에 속절없이 무너져 체중이 걷잡을 수 없이 늘어만 갔다.
그러던 어느 날, 달리기를 마치고 벤치에 앉아 있던 할머니에게 “왜 이렇게 말랐냐”는 황당한 칭찬을 듣고 괜히 기분이 좋아졌던 걸 보면, 미국 성인 대부분이 과체중이라는 현실이 이해가 갔다. 아이러니하게도, 나의 불어난 몸이 이곳에서는 '희소성'이라는 기이한 가치를 얻은 셈이었다. 한국에 돌아와 77사이즈 임산부용 원피스에 간신히 몸을 욱여넣고 다니던 어느 날, 나는 비로소 ‘다이어트의 필요성’을 절감했다.
� 동네 공원의 풍경
아침 햇살이 부드럽게 잔디 위를 쓰다듬고, 발밑에서는 가벼운 낙엽 소리가 섞인다. 오래된 참나무와 단풍나무가 길게 드리운 그늘 아래, 벤치에 앉은 이웃들의 잔잔한 대화가 바람에 실려 흐른다. 포장된 조깅 코스를 한 바퀴 돌 때마다 안개처럼 피어오르는 작은 연못을 지나치고, 은빛 물줄기가 뿜어져 나오는 분수대 곁을 스치면 마치 동화 속을 달리는 기분이 든다. 러너들 사이사이에는 조금 특별한 공간이 있었으니, 바로 도그 파크다. 탁 트인 잔디밭을 둘러싼 펜스 안에는 이름표를 단 강아지들이 맘껏 달리고, 주인들은 서로 반려견 간식과 장난감을 교환하며 담소를 나눈다. 요크셔테리어부터 래브라도르까지 다양한 견종이 숨 가쁘도록 뛰어노는 모습은, 달리며 지친 내 마음을 한순간에 녹여 주었다.
� “후추”를 닮은 친구
나는 한국에서 강아지 ‘후추’를 키우던 터라 도그 파크를 지날 때마다 남다른 관심이 생겼다. 어느 날 조깅 도중, 반려견 전용 분수대에서 우리 후추와 똑같은 견종이 물을 마시는 광경을 목격했다. 그리운 마음에 나는 무심결에 그 강아지에게 달려가 과격하리만큼 쓰다듬었다.
“Oh, is that your doggy? Hey you! I love your eyes!” 순간, 주위에 알 수 없는 정적이 흘렀다. 반려견 주인이 어색하게 나를 바라보는 것을 보고야 내가 너무 과했음을 깨달았다. 그 어색한 순간이 지나고 나서야, 나는 미국에서 ‘경계(boundary)’ 의식이 얼마나 중요한지 새삼 깨달았다.
�️ “May I…?”의 힘
이곳에서는 ‘소유권(ownership)’에 대한 인식이 매우 강하다. 누군가의 영역—강아지, 집, 자동차, 심지어 개인 공간—을 침범하려 할 때는 반드시 “May I…?” 라는 허락의 표현을 쓰는 것이 예의다. 예를 들어: 강아지를 쓰다듬고 싶다면 → “May I pet your dog?” 사진을 찍고 싶다면 → “May I take a photo?” 집 안으로 초대받지 않았다면 → “May I come in?” 이 작은 표현 하나가 상대에게 “당신의 물건과 공간을 존중합니다” 라는 메시지를 전한다. 그리고 그 존중은 낯선 이와도 편안한 관계를 맺게 해 준다.
그날 이후로 나는 강아지는 물론 사람에게도 먼저 “May I…?”를 묻는 습관을 들였다. 덕분에 공원의 달리기보다 더 값진, 진짜 ‘존중의 러닝’을 배우게 되었다.
하지만 그 배움은 한국에 돌아온 뒤, 또 다른 충돌을 겪으며 시험대에 올랐다. 내가 쓰던 펜을 말없이 가져가는 친구, 냉장고 문을 함부로 열어보는 가족, 혹은 내 방에 불쑥 들어오는 동생. 미국이라면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처음엔 당황스러웠고, 내가 예민한 건가 싶어 스스로를 의심하기도 했다. 하지만 곧 깨달았다. 이건 단순한 무례가 아니라, 서로 다른 경계의 온도차였다. 미국에서는 “당신의 공간과 소유를 존중합니다”라는 표현이 관계의 시작이라면, 한국에서는 “우린 가까우니까 괜찮지?”라는 묵시적 친밀감이 관계의 기본값이었다. 나는 그 차이를 이해하고 받아들이기까지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그리고 지금은, 필요할 땐 “May I…?”를 묻고, 때로는 “괜찮아, 써도 돼”라고 먼저 말하는 두 문화 사이의 다리가 되어가고 있다. 이제 나는 달리기보다 더 깊은 호흡으로 사람과 사람 사이의 거리를 조율하는 법을 배워가는 중이다.
관계는 결국 보이지 않는 선을 이해하고 존중하는 일이다. 때로는 "May I…?"라는 조심스러운 질문으로, 때로는 "괜찮아"라는 따뜻한 허락으로. 그 경계의 온도를 섬세하게 조절하는 것이야말로 사람과 사람 사이의 가장 깊은 대화인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