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 한마디가 만든 천냥 웃음

by 재미나이



나와 절친인 줄 오해 받았던 교수님 금도 거기서 가르치고 계실까지.png 교수님과 몇몇 학생들이 강의실을 벗어나 근처 커피숍으로 향했다



영어는 내게 늘 미지의 섬이었다.

한국어처럼 존댓말과 반말이 명확히 나뉘지 않는 언어라고 믿었기에, 나는 그 섬을 자유롭게 항해할 수 있으리라 자신했다. 그러나 그 자신감은 곧 미묘한 뉘앙스의 파도에 휩쓸려 좌초하고 말았다.
그중에서도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은, 한 잔의 커피와 한 마디 말로 시작된, 웃음과 민망함이 뒤섞인 에피소드였다.

그날은 미국 동부의 어느 대학에서, 교수님과 몇몇 학생들이 강의실을 벗어나 근처 커피숍으로 향했다. 과제 이야기를 좀 더 편하게 나눠보자는 교수님의 제안이었다.
작은 테이블에 둘러앉아 메뉴판을 들여다보던 나는, 문득 한국식 정(情)을 담아 교수님께 커피 한 잔을 대접하고 싶어졌다. 스승께 작은 마음을 전하는 건, 내게는 너무도 자연스러운 예의였다.

그래서 자신 있게 말했다.
“What do you want?”
내 머릿속엔 “뭐 드시고 싶으신가요? 제가 살게요!”라는 따뜻한 마음이 담겨 있었다. 하지만 교수님의 반응은 예상 밖이었다. 살짝 굳은 미소, 그리고 잠깐의 정적.
“음... 그냥 regular coffee로 할게요,”
조심스럽게 답하는 모습에 나는 고개를 갸우뚱했다.
‘뭐지? 커피 한 잔 사드리겠다는데 왜 이렇게 어색해하시지?’

커피 향 속에서 과제 이야기가 오가고, 웃음소리가 테이블을 채웠다. 하지만 진짜 반전은, 그날 저녁 친구와의 대화에서 터졌다. 친구가 눈을 동그랗게 뜨며 물었다.
“너, 교수님이랑 진짜 친해? 어떻게 그렇게 스스럼없이 말해?”
나는 어리둥절했다.
“뭐? 그냥 수업에서만 뵈었는데?”
그러자 친구가 피식 웃으며 말했다.
“야, ‘What do you want?’라니. 그거 완전 절친한테 툭 던지는 말투야. 교수님, 당황하셨을걸?”

그 순간, 머릿속에서 퍼즐이 맞춰졌다.
내가 던진 그 한 마디는 정중한 제안이 아니라, 마치 오래된 친구에게 “야, 뭐 먹고 싶어?”라고 툭 내뱉는 말처럼 들렸던 것이다.
한국어로 치면, “선생님, 뭐 드실래요?”라고 공손히 여쭤야 할 상황에서, 나는 “야, 뭐 먹을래?”라고 말한 셈이었다. 웃음이 터졌고, 동시에 얼굴이 화끈거렸다. 영어에 존댓말이 없다고 철석같이 믿었던 내 순진함이 만들어낸 작은 참사였다.

게다가 나중에 알게 된 사실 하나 더. 그 교수님이 주문한 ‘regular coffee’는 지역에 따라 의미가 조금씩 달랐다. 뉴욕에선 커피에 우유와 설탕이 자동으로 들어가는 걸 ‘레귤러’라고 부르는 경우가 많았다. 나는 그것도 모르고 내 마음대로 블랙 커피를 주문해드렸다. 하지만 아무말 없이 머그잔을 받아들고 고맙다고 웃어주시던 교수님의 어색한 미소가 아직도 잊혀지지 않는다. 그날 교수님은 아마, 정중하게 한 잔 얻어 마시려다, 내가 내뱉은 말투와 뜻밖의 블랙커피에 조금 당황하셨을지도 모른다.

그 사건은 내게 영어의 숨겨진 층위를 일깨워주었다.
영어엔 한국어처럼 명확한 존댓말 체계는 없지만, 뉘앙스와 맥락이 그 자리를 대신한다.


“What would you like?”
“May I get you something?”


그런 표현들이 그 상황엔 훨씬 더 어울렸을 것이다. 말 한마디의 무게, 문화가 얽힌 미묘한 차이를 나는 그 커피숍에서 뼈저리게 배웠다.

그 뒤로 교수님은 나를 보며 가끔 웃으셨다. 아마도 그 어색했던 순간을 떠올리신 게 아닐까.
나는 여전히 그날을 생각하며 웃는다. 영어는 여전히 내게 미지의 섬이지만, 그 섬에서 길을 잃으며 배운 건 단순한 문법이나 단어가 아니었다.
진심을 전하려 했던 그 커피 한 잔의 마음, 그리고 그걸 어설프게 표현하며 피어난 웃음.
그 모든 것이, 내 항해의 소중한 흔적이다.


화, 목, 일 연재
이전 11화Kyle: soft 발언과 인류애 착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