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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볼보자동차코리아 Feb 28. 2023

얼어붙은 호수 위를 전기차로 달려봤다(2)

스웨덴 키루나에서 만난 볼보자동차(2)


볼보가 얼음 호수 위에 마련한 코스는 축구장 두세 개를 붙여 놓은 듯한 공간으로 널찍한데, 코스에는 쇼트 커브와 롱 커브, 직선 구간으로 이루어져 있다. 다양한 형태와 패턴은 아니지만 아이스 드라이빙에 대한 이해를 높이기에 전혀 부족함이 없다. 코스 근처에는 잠깐의 휴식을 취할 오두막도 준비됐다. 





롱 커브는 고속 드리프트가 가능하도록 완만한 각도를 이루는가 하면, 쇼트 커브는 뒤를 좌우로 빠르게 흔들면서 드리프트를 연달아 하도록 디자인됐다. 사람이 아닌 자연이 만들어 낸 환경이기에 모든 바닥이 일정하게 평평하거나 눈의 양이 고르게 분포되어 있지 않다. 어떤 곳은 눈이 많이 뭉쳐 볼록 튀어나와 있는가 하면 다른 어떤 곳은 움푹 패어 있어 머리는 복잡하다. 하지만 다양한 변수가 있기에 그만큼 주행은 아름답고 짜릿할 것이다. 쉬운 게 재미가 없는 건 인생이나 운전이나 마찬가지다. 





얼음판을 달리는 C40 리차지와 XC40 리차지는 최고출력 408마력, 최대토크 67.3kg·m를 자랑한다. 두 개의 전기 모터와 네바퀴굴림 시스템이 조합된 고성능 모델로 두 개의 모터는 물리적으로 분리되어 있지만 지능화된 제어 시스템이 함께 관리하는 하나의 구동 시스템을 이루고 있다. 전자 장치가 제어하는 네바퀴굴림 시스템이라는 거다. 기본적으로 앞뒤 동력 배분을 50:50으로 구동하다가 주행 조건과 상황에 맞게 앞뒤 차축의 구동력을 알맞게 조절한다. 이런 구성의 전자식 네바퀴굴림 시스템은 일반 내연기관의 그것보다 구동력을 조절하는 속도가 훨씬 빠르고 정확하며, 그 과정이 매끄럽다. 





C40 리차지와 XC40 리차지의 넉넉한 힘과 네바퀴굴림 시스템을 오로지 미끄러뜨리는 데 쓰는 건 정말이지 비효율적이다. 하지만 비효율적일수록 더욱 재미있다. 속도를 높이면 높일수록 슬라이딩 거리는 길어지고 쾌감은 배가 된다. 보통 내연기관차였다면 변속기로 엔진을 컨트롤하며 달려야 하지만 변속기가 1단인 전기차에서는 그럴 필요가 없다. 오로지 핸들링과 가속페달의 컨트롤에만 신경 쓰면 된다. 게다가 네바퀴굴림 시스템의 개입은 상당히 정교하기 때문에, 미끄러지는 양과 정도까지도 예상하고 조절할 수 있다. 안전을 위한 시스템이 얼음 호수 위에서는 재미를 위해 쓰이는 건 꽤나 아이러니하다.





전기차는 무거운 배터리를 바닥에 깔아 무게중심을 한껏 낮춘다. 낮은 무게중심으로 안정적인 좌우 움직임을 낼 뿐만 고속에서도 휘청이지 않는다는 장점이 있다. C40 리차지와 XC40 리차지는 이런 전기차의 장점을 십분 활용한다. 낮은 무게중심과 처음부터 최대토크를 뽑아내는 전기 모터는 아이스 드라이빙, 특히나 드리프트에서 훌륭한 장점으로 작용한다. 또한 쇼트 커브 같은 경우에도 전기차의 장점이 빛나는데, 바로 회생제동이다. 쇼트 커브는 가감속이 많아 브레이크를 조작해야 할 때가 있는데, 급제동이 아니라면 회생제동을 적절하게 활용해 속도를 줄일 수 있어 오른발의 할 일을 조금 덜 수 있다. 





살면서 드리프트를 몇 번이나 경험해 볼 수 있을까? 그런데 여기서는 자동차가 앞으로 가는 것보다 옆으로 가는 시간이 훨씬 많다. 운전대를 살짝 꺾어 가속페달만 밟아주면 하중이 뒤 바깥 쪽으로 실리며 여지없이 옆으로 미끄러진다. 일반 노면은 브레이크 페달을 밟으면 하중이 다시 앞으로 확 쏠리기 마련이지만, 눈길에선 앞바퀴가 바로 미끄러지며 하중 이동을 방해한다. 아이스 드라이빙에서 드리프트를 유지하는 관건은 미끄러지는 정도를 확인해 가속페달의 세기를 세심하게 조절하는 것이다. 이것만 잘 해낼 수 있다면 코너를 돌아나갈 때 눈보라를 일으키며 파워드리프트를 하거나 진입각과 탈출각을 고려하면서 깔끔한 코너링을 선보일 수 있다. 성공했을 때의 쾌감이나 성취감은 정말 끝내준다. 





국내에서는 일본 애니메이션 <이니셜 D> 때문에 ‘관성 드리프트’라고 알려졌는데 유럽에서는 ‘스칸디나비안 플릭(Scandinavian Flick)’이라고 부른다. 90도 이하, 그러니까 급한 코너, 헤어핀을 빨리 돌리 위한 고급 기술이다. 볼보자동차 아이스 드라이빙에선 이를 배우고 익힐 수 있다. 코너가 급하고 폭이 좁은 곳에서는 드리프트로 코너를 돌기 어렵다. 자칫 앞바퀴가 먼저 접지를 읽어 코스 가장 자리에 그대로 충돌할 수 있기 때문. 그래서 코너 전부터 드리프트를 유지한 상태로 코너를 진입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코너 반대 방향으로 운전대를 돌려 뒤를 흐르게 한 후, 코너 앞에서 다시 반대로 뒤를 흘려 코너에 들어간다. 좌우로 한 번씩 뒤를 흘리기 위해서는 정교한 가속페달 컨트롤과 빠른 스티어링 반응이 필요하다. 





또 하나의 미션은 연속된 코너를 드리프트로 연달아 해치우는 것이다. 롱 커브는 코너가 완만해 큰 어려움이 없었지만 쇼트 커브는 달랐다. 드리프트 후 자세를 안정화한 뒤 다시 똑같은 방식으로 미끄러뜨리면 되는데, 그 과정에 필요한 시간이 절대적으로 부족하고 앞 타이어가 접지력을 상실하면서 차체 제어권을 종종 잃을 때도 발생했다. 이럴 땐 차체 하중 이동을 통해 접지력을 살려내야 하는데 글로 이 감각을 전달, 표현하는 것은 정말 힘들고 어려운 작업이다. 몸으로 느껴봐야 알 수 있는 특별한 경험이다. 





또 하나 흥미로웠던 점은 안전벨트의 프리텐셔너(Pre-tensioner) 작동이었다. 프리텐셔너는 차가 위험을 감지했을 때나 차체에 충격을 받을 때 운전자가 시트 밖으로 튀어나가지 않게 안전 벨트를 되감는 장치다. 우리들의 코스에는 펜스나 장애물이 없어 프리텐셔너가 작동할 일이 없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C40 리차지와 XC40 리차지의 시스템은 예상보다 많이 미끄러지거나 운전자의 제어를 넘어가는 순간 여지없이 프리텐셔너를 작동시킨다. 얼마나 단단하게 고정하는지 몸과 시트가 꼭 한 몸이 된 듯한 기분을 준다. 안전벨트가 몸을 단단히 잡아주니 차 밖에서는 위태위태해 보여도 운전자는 운전대와 가속 페달 및 브레이크 페달에서 손과 발을 떼지 않고 안정적으로 주행을 이어갈 수 있다. 왜 볼보를 수십 년간 ‘안전의 대명사’라고 하는지 다시 한 번 곱씹을 수 있었던 순간이었다. 





허허벌판 위에 눈과 자동차밖에 없었지만 전혀 지겹지 않았다. 오히려 즐거움이 가득했다. 주변이 고요하고 걸걸한 엔진 소리가 들리지 않으니 바퀴가 눈을 짓누르는 소리와 바퀴 옆으로 눈이 튀어 오르는 소리, 그리고 운전자들의 탄성과 웃음 소리가 더 선명하게 들려왔다. 온종일 마음대로 드리프트할 수 있었으니 무슨 지루함이 있었을까. 그저 코너를 향해 달리며 짜릿할 만큼 차를 미끄러뜨리는 게 이렇게 재미있는 일인지 다시금 깨닫는 소중한 기회였다. 한국에선 절대로 느끼고 경험하지 못한 것들이 이곳에선 가능했다. 이곳은 운전을 좋아하는 사람들의 낙원이 분명했다. 




아이스 드라이빙을 마치고 참가자 모두들 뿌듯한 표정으로 차에서 내렸지만 나는 오히려 슬펐다. 이렇게 멋진 차와 눈으로 가득한 라플란드에서의 드라이빙이 어쩌면 일생에 한 번일 것 같아, 이제는 안녕을 고해야 하는 것 같아 아쉬움이 짙게 남았다. 괜히 사람들의 입김이 씁쓸한 담배 연기처럼 보인 건 우연이 아니었다.


김선관 자동차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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