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리아” “네.” “파주 카베아로 가자.” “몇 번째로 안내할까요?” “첫 번째.” “안내를 시작합니다.” 굳이 아리아를 불렀다. AI 음성인식 시스템 누구(NUGU)를 사용해보기 위해서다. 누구(NUGU)의 호출명인 ‘아리아’는 발음 새는 내 목소리를 잘 알아들었다. 이것도 알아들을까? “무료도로로 가자.” 파주까지 가는 데 굳이 유료도로를 탈 필요는 없으니까. “네, 무료도로로 안내하겠습니다.” 어김없이 아리아가 인식하고 반영한다. 그렇게 목적지를 설정하고 출발.
볼보가 XC60에 새로 개발한 인포테인먼트 시스템을 넣었다고 할 때, 잘 모르고 시큰둥했다. 그래픽 좀 깔끔하게 변했으려나. 음성인식 역시 크게 와닿지 않았다. 다른 브랜드에서도 채용한 시스템이니까. 브랜드명을 부르면 답한다. 하지만 잘 안 쓴다. 별로 쓸 일이 없으니까. 목소리보다 손이 먼저 가는 게 현실이다. 인식율도 그다지 좋지 않았다. 그러다 보면 음성인식 기능이 있었나 싶을 정도로 안 쓴다. 사람은 대체로 변화보다는 익숙함을 택하잖나.
반면 볼보가 SKT와 협업해 만든 음성인식 누구(NUGU)는 달랐다. 목적지를 설정하는 것부터 음성으로 시작하니까. 자동차에 올라 출발하기 전부터 음성 기능을 사용하게 된다. 중앙 디스플레이에서 내비게이션을 불러 목적지를 입력하는 일은 은근히 고되다. 잘못 누르고 지웠다 다시 쓰려면, 출발 전부터 진 빠진다. 그 수고를 음성인식이 덜어준다. 그러면서 음성인식을 사용하는 자신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게 한다. 음성인식 접근성 차이랄까. 무엇보다 누구(NUGU)의 음성 인식률이 96%로 뛰어난 까닭이다. 사용자 많은 SKT와 협업한 장점이다.
내비게이션을 보여주는 경로도 한층 일체감을 느끼게 한다. 중앙 디스플레이야 당연하고, 계기반과 헤드업 디스플레이(HUD)에도 경로를 표시한다. 덕분에 중앙 디스플레이를 보는 경우가 비약적으로 줄었다. 계기반과 HUD만 봐도 경로 복잡한 서울 시내를 빠져나갈 수 있다. 이런 일체감은 완전히 다른 감흥을 선사한다. 왜 달라 보일까. 한층 세련되게 변한 느낌은 이런 일체감에서 찾아볼 수 있다. 게다가 익숙한 티맵이어서 더 매끄럽게 느껴지기도 한다. 수입 브랜드 내비게이션은 불편해서 안 쓴다는 말, 이제 볼보에는 해당하지 않는다. 그 차이는 크다.
음성인식을 써보니 아이가 말문 틔우듯 아리아를 부르는 게 익숙해졌다. “실내 온도 높여줘. “ 음성인식으로 온도를 높였다. 시승하는 날은 비가 와서 기온이 쌀쌀했다. 역시 한 번에 깔끔하게 알아듣고 공조기를 설정한다. 물론 시승이니까 의도적으로 음성인식을 활용하려고 노력하긴 했다. 하지만 인식률이 떨어졌다면 금세 손이 먼저 움직였을 거다. 누구(NUGU)는 정확히 인식했고, 그 이후로 XC60의 인포테인먼트 시스템에 신뢰가 생겼다. 음성인식과 거리감이 십분 줄었달까. 내친김에 음악도 추천해달라고 했다. 플로(FLO)에서 음악을 선곡하더니 휘성 노래를 들려준다. 비 오는 날 휘성이라, 괜찮은 선택이다. 티맵과 누구, 플로 조합이 꽤 근사하다. 내비게이션과 음악을 음성인식으로 부릴 수 있으니까. 운전하면서 애용하는 중요한 두 가지를 음성인식으로 묶은 셈이다. 이 외에도 누구 연동 기능은 더 있다. 누구 스마트홈과 연동해 차에서 집 기물을 조정할 수 있다. 전등이라든가, 에어컨이라든가. 스마트폰으로 할 수 있는 기능들이긴 하다. 하지만 이 모든 걸 자동차에서 운전하면서 할 수 있다는 점은 또 다른 세계로 나아가게 한다. 자동차의 미래가 디바이스라더니, 슬슬 실감 난다.
이젠 아리아를 부르는 나 자신이 어색하지 않다. 더 용기 내 보기로 한다. 이것도 답할까 싶을 질문들을 던져봤다. 가령 네 꿈은 뭐니? 같은.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었지만, 생각 외로 매끄럽게 답한다. 혼자 운전할 때 두런두런 아리아와 얘기하는 재미가 의외다. 예상을 깰 정도로 똑똑하게 답변하니 아리아가 친근해진다. AI이기에 대화할수록 더 똑똑해질 거다. 그러고 보니 영화 <그녀(Her)>가 떠올랐다. 대필 작가 테오도르가 인공지능 ‘사만다’와 대화하면서 점점 사랑에 빠지는 내용. 아리아와 사랑에 빠질 리야 없겠지만, 은근한 친분 관계는 유지할 수 있겠다 싶다. 그만큼 대화가 자연스럽고, 듣기 좋은 말도 곧잘 한다.
혼자서 시승할 때 이렇게 말 많이 한 경우는 처음이다. 평소에 음성인식 기능을 잘 쓰지 않는데도 말이다. 마치 날 챙겨주는 비서와 동승하는 기분이랄까. 새삼 놀라웠다. XC60에 적용한 인포테인먼트 시스템의 완성도가 높다는 방증이다. 이런 매끄러운 기술들은 자연스레 실내 분위기에도 영향을 미친다. 한결 안락하다. 스티어링 휠에서 손을 떼거나, 시선을 정면에서 옮기는 횟수가 줄은 까닭이다. 알게 모르게 새로 바뀐 인포테인먼트 시스템이 운전자가 운전에만 집중하도록 유도한다. 이런 변화는 안전을 중시하는 볼보의 철학과도 맞닿는다. 부산스럽지 않으니 특유의 실내 질감도 더욱 도드라진다. 이렇게 인포테인먼트 시스템이 중요하다. 단지 신기술이 아닌 운전의 질을 높이는 데 유기적으로 연결된다.
시승을 마치고 내리고선 XC60을 바라봤다. 이번 신형에서 바뀐 몇몇의 외관 변화까지도 매끈하게 보인다. 앞서 말한 실내 분위기가 영향을 미쳤으리라. 볼보가 인포테인먼트 시스템에 공들인 효과는 분명하다. XC60을 완전히 새로 바라보게 하니까.
글 김종훈(자동차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