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공상 과학 영화의 현실화가 급속도로 이뤄지고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민간인이 최초로 우주여행에 성공하는가 하면, 인공지능의 딥러닝을 활용한 디지털 트윈도 등장하고 있다. 자동차 산업에서도 전동화와 자율주행이 빠르게 진행되고 있고, 신형 모델에서는 화려하고 과감한 변신보다 ‘이너 업그레이드(Inner Upgrade)’에 더 초점을 맞추는 추세다.
최근 국내에 새롭게 선보인 볼보의 신형 XC60만 봐도 지금의 자동차 제조사들이 어떻게 움직이고 있고, 무엇을 중요하게 바라보는지 가늠할 수 있다. XC60은 현재 볼보자동차의 주력 모델이다. 2008년 1세대 모델이 나온 이후 지난해까지 전 세계에서 168만 대 이상 팔렸다. 이는 볼보자동차 전체 판매량의 30%에 달하는 비중이다. XC60은 국내에서도 올해 3,000대 판매를 바라보고 있으며 이러한 추세라면 내년 5,000대 판매도 어려워 보이지 않는다. 볼보자동차코리아는 올해 총 1만 5,000대 판매를 눈앞에 두고 있다.
지난 9월 14일 볼보자동차코리아는 신형 XC60을 공개했다. 2017년에 등장한 2세대 모델의 정수를 이어가면서도 이번 신형 XC60은 소프트웨어에서 드라마틱한 변화를 이뤄냈다. 그것도 한국 스타일로 최적화됐다.
볼보자동차코리아는 300억 원을 투자해 약 2년간 SKT와 새로운 인포테인먼트 시스템을 개발했다. 이는 차량용 안드로이드 오토모티브 OS(Android Automotive OS) 기반으로 개발된 차세대 커넥티비티 서비스다. 여기엔 인공지능과 음성인식 기반의 티맵(TMAP), 누구(NUGU), 플로(FLO) 서비스가 포함됐다. 차에서 누구(NUGU)의 호출명인 “아리아”를 부르고 명령만 내리면 마치 영화 <아이언맨>의 자비스처럼 친절하게 실행한다.
‘아리아’의 능력은 무궁무진하다. 실내 온도, 시트 히팅과 쿨링, 이오나이저 제어 등과 같은 기본적인 차량 제어 그리고 목적지 안내, 가까운 맛집 안내, 경유지 설정 등과 같은 티맵 내비게이션 제어는 기본이다. 여기에 전화와 문자 메시지, 취향에 따른 음악 추천과 플레이 리스트 재생, 날씨와 뉴스 등 각종 정보 검색은 물론이고 집 안의 조명과 에어컨, 로봇 청소기 제어와 같은 스마트홈 컨트롤까지 가능하다. 차 안에 인공지능 비서가 한 명 타고 있는 것과 다름없다.
실제로 만나본 ‘아리아’는 꽤 똑똑했다. 그래서 리얼했다. SKT 누구(NUGU)는 사람의 생명을 살릴 만큼 정확하고 스마트하게 명령을 실행한다. 실제로 최근에 한 어르신이 누구(NUGU) 스피커에 긴급 구조 신호를 보내 위험한 고비를 넘긴 사례도 있다. ‘아리아’는 장난스러운 명령에도 위트 있게 대응할 정도로 슬기롭다. 음원 스트리밍 서비스인 플로(FLO) 역시 말만 하면 원하는 음악을 바로 들려준다. 음성으로 웬만한 기능은 다 컨트롤할 수 있다. 센터패시아의 디스플레이에 지문을 묻힐 일이 거의 없다. 그래서 운전대에서 손을 뗄 일이 거의 없다. 그래서 안전하다. ‘안전=볼보’라는 관념적 등식이 미래적으로 잘 성립됐다.
신형 XC60의 계기반만 봐도 단순히 300억 원짜리 시스템을 추가한 것에 머무르지 않고 차에 잘 녹여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TMAP 지도 데이터는 계기반 안에서도 확인할 수 있는데, 꽤 선명하고 매끄럽게 작동한다. 계기반의 속도와 내비게이션에서 보이는 속도도 차이 나지 않는 것을 보면 시스템의 싱크가 잘 맞아떨어진다는 게 확연히 드러나는 대목이다.
그렇다고 이 차가 소프트웨어에만 신경을 쓴 것은 아니다. 신형 XC60에서는 디테일에 변화만 주면서 더욱 미래적인 감성을 더했다. 우선 라디에이터 그릴에 3D 형태의 아이언 마크를 통합했고, 범퍼와 공기 흡입구 모양을 새롭게 바꿨다. 특히 테일 파이프의 모습이 보이지 않도록 리어 범퍼의 모습을 매만졌다. 이는 전동화를 서두르는 볼보자동차의 의지를 은근하게 드러낸다.
가장 인기가 높은 트림인 인스크립션 모델에는 리니어 라임(Linear Lime), 드리프트 우드(Driftwood) 등의 자연 친화적 소재와 더불어 스웨덴 오레포스(Orrefos)의 크리스털 기어 노브, 영국 하이엔드 스피커 바워스&윌킨스(Bower&Wilkins)의 프리미엄 사운드 시스템이 기본으로 들어갔다. 클린존 인테리어(Clean Zone) 패키지에 정전기를 발생시켜 항균 작용을 돕는 이오나이저가 새롭게 들어간 것도 쾌적한 드라이빙을 원하는 이들의 마음을 움직이게 한다.
XC60의 디자인은 애초 차의 콘셉트를 잘 반영해 완성도가 높은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2세대 XC60의 외관 디자인은 한국인 이정현 선임 디자이너가 맡았다. 토마스 잉겐라트(Thomas Ingenlath) 전 볼보 디자인 총괄 부사장이 이정현 디자이너의 XC60 스케치를 보고 “지금까지 상상했던 모습과 정확하게 일치한다”라며 극찬했던 일화는 지금도 유명하다. XC60은 볼보자동차 SUV의 패밀리룩 중앙에서 최적의 밸런스를 유지하며 특유의 노르딕 시크(Nordic chic) 스타일을 뽐내고 있다.
스웨덴어 중 ‘Lagom’이란 단어가 있다. ‘적당히’라는 뜻으로 북유럽인들의 라이프스타일을 비유할 때 자주 쓰이는 말이다. XC60은 볼보자동차의 주력이지만, 과하지 않게 업그레이드됐다. 그동안 한국 운전자들이 원했던 점을 제대로 캐치해 적절히 개선됐다. 안 그래도 전 세계에서 가장 잘 팔리는 볼보자동차의 모델인데, 이제는 한국의 길과 한국인의 마음마저 잘 읽어낼 수 있게 된 것이다.
글_조두현(오토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