볼보가 디자이너 브랜드 3.1필립림과 위크엔드 백을 만들었습니다. 이 문장은 평범한 뉴스입니다. 요즘 같은 시대, 협업은 양사의 이미지를 동시에 제고할 수 있는 분명한 트렌드이기도 하죠. 문장 자체는 평범하기도 하고 비범하기도 합니다. 어떤 식으로도 놀라지 않는 분이 분명히 계실 거라고 생각해요. 하지만 놀라움은 디테일에 숨어있습니다. 아주 흥미로워요.
일단 소식이 평범한 이유부터 말씀드릴게요. 자동차 회사가 가방 만드는 거, 아주 흔한 일입니다. 만들지 않는 회사가 없을 정도죠. 모든 브랜드는 그들의 브랜드 자체로 고객의 라이프스타일을 정의하고 싶어 합니다. 자동차를 만드는 회사지만 가방도 만들고 옷도 만들어서 고객 충성도를 높이는 거죠. 어떤 브랜드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그 마음을 표현할 수 있도록, 자연스러운 수단을 풍성하게 마련해주는 겁니다.
이게 쉬운 작업이 아닙니다. 자동차 회사는 좋은 자동차를 만드는 일 그 자체에 집중하는 것도 쉽지 않죠. 그 복잡하고 섬세한 프로덕트에만 집중해도 모자랄 수 있다는 얘기입니다. 게다가 이미 좋은 자동차를 만드는 기술과 역사로 정평이 난 회사들이라고 해도, 멋진 라이프스타일 제품을 만드는 건 또 다른 얘기입니다. 예쁘게 만드는 일. 그게 참 어렵거든요. 왜 그럴까요? 다들 뭘 좀 지나치게 많이 드러내고 싶어 하기 때문입니다. 겸손하기가 참 어렵기 때문입니다.
볼보와 3.1필립림이 만든 위크엔드 백은 그런 점으로부터 확실히 차별화됩니다. 겉에서는 이 가방이 볼보자동차와 관련이 있다는 어떤 단서도 보이지 않아요. 필립 림이 예전부터 독보적으로 잘해오던 방식 그대로, 심플하고 고급스러운 가방입니다. 또렷하게 우아하고 예쁜 디자인이기 때문에, 누군가는 분명히 물어볼 겁니다.
“그 가방 어디서 샀어?”
그럼 천천히 이야기를 시작할 수 있겠죠?
“아, 이거 필립 림…”
필립 림을 아는 사람은 여기까지만 듣고 반가운 마음을 드러낼 수 있어요.
“아 필립림! 그래 그래 어쩐지 그래 보이더라 예쁘네”
하지만 이야기가 여기서 끝나는 게 아니죠. 우리에게는 조금 더 깊은 이야기를 나눌 거리가 남아있습니다.
“응응, 필립림이랑 볼보랑 같이 만든 가방이야. 괜찮지?”
“볼보? 자동차 회사 볼보?”
자, 디자인으로 눈길을 끌었으니 이제 조금 더 깊은 이야기를 나눌 시간입니다. 여기서부터가 본론이죠. 우리가 시작했던 문장이 비범해지는 순간이기도 하고요.
이 가방은 3.1필립림과 볼보가 차세대 친환경 인테리어 소재로 만든 위크엔드 백입니다. 3.1필립림은 원래부터 지속 가능한 패션에 지대한 관심과 행동을 보여왔습니다. 해조류로 만든 탄소 중립 드레스, 고가의 재활용 소재 등 대체 소재의 한계를 지속적으로 돌파하고 이용해 왔어요. 소재를 혁신하고 스타일을 유지하면서 새로운 럭셔리를 제안하는 것. 필립림의 오랜 철학이자 역할이기도 했습니다.
소재 혁신이라면 볼보도 뒤지지 않습니다. 이번 위크엔드 백을 만드는 데 쓴 소재의 이름은 ‘노르디코(Nordico)’입니다. 노르디코는 볼보자동차가 만든 차세대 친환경 인테리어 소재의 이름이에요. 페트병(PET)을 재활용해 만든 천, 스웨덴과 핀란드의 숲에서 얻은 바이오 기반의 소재, 와인 산업에서 재활용한 코르크 등으로 만든 친환경 소재입니다. 하지만 이렇게 눈으로 보기에는 정말 익숙한 가죽 같죠?
가죽을 가공하는 과정에서는 엄청난 환경오염 물질이 발생합니다. 패션 산업은 전 산업군에서 두 번째로 환경오염을 많이 일으키는 산업으로 손꼽히죠. 필립 림이 볼보자동차와 협업하면서 “패션과 자동차 산업 둘 다 환경오염에 대한 책임이 있다. 이제 우리가 같이 해결책을 찾아야 한다”라고 말한 데는 다 이유가 있었습니다. 가죽을 전혀 쓰지 않았지만, 우리에게 여전히 익숙하고 고급스러운 질감을 그대로 유지한 채, 필립 림의 우아한 감각을 살려 만든 위크엔드 백은 양사의 해결책을 일상으로 초대하는 매우 의미 있는 시도인 셈이죠.
아무도 해치지 않으면서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것. 더 이상 환경을 망치지 않으면서 모빌리티를 혁신하는 일. 볼보자동차는 이번 협업을 통해 그들이 개발한 소재가 자동차 인테리어에만 머무르지 않을 거라는 사실을 전 지구에 알렸습니다. 무척 겸손하면서도 우아한 디자인, 볼보 자동차의 정체성을 전혀 강요하지 않고 첨단 소재를 제공하면서 그저 3.1필립림을 신뢰하는 방식으로 말이에요.
한 번 상상해볼까요? 누군가 곧 출시될 볼보의 전기차를 타고 주말여행을 떠나는 장면이에요. 지금 막 강원도 어딘가의 호텔에서 하차하는 이 사람의 손에는 볼보자동차와 3.1필립림이 만든 위크엔드 백이 들려 있습니다. 가방 어디에도 볼보자동차의 로고는 붙어 있지 않죠. 하지만 전기차를 운전하고, 필립림과 협업한 이 한정 위크엔드 백을 고른 오너의 마음에는 이 모든 소비가 지구를 해치지 않았다는 자부심으로 가득할 거예요. 그 의식적인 소비, 지속 가능한 혁신의 과정을 볼보와 함께하고 있다는 동반자 의식도 함께겠죠.
자동차 회사가 고객의 마음과 함께하는 일. 중요한 혁신의 과정에 함께하자고 권유하는 일을 이렇게 우아하고 자연스러운 방식으로 해내는 브랜드가 또 있을까요? ‘자동차 회사가 패션 회사와 가방 하나를 만들었다’는 문장의 주체들을 ‘볼보자동차’와 ‘3.1필립림’으로 바꾸면 이렇게 멋진 세계의 문이 열립니다. 이 글의 첫 문장이 비범할 수밖에 없는 이유, 이제 아시겠죠? 지속 가능한 미래의 일상, 볼보가 조금 더 앞서가는 듯합니다.
글/ 정우성(라이프스타일 칼럼니스트, 더파크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