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 역사에 비하면 자동차의 역사는 아주 짧습니다. 논란은 있지만, 현대적인 자동차의 시발점이라 할 수 있는 카를 벤츠의 파텐트 모토바겐이 특허를 받은 지 이제 겨우 135년이 지났을 뿐입니다. 그리고 지금 자동차를 만들고 있는 브랜드와 회사들 가운데 설립한 지 100년이 넘은 회사도 손가락으로 꼽을 정도로 적습니다. 볼보는 어떨까요. 처음 자동차 생산을 시작한 것이 1927년이니, 세계가 볼보라는 이름이 붙은 차를 처음 만난 지 이제 94년이 되었군요.
그러나 적어도 사람이 만들어내는 물건만큼은 '갑툭튀'라는 것이 있을 수 없습니다. 모든 결과에는 그 결과를 얻기 위한 과정이 있기 마련입니다. 그리고 그 과정은 어느 한순간 시작되어, 시간의 흐름과 함께 뼈대가 만들어지고 살이 붙어 결과로 이어집니다.
볼보의 자동차 만들기도 마찬가지입니다. 스웨덴이라는 특별한 나라에서 자동차를 만들게 된 계기가 있었고, 볼보라는 이름의 자동차가 공장에서 생산되기 시작할 때까지 나름의 과정이 있었습니다. 즉 볼보의 역사는 94년이 아니라 그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는 뜻이죠.
이번 이야기는 바로 94년보다 더 오래된 볼보의 역사, 즉 볼보가 탄생한 계기와 탄생하기까지의 과정에 관한 것입니다.
우선 지금으로부터 97년 전인 1924년에 있었던 일부터 이야기해 보겠습니다. 1924년 6월. 스웨덴의 수도 스톡홀름의 한 빵집에서 옛 회사 동료 두 사람이 오랜만에 만납니다. 한 사람은 경영자인 아사 가브리엘손(Assar Gabrielsson)이었고, 다른 한 사람은 엔지니어인 에릭 구스타프 라르손(Erik Gustaf Larson)이었습니다.
두 사람은 1910년대 중반에 스웨덴의 베어링 제조업체인 SKF에서 함께 일한 사이였습니다. 가브리엘손은 계속 SKF에서 일했지만, 라르손은 이직해 엔진 부품 제조업체인 AB 갈코에서 일하고 있었습니다. 그 자리에서 가브리엘손은 라르손에게 흥미로운 이야기를 합니다. 자동차를 직접 만들 계획을 하고 있다는 것이었죠.
당시 스웨덴에서는 1년에 1만 5,000대 정도의 자동차가 팔리고 있었습니다. 모두 다른 나라에서 만들어 수입한 것이었고 그 가운데 약 90퍼센트는 미국에서 만들어진 차였습니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미국에서 만들어진 차들은 스웨덴 실정에는 좀처럼 맞지 않았습니다. 겨울이 길고 추운 스웨덴의 환경이 가혹하기도 했지만, 관리나 수리에 필요한 부품을 제때 알맞게 구하기가 어렵기도 했죠. 가브리엘손은 그런 스웨덴의 자동차 환경을 바탕으로 자동차를 직접 생산하면 성공을 거둘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한 것이었습니다.
마침 라르손이 휴가를 떠나는 길이었기 때문에, 두 사람의 이야기는 오래 이어지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두 사람은 두 달 뒤인 1924년 8월에 스톡홀름의 한 식당에서 우연히 다시 만났고, 그 자리에서 비로소 좀 더 구체적인 이야기가 오가게 됩니다. 가브리엘손은 사업의 가능성에 관해 열변을 토했고, 라르손 역시 그의 이야기가 설득력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바닷가재를 함께 먹으며 두 사람은 구체적으로 자동차 생산의 밑그림을 그리기 시작했습니다. 이 우연한 만남이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볼보가 탄생하는 계기가 됩니다. 여기까지는 여러분 중에도 많은 분이 알고 계신 이야기일 겁니다.
두 사람이 계약서를 제대로 만들어 서명한 것은 식당에서 서로 협력하기로 합의하고도 1년 넘는 시간이 지난 뒤인 1925년 12월의 일이었습니다. 재미있는 사실은 두 사람이 계약서를 쓰기 전에 이미 자동차를 만들기 위한 계획을 구체화하고 있었다는 점입니다. 계약서에는 라르손이 스웨덴 환경에 알맞은 자동차 개발을 책임지고, 자동차를 생산할 공장에 관한 투자계획을 세우며, 1928년 1월 1일 전까지 최소한 100대의 차를 만들어야 한다는 내용이 담겨 있었습니다.
여기에 또 한 가지 조건이 붙습니다. 모든 일이 계획대로 진행되어야 라르손에게 보수가 주어진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언뜻 가브리엘손이 라르손에게 갑질을 한 것처럼 보일 수도 있지만, 꼭 그렇지만은 않았습니다. 사실 라르손은 1924년 9월에 연간 4,000대 생산 기준으로 자동차 공장을 세우는 데 필요한 비용에 관한 자료를 만들어 가브리엘손에게 보낸 상태였죠. 이 자료를 바탕으로 가브리엘손은 필요 자금을 계산했고, 재정적인 부분은 자신이 전적으로 책임지기로 합니다.
가브리엘손은 라르손이 설계한 차의 시제품이 완성되면 자신이 일하고 있던 SKF에 보여주고 본격적인 투자를 받을 생각이었습니다. SKF에서도 회사 일에 지장을 주지 않는다는 조건으로 가브리엘손이 자동차 생산 계획을 추진할 수 있도록 허락했습니다. 라르손 역시 회사의 허락을 받아 맡은 일은 그대로 하면서 작업을 했기 때문에, 원래 다니던 직장에서 월급을 그대로 받을 수 있었습니다. 자동차 개발이 도중에 중단되더라도 라르손이 경제적 어려움을 겪지 않도록, 일종의 보험처럼 두 사람이 합의한 결과였죠.
라르손은 여러 사람의 도움을 받아 자동차를 개발했고, 자신이 일하던 AB 갈코 공장의 설비를 활용해 1926년 6월부터 10대의 차를 시험 제작하기에 이릅니다. 이 가운데 1926년 7월 25일에 완성된 차에는 야콥(Jakob)이라는 별명이 붙습니다. 이는 천주교 성인 중 한 명인 야콥 즉 야고보가 선종한 날을 기리는 영명축일이 7월 25일인 것에서 비롯된 것으로, 나중에 볼보의 첫 차인 ÖV 4의 별명으로도 널리 알려지게 됩니다.
이렇게 완성된 10대의 시제차로 가브리엘손은 SKF의 투자를 받아 본격적인 자동차 생산의 발판을 마련합니다. SKF는 1915년에 설립되었지만 거의 방치상태였던 자회사인 볼보 AB의 이름을 되살려, 자동차 생산을 위한 회사인 AB 볼보를 설립합니다. 그리고 1927년 1월 1일부로 가브리엘손은 사장으로, 라르손은 부사장으로 AB 볼보에서 일하게 됩니다. 예테보리의 룬드비(Lundby) 에 마련된 공장은 분주하게 움직여, 마침내 1927년 4월 14일에 처음 완성된 ÖV 4가 조립라인을 떠나 세상의 빛을 보기에 이릅니다.
볼보의 첫 양산차인 ÖV 4가 가브리엘손과 라르손에 의해 잉태되어 태어나기까지 2년 10개월이라는 시간이 걸렸습니다. 지금을 기준으로 공식적인 볼보의 역사는 94년이지만, 진짜 볼보 역사의 시작은 두 사람이 빵집에서 만나 처음 '스웨덴 최초의 자동차 공장'에 관한 이야기를 나눈 97년 전 이맘때라고 해도 좋을 겁니다.
글 : 류청희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