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까지 21세기 초 자동차 시장을 이끌어 온 두 가지 테마가 있다. 하나는 ‘럭셔리’이고 다른 하나는 바로 ‘SUV’이다. 그래서 독일 3사를 비롯한 프리미엄 브랜드들은 몸집을 두 배 이상으로 불릴 수 있었고 이제는 슈퍼카로 대표되는 브랜드들까지 SUV를 내 놓는 세상이 되어 버렸다. 그리고 이 틈바구니에서 두 번이나 새 주인을 맞이하며 우울한 시기를 보냈던 볼보도 다시 재기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고들 말한다.
하지만 ‘볼보가 틈바구니에서 기회를 얻었다’는 말은 사실이 아니다. 오히려 볼보는 이런 시장의 흐름에 혜택을 받아야 하는 1순위 브랜드다.
이유는 스웨덴의 프리미엄 브랜드인 볼보가 뼛속부터 라이프스타일 전문 브랜드이기 때문이다. ‘SUV가 대세’라고 일컬어지는 현상을 조금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21세기 초를 대표하는 라이프스타일 모델은 크로스오버 SUV이고 이 모델이 현재 자동차 시장을 주도할 정도로 강세를 보이고 있다는 것이 더 옳은 표현일 것이다. 즉, 라이프스타일 모델은 부정할 수 없는 현재의 트렌드다.
그렇다면 자연스럽게 라이프스타일 모델에는 어떤 것들이 있었는지, 그리고 그 가운데에는 지금의 크로스오버 SUV 만큼은 아닐지라도 시장에서 인기를 끌었던 장르는 없었는지가 궁금할 것이다. 답은 20세기를 대표하는 라이프스타일 모델, 바로 왜건이다.
아마도 눈치채신 분들이 계시리라 믿는다. 그렇다. 볼보는 바로 왜건의 대명사였다. 세단의 지붕을 연장하여 넓은 실내 공간을 확보한 왜건은 세단의 안락하고 우수한 주행 성능과 넓은 공간이 주는 실용성을 모두 만족시키는 아주 훌륭한 라이프스타일 모델이었다.
1950년대의 듀엣(Duett)으로 현대적 왜건의 역사를 연 볼보는 1970년대의 P1800ES로 최근 왜건의 트렌드인 스포츠 왜건의 장르를 열었다. 그리고 200-700-900 시리즈로 이어지는 볼보의 대표적 왜건 시리즈는 미국인들이 향수를 느낄 정도로 세계적으로 생활과 레저의 현장에 스며들었다.그리고 지금의 V 시리즈 왜건의 출발점인 850 시리즈는 앞바퀴 굴림의 실용성과 투어링 카 시리즈에 참가하는 고성능 왜건의 강렬한 이미지를 동시에 얻은 왜건의 명가, 볼보만이 할 수 있는 왜건의 결정체였다.
볼보에게는 왜건 외에도 특이한 장르가 하나 더 있다. 바로 크로스컨트리 시리즈다. 왜건을 살짝 높여서 험로 대응력을 높인 이른바 ‘소프트 오프로더’다. 왜건의 주행 성능과 SUV의 주파력을 최대한 함께 갖고자 하는 유럽 시장의 고객들을 위한 프리미엄 시장용 모델로, 독일 프리미엄 브랜드들이 볼보의 뒤를 따라 이 장르를 선보였을 정도로 성공적이었다. 볼보는 왜건의 장점과 라이프스타일 모델의 미덕을 가장 잘 이해하고 있는 브랜드로써, 시장에서 원하는 SUV의 장점을 부각시켜 아주 적절한 또 하나의 크로스오버를 완성할 수 있는 유일한 브랜드였다. 이미 20년 이상의 역사를 가진 볼보의 크로스 컨트리 라인업은 탄탄한 고객층을 확보한 엄연한 장르로 자리잡았다.
이렇듯 왜건의 대명사였던 볼보가 지금은 XC 시리즈로 크로스오버 SUV의 대표주자가 되었고, 자기만이 할 수 있는 또 하나의 크로스오버 장르인 크로스 컨트리 라인업을 창조했다. 볼보가 항상 라이프스타일 브랜드였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라이프스타일 모델’이라는 말은 참으로 이율배반적이다. 삶을 풍요롭게 만든다는 점에서는 반갑고 흐뭇하지만 요즘은 오히려 단순히 마케팅 용어, 더 나아가서 사람들에게 꿈만 파는 플라시보 효과와 같은 허공의 빈 말처럼 사용되는 것이 안타깝기 때문이다.
하지만 별다르게 마케팅 용어로 라이프스타일이라는 말을 강조하지 않아도 뼛속부터 라이프스타일인 브랜드 볼보가 말하는 순간 이 말은 생명력을 갖는다.
글/ 나윤석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