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너지”. 물리학적이고 공학적인 단어이지만 동시에 이보다 더 가슴을 떨리게 하는 감성적인 단어도 없다. 그만큼 우리는 온갖 에너지로 둘러싸인 문명 시대를 살면서도 동시에 인생의 활력소를 찾아 헤매는 ‘풍족하지만 목마른’ 이율배반적인 삶을 살고 있다.
한편, 자동차 업계는 대격변의 시기를 맞았다. 기름의 시대에서 전기의 시대로. 이 또한 에너지가 테마다. 에너지원이 바뀐다는 것은 어쩌면 가장 근본적이 바뀌는 것일 수도 있다. 문명의 챕터가 바뀌듯이 말이다.
C40 리차지를 요약하자면 ‘볼보자동차’, ‘전기차’, ‘쿠페 디자인’이 떠오른다. 그런데 이 세 단어가 만들어 내는 미묘함이 있다. 참 낯선 조합의 단어들인데, 곰곰이 생각해 보면 뭔가 그럴 듯한 일이 벌어질 것 같은 호기심이 생기기 때문이다. 우선 ‘볼보자동차’는 탱크처럼 튼튼한 차라는 이미지 때문에 기업 문화나 고객을 대하는 태도 또한 보수적일 수도 있겠다는 선입견을 가지게 됐던 브랜드다.
사실은 – 그리고 최근의 행보는 더욱 – 전혀 그렇지 않다. 오히려 볼보는 고객들과 브랜드를 위해 옳다고 판단이 서면 남들의 눈치를 보지 않고 곧바로 실행하는 ‘스웩’이 넘치는 브랜드가 되었다.
예를 들어 남들이 화려함을 추구할 때 편안함이 진정한 럭셔리라는 ‘스웨디시 럭셔리’의 개념을 제안하고, 모두가 주행의 즐거움을 위한 고성능을 이야기할 때 안전을 위해서라면 최고 속도를 스스로 제한하겠다는 결정을 내렸다. 겉으로 보이는 모습보다는 안전이라는 가치를 최우선시하며 묵묵히 실속을 채워왔다. 언뜻 보면 덤덤한 듯, 하지만 사실은 대단히 과감한 행보가 이를 증명한다. 이런 배경을 생각했을 때, 볼보의 본격적인 순수 전기차 C40 리차지에 대한 관심은 높을 수 밖에 없었다.
여러 경쟁 브랜드들에 비해 전기차 출시가 늦었다는 평가도 있었으나, 볼보의 파워트레인 전동화는 일찍이 거의 완성되어 있었다. 플러그인 하이브리드 모델을 통해 제로 이미션 (Zero Emission) 주행을 준비해왔고, 다른 모든 엔진을 이미 마일드 하이브리드로 전환해왔다. 다시 말해 리차지 순수 전기차는 전동화의 일단락이었던 것이다. 21세기 볼보 브랜드 답게 전동화도 어느새 다 만들어 놓았었던 것. 덤덤한 스웩이다.
C40 리차지의 주행 감각은 디자인과 함께 이야기해야 한다. 디자인은 브랜드와 모델이 말하고 싶은 것을 고객들이 쉽게 알 수 있도록 시각화한 것이므로, 디자인과 실제 경험이 맞아떨어져야 성공한 디자인이라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면에서 C40 리차지의 세 번째 키워드인 ‘쿠페 디자인’은 볼보에게 과감한 결정이었다. 요즘은 크로스오버 SUV에서 쿠페가 종종 보이기는 하지만 사실 쿠페는 사양길에 들어선 장르다. 게다가 볼보가 쿠페를 만들어 본 지는 한참 전의 기억이고 그나마 C로 시작하는 모델들의 대부분은 쿠페가 아니라 해치백 모델들이었다. 쿠페는 시장 관점에서도 브랜드의 입장에서도 결코 쉽지 않았을 선택이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볼보 C40 리차지는 쿠페 디자인을 통하여 어떤 메시지를 전달하고 싶었을까? 역동성? 고성능? 스포티함? 모두 틀린 말은 아니다. 쿠페의 실루엣과 도어 면적에 비해 매우 좁은 그린하우스, 다운포스로 조종 성능을 높이지만 멋스럽기도 한 리어 스포일러 등 역동적인 이미지를 느낄 수 있는 디자인적 요소가 C40 리차지 곳곳에 적용되어 있다.
하지만 C40 리차지가 쿠페 디자인을 선택한 진짜 이유는 운전석에 앉아 도로를 달려본 뒤에서야 비로소 깨달을 수 있었다. 그것은 ‘밝음의 에너지’였다. 쿠페라는 장르가 직설적으로 드러내는 차 자체의 스포티함이나 고성능의 이미지보다는 C40 리차지로부터 사람들이 느끼는 마음, 더 나아가 생활에 미치는 요소에 더 집중한 것이었다. 주인은 사람이니까.
일단 C40 리차지는 시선의 움직임을 여유롭게 한다. 좁은 시야로 전방만을 노려보며 빠르게 달리는 것에만 집중하는 스포츠 쿠페와는 확연히 다르다. 겉모습에서는 좁게만 느껴졌던 그린 하우스, 즉 유리창 높이가 전혀 거슬리지 않는다. 주변 경치를 만끽하며 드라이브를 즐기기에 전혀 무리가 없다.
희한하다. 어떻게 이것이 가능했을까? 거기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었다. 첫째는 시선의 높이다. C40 리차지는 사실 낮지 않은 차다. 실내의 높이가 충분해 시트의 착좌 위치도 적당히 높일 수 있었다. 주변을 내려다보는 시선의 시원함이 가능하다는 뜻이다. 둘째는 그린 하우스가 실제로는 보기보다 좁지 않다는 점이다. 키가 큰 차체에 도어 패널이 넓어서 유리창 면적이 상대적으로 더 좁게 느껴졌던 것이다. 그러니까 스포티한 이미지는 갖되 스포츠 쿠페의 불편함은 덜어낸 영리한 디자인인 것이다.
세번째는 글라스 루프다. 실내로 햇빛을 많이 받아들일 수 있다는 점은 밝은 실내의 원천이 된다. 마지막은 볼보자동차 고유의 아늑한 인테리어다. 스웨디시 럭셔리의 분위기가 담겨 있는 C40 리차지의 인테리어는 차콜 톤이 적용됐음에도 아늑함과 따스함을 느끼게 한다.
여기에 C40 리차지에만 적용된 토포그라피(Topography) 데코 패널도 큰 역할을 한다. 흐린 날에는 회색 패널이지만 햇빛을 받으면 등고선 무늬와 함께 밝게 빛난다. 햇빛이 귀한 스칸디나비아 출신 브랜드답게 밝은 실내 분위기를 완성하는 노하우를 적용했다.
자, 이렇게 C40 리차지의 디자인에 대한 소개가 끝났다. 물론 가장 중요한 것은 드라이브를 통하여 전달되는 고객 경험이 볼보가 의도한 이 디자인 언어와 일맥상통하는가 이다. C40 리차지를 시승해본 후 느낀 답은 ‘그렇다’이다. 408마력 듀얼 모터의 고출력 파워트레인이 아마도 스포츠 카에서는 ‘고성능’, ‘운전의 재미’로 강조되었을 것이다.
그런데 C40 리차지에서는 여유가 주는 풍요로움, 그리고 언제나 원하기만 하면 세상을 뒤로 흘려 보낼 수 있는 시크함으로 다가온다. 20인치 휠을 장착한 컴팩트 클래스 전기차라고는 상상할 수 없는 안락한 승차감은 볼보 특유의 편안함을 체험하기에 충분하다. 그래서 C40 리차지는 쿠페의 이미지를 갖고 스포츠 쿠페를 능가하는 고성능을 가졌지만, 가족이 함께 타도 넉넉한 밝고 신나는 패밀리카가 될 수 있었다.
볼보는 20세기에는 왜건으로, 21세기에는 크로스오버 SUV로 라이프스타일 자동차의 흐름을 리드한, 삶의 멋을 아는 브랜드다. 그리고 이런 볼보가 쿠페형 SUV를 전기차로 만드니 새로운 시너지가 발현되었다. 그것은 삶의 에너지이다.
“인생의 에너지를 리차지하다. 볼보 C40 리차지”
글_자동차 칼럼니스트 나윤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