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동 버튼을 눌러 자동차를 깨운다. 보통 이렇게 시승기를 시작한다. 하지만 C40 리차지는 시동 버튼이 없다. 시트에 앉으면 센서가 탑승했다는 걸 감지한다. 그냥 기어노브를 D에 놓고 출발하면 그뿐이다. 무언가 빠뜨렸다는 느낌이 드는 건 아니다. 동작 하나 사라진 덕분에 산뜻함이 감돈다. 문 열고 시트에 앉아 출발하기까지, 내내 차분하다. 정적을 깨는 것이라곤 티맵의 아리아를 부르는 내 목소리와 목적지를 알려주는 아리아의 목소리. 전기차가 차분한 건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그럼에도 C40 리차지에선 또 다른 의미로 다가온다. 동작 하나 줄었을 뿐인데, 느끼는 차분함은 새삼 다르다. 시동 안 걸고 출발하는 자동차라니.
처음에는 긴장했다. 타기 전에 본 C40 리차지의 출력은 그럴 만했다. 앞뒤 차축에 전기모터를 각각 장착한 듀얼 모터 모델이니까. 전기차에 듀얼 모터는 곧, 가공할 출력을 의미한다. C40 리차지 역시 숫자가 강렬하다. 최고출력은 408마력, 최대토크는 67.3km. C40 리차지의 크기를 생각하면 408마력은 차고 넘친다. 가속 수치는 또 어떤가. 정지상태에서 100km/h까지 걸리는 시간은 4.7초. 볼보 라인업에서 이런 숫자를 본 적이 없다. 게다가 전기차다. 가속페달을 밟는 즉시 최대토크를 뿜어낸다. 고성능 모델을 탈 때처럼 긴장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 부드럽다. 생각보다 차분하다. 볼보가 지향하는 차분한 주행 감각은 C40 리차지에서도 그대로 드러난다. 어느새 긴장하던 몸이 풀린다. 고성능을 품었어도 성정은 여전하다.
이유가 있다. 일단 페달 감각이 민감하지 않다. 가속페달을 밟아도, 브레이크 페달을 밟아도 초반에는 여유가 있다. 일상에서 주로 밟는 정도에선 부드럽게 의사를 전달한다. 가속할 때도, 제동할 때도 민감하지 않으니 안정적이다. 출력 숫자보다 일상 주행에서 편의성을 먼저 고려한 설정이다. 별다른 소리가 들리지 않는 점도 영향을 미쳤다. 전기차이기에 그렇지만, 전기차 특유의 소리도 은근히 억제했다. 미세한 전자음이 들리긴 하지만 도드라지지 않는다. 이모저모 자극할 만한 요소를 누른 셈이다. 대신 부드러우면서 은근히 활기찬 하체가 몸을 다독인다. 전기 파워트레인을 품었어도 볼보의 주행 질감은 여전하다. 이 점이 중요하다. 변화에 대응하면서도 기존 감각을 유지하는 섬세함. 전기차로서도 여전히 볼보답다.
물론 있는 출력이 사라질 리 없다. 출력을 만끽하려면 과감하게 가속페달을 밟으면 그만이다. 화끈한 펀치력을 즐기는 과정을 예민하게 설정하지 않았을 뿐이다. 일상과 쾌감 사이에 완충제를 설정한 배려다. 출력을 한껏 터뜨리면 숫자가 실감 난다. 도로를 접어 달리는 듯한 가속력이 실내를 채운다. 눈 몇 번 깜박이면 금세 최고속도 180km/h에 도달한다. 이때 사륜구동과 20인치 휠이 능력을 발휘한다. SUV이기에 어쩔 수 없이 무게 중심이 높고 차체가 크지 않아 묵직함도 덜하다. 그럼에도 C40 리차지는 배터리로 무게 중심을 낮추고, 20인치 휠로 접지력을 높였다. 사륜구동의 안정감도 한몫 한다. 이런 요소들이 어우러져 극적인 가속감을 의외로 침착하게 전한다. 20인치 휠은 과하지 않나 싶었는데, 다 이유가 있었다.
고성능을 즐길 때 ‘원페달 주행모드’가 재미와 효율을 챙기기도 한다. 원페달 주행모드로 놓으면 회생제동이 강하게 작용한다. 일상 주행에선 적응이 필요한 세기다. 반면 고성능을 흩뿌릴 땐 가감속이 더욱 분명해진다. 차량이 더욱 극적으로 움직이는 셈이다. 가속페달 밟는 정도를 조절해 고성능을 요리하는 재미가 크다. 원페달 주행모드를 켜고 끌 수 있도록 했으니 필요에 따라 사용하면 된다. 주행모드가 없는 C40 리차지로선 주행모드 변경 같은 효과랄까. 고속 영역에서 주로 활용했다. 주행거리를 늘리고 싶을 때 역시 유용하다.
C40 리차지는 온화한 얼굴로 시종일관 대하다가 필요할 땐 단호하게 내달린다. 원래 조용한 사람이 화나면 더 무서운 것처럼 변화 폭이 크다. 그렇다고 긴장하게 하는 짜릿함이 아니다. 시원하게 하는 통쾌함이다. 가속할 때 차체가 진득하게 움직여 불안한 요소를 제거한다. 고성능 역시 볼보다운 결대로 발휘하는 셈이다. 한결같은 설정이다. 중심을 흩트리지 않는다. C40 리차지를 주로 활용하는 상황을 생각하면 합당한 성격이다. 스포츠 주행을 원해 C40 리차지를 사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일상에선 쾌적하게 운행하고픈 사람이 다수일 거다. 그런 사람을 위해 부드럽게 조율한 셈이다. 물론 가끔 화끈함을 느끼고 싶을 때 언제든 송곳니를 드러낼 능력은 충분하다. 기분 전환 요소로서 고성능이 기능한다.
최근 고성능은 더 넓은 의미를 품는다. 스포츠성에만 머물지 않고 럭셔리 요소로도 영역을 넓혔다. 풍성한 출력이 표현하는 여유로움이랄까. 그런 점에서 국내 수입된 C40 리차지는 최고급 트림인 ‘트윈 얼티메이트’ 단일 모델로 출시되어 더욱 가치를 높였다. 출력 숫자는 볼보만의 조율로 C40 리차지에 스며들었다. 부담 없이 차분하게, 그러다가 언제든 호방하게 달린다. 흥미로운 감각이다.
글 김종훈(자동차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