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렝게티’라는 말을 들어봤는지. 서울에서 서쪽 끝인 영종도에서 또 한 번 무의대교를 건너야만 닿을 수 있는 대무의도 끄트머리에 있는 맹지로, 이름에서 짐작할 수 있듯 무의도와 세렝게티를 합친 말이다. 자동차는 접근할 수 없어 두 발로 호룡곡산을 넘어 찾아가는 데 앞은 망망한 서해가, 뒤에는 아찔한 절벽이 버티고 섰다. 귀양살이하는 게 아니고서는 갈 일이 없을 것 같은 고립된 땅이지만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바로 백패커들이다.
볼보의 신형 XC60 T8으로 무의도를 찾은 까닭이 백패킹때문은 아니다. 이 작은 섬이 쓰레기 때문에 몸살을 앓는다는 언론보도를 보고 플로깅을 해볼 생각이 들었다. 볼보가 지속해서 펼치고 있는 '헤이, 플로깅’ 환경보호 캠페인 덕분에 내심 호기심이 들었던 것도 있고.
집에서 호룡곡산까지 거리는 정확히 77km로 경로 대부분이 순환도로와 공항고속도로다. 신형 XC60 T8은 전기주행가능거리가 이전보다 무려 80%나 늘어 1회 충전 주행거리가 57km에 달한다. 출발하기 전 배터리를 가득 채워보니 계기판에 찍힌 전기주행가능거리는 자그마치 67km! 오호라. 도로 상황만 괜찮다면 목적지까지 기름 몇 방울 쓰지 않고 갈 수 있겠는데?
결론부터 말하자면 가능하다. 연비운전을 하지 않았음에도 배터리 충/방전이 쉴새 없이 이뤄져 전력량이 완만히 줄어든다. 드라이브 모드는 하이브리드, 퓨어, 스포츠, 충전을 고르게 사용했는데 운전조건에 따라 70km 이상도 너끈히 주행할 수 있겠다. 이 정도면 자가 충전이 가능할 경우, 거의 전기차처럼 탈 수 있다.
영종도까지 가는 공항고속도로는 지루하지만 몇 군데 구간단속 구간을 제외하면 차의 성능을 제대로 느껴볼 수 있다. 나들목도 크게 꼬부라지지 않아 도로에 진입하는 다른 차와 나의 안전에서도 상당 부분 자유롭다.
신형 XC60 T8의 전기주행가능거리만큼이나 인상적인 부분은 출력이다. 이전보다 최고 출력이 50마력이나 올라가 무려 455마력에 달한다. 흥미로운 건 이제 더 이상 트윈 엔진이 아니라는 것. 슈퍼차저를 빼버리고 터빈을 키웠다. 얼래? 터보차저가 커지면 초반 지연이 길어지는 거 아닌가?
이 물음표는 가속페달을 밟자마자 느낌표(!)로 바뀐다. 기존보다 65%나 강한 출력을 내는 후륜 모터가 차를 앞으로 밀어낸다. 그 덕에 신형 XC60은 제원표상 수치인 ‘제로백’ 4.8초보다 훨씬 강력한 충격을 준다. 추월 가속처럼 순간적인 가속이 필요한 상황에선 더없이 쾌적한 주행이 가능하다.
시승을 앞두고 보도자료를 살피다가 눈이 크게 떠진 부분이 또 있다. ‘엔진의 개입 없이 모터와 배터리만으로 시속 140km까지 가속할 수 있다’ 가속페달을 얼마나 살살 밟으며 먼 거리가 필요하길래 가능한지 궁금했다.
그런데 웬걸. 일반적인 가속 상황처럼 속도를 올리는데 엔진은 미동도 하지 않는다. 정확히 전기 제한속도에 다다르자 액셀러레이터가 턱하고 막힌다. 엄지발가락에 꽤 힘을 주자 그제야 엔진 룸에서 왱하는 소리가 들리며 속도가 다시 거침없이 올라간다. 영화에 나온 대사 말마따나 ‘지금까지 이런 볼보는 없었다’.
3년 전에 개통한 무의대교는 무의도에 드나들 수 있는 유일한 육로다. 뱃길이 아직 남아있지만 특별한 이유가 아니고선 굳이 택할 이유가 없다. 하지만 편도 1차로 외길이고 대교 초입에 위치한 카페 주차장에 드나드는 차들이 엉켜 주말이면 도로정체로 골머리를 앓는다.
다행히 평일에 찾아간 대무의도는 한적하다. 하지만 길가에 쓰레기는 눈에 쉽게 띌 만큼 많다. 차를 안전한 곳에 세우고 잠깐 주웠을 뿐인데 금세 한 무더기다. 섬 끝에 위치한 광명항에서 마을 어르신께 여쭤보니 산 타고 백패킹하는 사람들은 쓰레기를 잘 챙겨가는데 뜨내기손님들이 문제란다.
호룡곡산을 넘어 무렝게티까지 갈 엄두는 나지 않아 항구 근처 쓰레기를 줍는데 어르신께서 대뜸 하시는 말씀. “전기차 탈 자격 있구먼”
글_이재림(스튜디오 카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