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게 살 수도 없고 이렇게 죽을 수도 없을 때 월급날은 오니까
하루 24시간 중 좋아서 하는 일은 얼마나 될까?
퇴근을 30분 앞두고 갑자기 떠오른 이 질문 덕분에 미친 듯이 키보드를 두드리며 보고서를 작성하던 두 손이 일순간 멈췄다. 컴퓨터 모니터를 가득 채운 보고서는 잠시 미뤄두고 머릿속에 엑셀 파일을 하나 열고 손익계산서를 작성해 보기로 했다. 나라는 사람의 올 한해 손익계산서를 말이다.
‘좋아하는 일을 한다’는 이익, ‘하기 싫은 일을 한다’는 손해라고 치고 목록을 작성했다. 물론 결과는 참담했다. 그러나 나를 더더욱 좌절시킨 것은 득실을 따지기도 전에 무엇보다 나의 하루가 너무 별거 없었다는 사실이었다.
6:00 기상, 9:00 출근, 12:00 점심식사 18:00 퇴근.
(야근이 많아 귀가하고 나면 밤 10시를 넘어가는 경우가 대다수.)
이 특별할 것도 없는 직장인의 일상에 좋아서 하는 일 같은 게 있을 리 만무했다.
책읽기, 글을 쓰거나 그림 그리기, 강아지랑 산책하기, 좋아하는 카페에 가서 따뜻한 차 마시기, 주말에는 무작정 어딘가로 떠나기, 기타 배우기, 목공 배우기 등. 하고 싶은 일이 이렇게나 많은데 하루 24시간 일 년 365일 동안 출퇴근만 일삼고 있다는 사실에 슬슬 화가 치미기 시작했다.
누군가는 이럴 때 꼭 퇴사를 하곤 하지만 나는 때 되면 통장에 한 달치 노동에 대한 보상이 꼬박꼬박 들어오는 직장인의 삶 또한 놓칠 수 없는 사람. 월급도 받고 싶고 좋아하는 일도 하고 싶다면 방법은 하나뿐이다. 퇴근 후에 무리해서라도 시간과 에너지를 들이기.
어쩔 수 없다. 엉망진창인 나의 손익계산서가 조금이나마 괜찮아지기 위해서는 퇴근 후 30분이라도 하고 싶은 일을 하기. 그것뿐이다.
최승자 시인은 ‘이렇게 살 수도 없고 이렇게 죽을 수도 없을 때 서른은 온다’고 했지만
이렇게 살 수도 없고 이렇게 죽을 수도 없을 때 나에게는 월급날이 온다. 명심해야 해!
그러니까 퇴사는 됐고, 지금 당장 좋아하는 일을 하는 수밖에.
자, 그럼 일단 오늘은 우리 집 강아지랑 밤산책을 하기로 한다. 멍뭉아 기다려, 언니가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