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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드롱 Jan 28. 2022

골다공증의 명약

믿음 빼기 노동은 얼마만 한 효능일까


엄마가 산더미 같은 고구마 줄기를 사 왔다. 단 돈 이 천 원어 치란다.

이게 골다공증에 그렇게 좋대.

가녀리게 흔들리는 줄기가 어떻게 뼈를 튼튼하게 하는 걸까, 곰탕이라면 모를까.

그런 생각이 들었지만 별 대꾸하지 않고 엄마 옆에 앉아 줄기를 집어 들고 작업을 시작한다.


한 천 개쯤 되는 줄기를 하나씩 들고 직경 0.5밀리미터의 원통형의 줄기를 감싸고 있는 껍질을 벗긴다. 한 번에 쭉 벗겨지는 놈은 거의 없고 두세 번 손이 가야 완료가 된다.

어설프게 벗기는 척만 했더니, 작업반장의 지적이 날아온다.

부엌 구석에 주저앉은, 흰머리가 늘어난 헝클어진 단발머리의 작업반장님.

싱싱하게 뻗대고 있는 고구마 줄기의 거대한 산 앞에 더욱 작고 여려 보이는 엄마는 불가사의한 생기로 나를 압박하고 있다.


 나는 고구마 줄기 반찬을 그리 좋아하지 않는다. 그 밍밍하고 뭉근한 맛을 맛있다고 생각한 적이 드물다.

“이거 해주면 너도 잘 먹었어.” 엄마는 그렇게 말하며 358개째의 줄기를 집어 든다.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내가 이것을 엄마 앞에서 맛있게 먹는 모습을 보였다면 그건 결혼 후 오랜만에 만난 엄마 반찬을 욕심내는 장면이었을 거다. 손이 많이 가는 채소반찬을 내 손으로 해 먹기 너무 힘들고 귀찮으니까, 인스턴트 음식의 착 감기는 맛에도 질려 버린 어느 날이었을 것이다. 아무리 그래도 내겐 한 봉지에 천 개쯤 든 고구마 줄기를 산다는 건 아직도 감히 덤비기 엄두가 안나는 시간 낭비다.


 “근데 골다공증에 이만큼 좋은 게 없대.”

분명 소리를 내서 말한 게 아닌데, 아무도 물어보지 않았는데 엄마는 또 말한다.


그 믿음 앞에서 우리 중 아무도 감히 이것이 진짜 뼈를 튼튼하게 해 줄는지, 칼슘제 한 알 먹는 것보다 효과가 더 있을지 따질 수 없다.

그걸로 논쟁을 벌이는 시간에 모두의 웅크린 허리가 정말로 더 안 좋아질 것 같아서 나는 입 닥치고 앉아 같이 산을 오른다.

엄지손톱 밑이 줄기의 즙으로 검어진다.


 곧이어 남편이 말없이 다가와 줄기를 고른다. “어떻게… 하는 거예요?”


시어머니 표현으론 공부만 하고 자라 ‘아무것도 모른다’는 귀한 아들은 아마 이 기다란 것이 고구마 줄기인 줄도 모르고 무심히 먹었을 것이다.

남편은 부엌 구석에 자리 잡고 어설프게 등반을 시작한다. 온종일 식구들 반찬을 먹이느라 서있는 장모님이 안쓰러워서인지 속은 모르겠으나 시간이 곧 돈이며 음식이야 까짓 대충 배만 채우면 된다는 사고방식의 그가 웬일로 아무 군소리가 없다.

엄마의 그 결연함에 쫄아 우리 둘은 골다공증에 좋다는 고구마 줄기… 속으로 되뇌며, 손가락을 놀린다. 이어 아빠가 와서 작업에 참여한다.

엄마는 아빠의 손이 웬만한 여자보다 야물다며 속 보이는 칭찬을 한다.

이어 7살 아들이 지 아빠 무릎에 앉는다. 어른들이 또 자기만 빼고 무슨 재밌는 일을 하나 싶어 자기도 끼고 싶다.

곧 부엌 구석에 다섯 명이 오글오글 모여 커다란 고구마 줄기 산을 갉는다.


“골다공증에 이게 그렇게 좋대.”

엄마는 또 말한다. ‘그러니까, 이런 수고는 할 만한 거야.’ 생략된 이 말을 모두들 속으로 듣는다.

우리 집 식구 중에 골다공증을 걱정해야 하는 이는 엄마밖에 없다. 모두 아무 말하지 않지만, 왜 이렇게 까지.라는 마음이 마치 들렸던 것처럼 엄마는 계속해서 대답을 한다.



 아이고 허리야.

겨우 끝내고 뻐근한 허리를 펴고 티브이 앞에 누운 내 앞에 엄마가 불쑥, 데친 초록들을 내민다.


“예쁘지 않니?”


얌전하게 숨이 죽어 반투명하고 영롱한 연두색을 품은 고구마 줄기들.

네놈들 반드시 엄마 뼈의 구멍구멍을 메꿔주어라.

나는 거의 보석같이 윤을 내는 줄기들을 노려보며 속으로 중얼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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