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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드롱 Jan 29. 2022

까칠해서 미안해

나와라 만능 가제트 손



 또다. 손가락 관절마다 작은 수포가 생겨나더니 가려움이 심해졌다.

긁으니까 부풀어 오르고 손마디는 더 굵어졌다. 손이 나보다 열 살 쯤 먼저 늙고 있다. 아무리 봐도 이 손은 내가 아닌 것 같다. 참다가 피부과에 갔다.


 앞서 진료중인 방에서는 뭐라고 큰 소리로 쾌활하게 윽박지르는 소리가 들렸다. 우리 엄마나이 쯤 돼 보이는 아주머니가 생각보다 어두운 낯빛으로 진료실을 나왔다.

의사는 내 손을 보더니 간단하게 주부습진이네. 라고 진단했다.

혹시 아토피는 아니냐고 묻는 나에게 큰 소리로 쓸데없는 소리하지 말라고 하더니 그는 짧은 진료시간 동안 세 번이나 ‘여자라서’, ‘여자가’ 라는 말을 했다. 물이나 세제가 지속적으로 닿아서 생기는 피부질환인 주부습진은 그 별명처럼 엄마들의 직업병인 셈이니까…나는 쏟아지는 성차별적이고도 고압적인 태도에 당혹스러우면서도 왠지 주눅이 들어 그냥 웃었다. 오래묵은 동네만큼이나 오래된 병원의 이 원장은 여자들의 습진에 이력이 난 듯 했다.


여자니까 물을 안 만질 수 없겠지요? 발 좀 봅시다. 양말 좀 신어요 여자가.

습진은 물이 웬수야. 물을 만지지 마요.

설거지를 할 땐 면장갑을 끼우고 그 위에 고무장갑을 덧 사용할 것, 김치나 생선, 과즙을 만질 때 비닐장갑을 사용할 것, 하루에 목욕은 15분을 넘기지 말 것, 하루에 손은 열 번 말고 세 번만 씻을 것. 네네 하는데 마지막 다짐에는 얼른 대답이 나오지 않았다.

눈앞에 아이의 손을 잡고 같이 비눗물을 뭍히는 장면, 양치를 시키는 장면, 엉덩이를 닦아주는 장면, 흘린 반찬을 주워담는 장면, 행주로 식탁을 닦는 장면이 휙휙 지나갔다.








병원 계단을 내려오면서, 동행했던 남편이 그래도 아토피가 아니라서 다행이네. 라고 했다. 그러게. 나는 어딘가 씁쓸한 기분으로 대답했다.

마트에서 면장갑과 비닐장갑을 고르는 내 뒷통수에 대고 남편은 그 의사 정말 ‘꼰대’같더라. 고 흉을 보았다. 그러고는 영 자신없는 목소리로 앞으로 물 만지는 일은 자신이 할 테니 놔두라고 했다.

마음은 고맙지만 당최 그것이 가능한 일인가. 갑자기 꿀밤먹은 어린애가 된 마냥 울컥했다. 그러나 역시 맘속으로만 중얼거렸다. 이 일은 논쟁 해 보았자 긴 실랑이일 뿐 서로의 변명과 억울함으로 끝난다.


면장갑을 사용하기 전 간단히 손빨래를 해야겠다 싶었다.

이런 일도 물을 써야한다. 나는 시험삼아 남편에게 이것 좀 비누로 빨아줄래? 라고 물어보았다. 얼른 빨면 오후 햇빛에 말려 저녁에 쓸 수 있을 것 같았다. 이거 하자고 세탁기와 건조기를 사용하는 건 낭비니까. 남편은 쳐다도 보지 않으며 노트북을 두들겼다. 어. 거기 놔둬. 좀있다 해줄게.

이래서 ‘앓느니 죽겠다’라는 말이 나왔다.








내 손이 달라졌다는 것을 느낀 건 아이를 낳고 두 해 쯤 지나서였다.

꽃잎처럼 보드라운 아이의 볼을 만지는데, 내가 기억하는 촉감보다 훨씬 무디고 둔한 느낌이 들었다. 손가락 너머 아이가 멀리 있는 듯 했다. 나는 아들을 끌어안았다. 그 느낌은 조용하고도 무서웠다.

손가락에 하루아침에 굳은 살이 생기기도 하나. 이상했다. 나와 바깥 세상 사이에 엷은 종이 한 장이 둘러싼 느낌이었다. 그것은 앞으로 이 구별은, 네가 죽을 때까지 없어지지 않으며 점점 더 멀어질거야. 라는 작지만 단호한 선고였다.


손 다음에는 발이었다. 아이를 숨쉬듯 가깝게 느낄 수 있는 감각이 멀어진 건 상실감 비슷한 것에서 미안함과 부끄러움으로 변했다.

아이가 엄마, 하고 내 손에 얼굴을 부빌 때, 유치원을 데려다 주면서 손을 잡고 걸을 때, 내 발을 만지기라도 할라치면 난 살짝 몸을 움츠리게 됐다. 어느새 거칠거칠한 엄마가 된 것이 당혹스러웠다.






8월이다. 아들이 매미 번데기를 주워왔다. 매미의 껍질이 불쌍하다고 했다.

엄마. 이것 봐. 매미랑 똑같이 생겼어. 껍질인데 어떻게 매미랑 이리 똑같이 생긴거야? 이 속에 매미는 어떻게 탈출했을까?


나는 문득 아득해져서 매미껍질을 바라보았다. 매미는 껍질을 두고 어디로 갔을까. 빛나는 속살을 뽐내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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