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의 심령사진을 보다.
내 친구 A는 착하다.
마음만 착한 게 아니라 행동을 한다는 점에서 나는 그를 존경한다.
아무리 바빠도 길에 취객이 쓰러져 있으면 이것저것 잴 것 없이 안전한 곳으로 부축하고, 도움을 요청한다. 도로에서 로드킬을 당한 동물을 발견하면 가능한 차를 세우고 시신을 거두어 숲에 옮겨놓는다.
완전한 수습은 못하더라도 최소한 더 이상 망가지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 그리고 다른 운전자들의 안전을 위해 그렇게 하는 것이다.
신념이 있으면 그에 따른 행동을 하는 사람과, 말로만 바른 소리를 하는 사람이 있다. 나는 이기적인 인간이라 후자에 속한다. 행동할 자신이 없으니 바른말도 때로는 아낄 때가 있다. 그 정도로 나는 비겁하다. 게다가 피도 죽음도 무섭다. 호러무비도 싫다. 잔상이 오래 남아 나를 끌어내린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A는 동물을 사랑한다.
예전부터 유기견과 유기묘를 만나면 모른 척 못하고 새 주인을 찾아주려고 애썼다. A의 그런 성품 때문에 여태 많은 동물들이 그 집을 거쳐갔다. 그중 붙박이로 머무르다 아예 가족이 된 몰티즈가 있었다. 이름은 ‘흰비’로 불렀다. 예쁘장한 얼굴이었지만 처음엔 도통 사람에게 마음을 열지 않았다. 경계도 심했다. 그래도 그 개는 A의 한결같은 극진한 사랑을 받으며 차츰 몸과 마음을 회복했다. 그리고 마침내 A를 생명처럼 사랑하게 되었다.
A와 몇 년 만에 연락이 닿았다. 안부를 묻는데, 흰비가 며칠 전 떠났다고 했다.
떠났다고? 어디로?라고 묻고 나는 잠시 말을 잃었다. 추정나이 15세인 흰비. 무지개다리를 건넜구나. 마지막 몇 년은 많이 아파서 병원신세를 여러 번 졌다고 했다. 병원에서도 연명치료 밖에는 해줄 것이 없었다. 그래도 A는 고비가 올 때마다 흰비를 안고 병원으로 달렸다. 이번이 마지막이 아니길 간절히 바라면서. 그러면서 A는 흰비의 죽음을 마음속으로 조금씩 준비했다. 그는 흰비의 마지막 길은 무섭지 않게 자신의 품 안에서 흰비를 보내리라 다짐했다. 그런데 그날이 마지막이었다. 흰비는 집으로 오지 못했다. 조그마한 유리 케이지 안에서 홀로 떠났다고, 그게 그렇게 사무친다고. A는 많이 울었다.
생의 마지막은 누구에게나 찾아온다. 그래도 막상 그 순간을 지켜본다는 것은 용기가 필요하다.
나는 몇 년 전 나와 13년을 함께 한 고양이의 죽음을 떠올렸다. 녀석은 우리 집 부엌 바닥에서 너무나 가벼워진 몸을 뉘고 떠났다. 그 앞에서 나는 두려웠다.
마지막 언덕을 오르듯 힘겹게 몰아 쉬던 숨이 너무 힘들어 보였다. 고통이 빨리 끝났으면 하고 바라는 마음과, 붙잡고 싶은 마음이 마구 뒤섞였다. 도대체 어떤 마음이어야 맞는 건지 모르는 채로 함께한 숨이 어느 순간 마지막이었다는 것을 알게 된다. 나는 의아했다. 삶과 죽음의 예리한 경계는 보고도 잘 믿기지 않았다. 이다음은 어떻게 되는 거지? 방금까지 나와 함께 있었던 존재가 바로 다음 순간 없는 것이 된다고? 믿기 어렵다. 믿기 싫다.
그러나 죽음은 그 너머를 훔쳐보는 것을 허락하지 않는 견고한 암막이다. 커튼 뒤의 일은 가보기 전엔 알 수 없다. 그래도 가족 같은 반려동물을 보내는 마음은 같다. 무지개처럼 예쁜 다리를 건너 도착한 세상은 무조건 천국일 것이다. 그들은 100% 순수하고 착하니까. 그곳은 좋아하는 간식과 장난감이 넘치고, 고통 따위는 없는 자유롭게 뛰놀 낙원일 것이다. 동물의 죽음을 무지개다리를 건넜다고 돌려 말하는 것은, 우리도 모르는 미지의 상황을 맞이할 녀석들의 발걸음이 제발 행복하기를 소원하는 애틋한 마음 때문이다. 인간만이 존엄할 자격이 있고, 동물의 죽음은 그보다 가벼운 것이라고 여기는 사람은 이해할 수 없는 마음.
생명은 육체를 벗어나 어디로 갈까? 동물들도 영혼이 있을까? 나는 사람의 영혼이 있다면 동물도 있다고 생각한다.
A는 대화 끝에 이런 말을 했다.
“그런데 말이야, 내가 흰비를 묻고 그 자리를 기억하려고 사진을 찍었거든. 근데 그중 하나에 이상한 게 찍혔어.”
쌓인 낙엽들 위로 반사광 같은 빛 조각이 찍혔는데, 어른거리는 희미한 형체가 꼭 흰비같더란 얘기였다. 묻으러 가는 길에 평소 녀석이 엄청 좋아하던 하늘색 공을 같이 가지고 갔는데, 그 공과 흰비가 찍힌 것 같다고. “우연치고는 이상하지 않아? 내가 확대해서 아무리 봐도 장난감이랑 흰비랑 너무 똑같아.”
내가 마지막을 함께하지 못해서 이렇게 마음에 한이 되는 걸 흰비가 알고, 자기 즐겁게 잘 있다고 나한테 말해준 거 아닐까.
A는 약간 상기된 목소리로 울음을 삼켰다.
나는 사진을 보여달라고 했다.
그리고 그것이 역광인 경우 나타나기도 하는 렌즈플레어 현상 같다고 말했다. 관련 링크까지 몇 개씩 찾아 전해줬다. 그리고 나서야 아차 싶었다. 이런 젠장 나 망할 T인가…
뒤늦게 수습했다. “그래도 엄청 신기하긴 한걸… 내 눈에도 흰비처럼 보여.”
진심이긴 했는데…
A가 나를 아직도 인연으로 생각해 준다는 게 고맙다.
그리고 한동안 카톡창이 잠잠했다. 그러다 대답이 떴다.
“응. 흰비가 렌즈플레어 현상을 이용한 거라고 생각해.”
A는 착하다. 그리고 지혜롭다. 타인의 부족함은 말없이 품으며 자신의 믿음을 지켜나간다.
나는 그녀의 선함에 번번이 덕을 입는 멍청하고 운 좋은 사람이다.
- 흰비야. 비밀을 살짝 알려줘서 고마워. 무지개 나라에서 진짜 진짜 엄청 많이 행복하길 기도할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