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체가 없는 사랑 - 위대한 개츠비

화려함 속 공허한 개츠비와 정서적 투사 & 자기 이상화

by Vee

Prologue – 그 화려한 불빛 속에서

위대한 개츠비, 여러분은 어떤 장면이 떠오르시나요?

매일 밤 이어지는 화려한 파티와 웃으며 샴페인을 터트리는 사람들, 호화로운 드넓은 저택과 스타일리쉬한 자동차들, 1920년대 Jazz age의 경제적 호황을 누리던 미국인들의 사치스러운 생활... 아마 대부분의 사람의 머리 속에 그려지는 장면일 것입니다.

하지만 불이 꺼지지 않는 도시인 뉴욕에는 실체를 알 수 없는 공허함이 있습니다.

그 중심에는 개츠비가 있죠. 잡을 수 없는 초록 불빛을 하염없이 바라보는, 모든 걸 다 가졌지만 단 하나는 가지지 못한 남자, 제이 개츠비.


10대 시절 처음 접한 개츠비는 모든 걸 바쳤지만 사랑을 이루지 못한 비운의 남자처럼 보였습니다. 하지만 그 후 나이가 들어가며 여러 번 책을 읽을 수록 과연 그가 정말로 데이지를 사랑했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습니다. 어쩌면 그가 사랑한건 데이지라는 한 여자가 아니라 그녀가 내포하는 이미지들이 아니었을지요.



개츠비는 데이지를 사랑했을까요?

그의 인생을 마치 데이지만을 위해 준비된 것 같았습니다. 전쟁 후 개츠비는 어수룩했던 군인에서 매일 파티를 열 수 있는 넘치는 재력을 지닌 성공한 사업가로 돌아옵니다.

이 모든 건 과거의 사랑을 되돌리고, 동시에 그녀에게 어울릴 만큼 'Great'한 남자가 되기 위한 장치였죠.

하지만 정작 개츠비는 데이지를 제대로 보지 못합니다. 그녀가 얼마나 무책임하고 의존적인 사람인지, 결코 톰을 떠나지 못할 것이란 걸 말이죠. 그녀는 그에겐 기억 속에서 반짝이던 golden girl이어야만 했습니다.



데이지는 사랑이 아니라 '세계'였다

또한, 그는 그녀를 통해 완성될 자신만의 꿈을 사랑하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데이지는 단순한 이성이 아니라, 개츠비가 속하고 싶었던 세계의 상징이기도 했습니다. 볼품없는 본인의 모습과 비교되는 우아한 상류사회, 그 중 가장 아름다운 그녀를 얻는다는 건 곧 그 세계에 들어갈 수 있다는 것이었죠.


이건 단순한 사랑이라기보다는, 개츠비가 자신의 욕망을 데이지에게 덧씌운 정서적 투사였다고 볼 수 있어요.

정서적 투사(emotional projection)는 내 안의 갈망이나 이상을, 상대에게 덧씌우는 것을 말합니다. 상대를 있는 그대로 바라보기보단, 나에게 필요한 모습으로 보고 있는거죠.

상류사회를 상징하는 데이지는 개츠비에게 실제보다 훨씬 더 고귀하고 세련된 인물로 보였고, 개츠비는 자신의 갈망—상류층으로 편입되고 싶은 열망—을 그녀의 이미지에 녹여냈습니다.

데이지가 특별해서라기보다, 개츠비가 특별하게 만들었기 때문에 사랑에 빠진게 아닐까요?



나는 누구인가 – '제이 개츠비'라는 이상 자아

동시에, 개츠비는 자신을 재창조합니다. 가난한 농장 소년 '제임스 개츠'에서 모두가 친해지고 싶어하는 사교계의 신성 '제이 개츠비'가 되었죠.

심리학에서는 이런 걸 자기 이상화(self-idealization)라고 합니다. 내가 되고 싶은 자아를 머릿속에 그려두고, 그것에 다가가기 위해 끊임없이 자신을 바꾸려는 상태. 문제는 그 자아가 현실의 나와 너무 멀어질 때, 우리는 불안해지고, 누군가 혹은 무언가를 통해 그 간극을 메우고 싶어지죠.

개츠비에게 데이지는 바로 그 '이상 자아'를 완성시켜줄 마지막 퍼즐이었습니다. 그녀가 자신을 선택한다면, 그는 진짜 '제이 개츠비'가 될 수 있었던 겁니다.



이 두 가지가 동시에 작동했을 때

정리해보면, 개츠비의 사랑은 정서적 투사와 자기 이상화가 동시에 작동한 결과입니다.

[정서적 투사]

데이지를 상류사회 그 자체로 이상화하고, 자신의 욕망을 그녀에게 덧씌움

[자기 이상화]

데이지를 통해 '이상적인 개츠비'라는 자아를 완성하려 함

사람이 아니라 꿈을 사랑한 것. 그리고 그 꿈을 통해 자신을 증명하려 했던 마음. 그것이 바로 개츠비의 사랑이었죠.



우리에게도 익숙한 마음

사실 이런 사랑은 우리에게 낯설지 않습니다.

짝사랑을 오래 하다가 막상 가까워졌을 때 실망한 적, 연애 초기에 상대를 과하게 이상화했던 경험, 혹은 SNS 속 누군가에게 끌렸지만 그건 그 사람이 아닌 이미지에 반응한 것이었음을 뒤늦게 알았던 순간들.

이상화된 사랑은 때로 우리를 깊게 몰입하게 만들지만, 그만큼 깨졌을 때는 허무하고 아프기도 합니다. 왜냐하면 그 사랑이 무너지는 순간, 함께 무너지는 건 '내가 만들고 믿어왔던 세계'이기도 하기 때문이죠.



진짜 사랑은 상대를 바라보는 데서 시작합니다

위대한 개츠비의 마지막 장면에서, 개츠비는 혼자 수영장에 남습니다. 그렇게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받았던 전의 모습과 비교하면 너무나 쓸쓸한 모습이지만 그의 실체가 환상속에 지어진 모래성이었던걸 생각하면 제법 어울리는 엔딩입니다. 그는 진짜 자신의 모습도, 사랑하는 여인의 모습도 보지 못했습니다.


우리 안에도 개츠비가 있을지도 모릅니다. 사랑을 통해무언가를 이루고 싶어하고, 누군가를 통해 더 나은 나를 확인받고 싶은 마음. 때로는 그 사람이 아니라, 그 사람을 통해 완성하고 싶은 '이상적인 나'를 사랑하는 마음말이에요.

정서적 투사와 자기 이상화는 누구나 경험할 수 있는 감정입니다. 다만 그걸 조금 일찍 알아차릴 수 있다면, 사랑도, 나 자신도 더 부드럽게 이해하게 되지 않을까요?

위대한 개츠비는 그런 마음의 구조를 때론 조용히, 때론 아주 또렷하게 보여주는 고전 소설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그러기에 위대한 개츠비는 시대를 초월해 고전으로 자리 잡은 것이 아닐지 생각이 듭니다.



매주 목요일 고전 속 심리에 대해 연재하고 있습니다.

다음엔 어떤 인물의 마음을 들여다 볼까요? 여러분에게 작은 위로와 통찰을 글을 통해 드리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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