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은 내면에서 시작되었다 - 죄와 벌

도망칠 수 없는 심판 – 도덕 불안

by Vee

Prologue – 그는 왜 스스로를 벌했을까?

완전 범죄는 성공한 것 같습니다!

잔인한 수법으로 동네에서 악명높은 고리대금업자를 죽였지만, 아무도 그를 잡으려 하지 않습니다. 그런데도 그는 점점 망가져갑니다. 몸은 앓고, 정신은 쇠약해져 갑니다, 끝내 그는 스스로 경찰서에 찾아갑니다. 왜일까요?

죄와 벌은 단순한 범죄 소설이 아닙니다. 이는 라스콜니코프라는 한 청년이 옳다고 믿은 살인을 실행한 뒤, 그 죄의 무게에 짓눌려 스스로에게 벌을 내리는 이야기입니다.
그는 법보다 앞선 철학적 신념을 증명하려 하지만, 끝내 자신의 양심에 무너지고 맙니다.

이 글에서는 그가 왜 그렇게까지 무너졌는지, 그리고 그의 내면에서 작동한 도덕 불안(Moral Anxiety)이라는 심리 상태가 어떤 것인지 함께 들여다보려 합니다.

죄는 손으로 저질렀지만, 벌은 마음이 내렸습니다.
그리고 그 벌은 생각보다 훨씬 깊고 무서운 것이었습니다.



초인이 되고 싶었던 한 청년

라스콜니코프의 굳은 믿음에 따르면 그가 하는 살인은 악행이 아니었습니다.

“평범한 인간은 법과 양심에 묶여 있지만, 비범한 인간은 필요하다면 타인의 생명을 제거할 권리가 있다.”

“(고리대금업자)알료나는 사회에 해악을 끼치는 기생충이며, 그녀를 제거하는 것은 사회적 선이다.”

그는 본인이 나폴레옹과 같이 비범한 인물이라 믿었습니다. 따라서 그의 의도는 단순 범죄가 아닌 자신이 비범한 인간임을 증명하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일은 계획대로 흘러가지 않죠.



계획에 없던 살인, 그리고 시작된 균열

그는 목표한대로 알료나를 살해하는 데 성공하지만, 우연히 방에 들어온 리자베타를 추가로 죽이면서 모든 것이 무너집니다. 리자베타를 살해한 것은 자신의 철학이나 이상이 아닌, 들킬 수 있다는 공포와 충동이 겹쳐진 결과였으니까요.

이 순간 그는 깨닫습니다.

자신은 초인이 아니라, 공포에 휘둘리는 평범한 인간이었다는 것을. 그리고 그런 자신에게 누군가의 생명을 판단하고 제거할 권리는 없다는 사실을요.


그때부터 그의 삶은 지옥이 됩니다. 알료나의 이름만 들어도 깜짝 놀라거나 분노하고, 고열에 시달리며, 사람들을 피하며 스스로를 고립시킵니다.

머릿속에서는 끊임없이 ‘이건 옳은 일이었다’고 스스로를 설득하려 하지만, 동시에 밀려드는 죄책감은 그를 압도합니다.

이 고통은 단순한 후회가 아닙니다. 그가 겪는 내면의 고통은 바로 ‘도덕 불안’이라는 심리 상태입니다.



도덕 불안이란 무엇인가

정신분석학자 프로이트는 인간이 느끼는 불안을 세 가지로 나눴습니다.

1. 현실 불안(Reality Anxiety)

바깥 세상에서 생기는 일 때문에 무서울 때 느끼게 됩니다. 회사에서 잘못을 해서 혼날 것 같은 느낌, 또는 밤길에 낯선 사람이 따라올 것 같은 두려움이에요. 실제 현실에서 일어날 수 있는 일들이죠.


2. 신경증적 불안(Neurotic Anxiety)

내 마음속 욕심이나 충동이 너무 강해질까 봐 두려운 상태입니다. 예를 들어, 화가 나서 상대방을 밀어버리고 싶은 생각이 들자 '내가 나쁜 사람인가?' 하고 느끼는 거죠.


3. 도덕 불안(Moral Anxiety)

내 안의 초자아, 즉 양심과 가치 기준과 어긋난 행동을 했을 때 느끼는 죄책감입니다. 예를 들어, 친구에게 야근 때문에 못 만난다고 했지만 실은 귀찮아서였다면 찝찝하고 미안하죠. 혹은 무리에 휩쓸려 누군가를 뒷담화했을 때, '나 왜 그랬지?' 하며 불편해지는 감정이 바로 도덕 불안입니다.


라스콜니코프가 느끼는 불안이 바로 도덕 불안입니다. 그의 도덕 불안은 일상의 예시와는 스케일이 다르죠. 그는 살인을 했으니까요.

그는 살인을 정당화하려 했지만, 그의 양심(초자아)은 그 행동을 결코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그 결과 그는 앞서 이야기한 바와 같이 육체적 그리고 정신적인 고통에 시달립니다.

이 모든 건 도덕 불안의 심리적 증상입니다. 그의 논리는 그럴싸해보였지만, 결국 자신의 양심을 설득하지 못했던 것입니다.


결국, 자백은 내면의 회복을 위한 선택

그는 고통 속에서 자백할 것인지, 끝까지 침묵을 지킬 것인지 깊은 갈등에 빠집니다. 하지만 결국 ‘죄’를 숨기지 못하고, 소냐에게 고백한 뒤 경찰서로 향합니다.

이는 단순한 도덕적 용기가 아니라 도덕 불안에서 벗어나기 위한 필연적인 탈출구였습니다.

아무도 실제로 그를 체포하거나 강제로 자백시키지 않습니다. 심지어 그는 그는 충분히 도망칠 수 있는 기회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끝내 도시를 떠나지 않았죠.

그를 움직인 것은 외부의 압박이 아닌, 바로 자기 내부의 양심이 주는 고통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결국 스스로 ‘벌’을 택한 것입니다.

마지막에 시베리아로 유배된 그는 “진짜 삶은 이제 시작된다”고 느낍니다.
그의 고통은 허황된 이상을 고집했던 자신과 마주하고, 책임을 받아들이는 내면의 회복 과정이었던 셈입니다.



내 안의 갈등을 풀어주는 방법

우리도 라스콜니코프처럼 극단적이진 않지만, 누구나 자신만 아는 부끄러운 기억이나 도덕적 갈등을 품고 살아갑니다.

하지만 너무 걱정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누구나 겪는 감정이고, 해결방안도 있으니까요.


1. 불안을 회피하지 말고 직면해보기

불안을 느끼는 순간, ‘왜 이런 감정이 드는지’ 멈춰서 스스로에게 물어보세요. 내가 어긴 도덕 기준이 무엇이었는지, 그 기준이 내게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정리해보는 게 도움이 됩니다.
예: “나는 정직을 중요하게 생각하는데, 오늘 거짓말을 해서 찜찜한 거구나.”


2. 양심이 시키는 행동해보기

죄책감을 덜기 위해 실제로 도덕적 행동을 다시 해보는 것도 효과적이에요. 사과하기, 도와주기, 솔직히 말하기 등 작은 실천이 불안을 줄여줍니다.
예: 친구에게 “그때 내가 너무 예민했어. 미안해.” 하고 솔직하게 말하기.


3. 자기 자신을 용서하기

사람은 누구나 실수합니다. 완벽하지 않은 나도 받아들이는 연습이 필요해요. 그때그때 반성하고, 다음엔 더 잘하려는 태도가 중요합니다.
예: “그땐 너무 피곤해서 판단이 흐려졌지만, 다음엔 더 신중해질 수 있어.


4. 내면의 기준을 점검해보기

혹시 너무 엄격한 기준을 스스로에게 부과하고 있진 않나요? 때로는 나의 도덕 기준이 지나치게 이상적이라서 늘 불안만 남기는 경우도 있어요. 그 기준이 정말 필요한지, 현실적인지 점검해보세요.
예: “나는 항상 착해야 해” → “항상은 아니어도, 최선을 다하면 괜찮아.


5. 심리적 거리 두기 – 글쓰기나 말로 풀어보기

감정을 글로 쓰거나 누군가에게 말하면 생각이 정리되고 감정이 가라앉습니다. 내 불안이 어디서 시작됐는지 알게 되면, 무작정 괴롭기만 한 감정이 아니라 이해 가능한 감정이 됩니다.
예: “오늘 내가 한 말이 왜 불편했는지 글로 써보니, 너무 날카롭게 말해서 그랬던 거구나.”



마무리 – 내면이 주는 작은 경고음

죄와 벌의 라스콜니코프는 결국 벌은 밖에서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안에서 시작된다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그의 내면은 양심과 죄책감을 지울 수가 없었죠.

도덕 불안은 누구에게나 찾아옵니다. 그건 우리의 양심이 아직 살아 있다는 증거이자, 우리가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지를 알려주는 조용한 신호일지도 모릅니다. 그 신호를 피하지 않고 귀 기울이면, 도덕 불안이 발생하는 것을 방지하고 잠재울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매주 목요일 고전 속 심리에 대해 연재하고 있습니다.

다음엔 어떤 인물의 마음을 들여다 볼까요? 여러분에게 작은 위로와 통찰을 글을 통해 드리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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