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비상을 저주할 그대들에게

이직하길 잘했지, 나 #1

by vonnievo
이게 다 OOO같은 사람들 때문이죠.




그대는 내가 그대의 모든 휴식을 앗아갔다 여기는 듯했지만 그것은 아마 나 하나만이 일궈낸 결과는 아닐 것이다.
그대는 나의 존재가 병원의 존망을 뒤틀었다 했지만, 내가 그리도 소중했더라면 그대들 앞에 이리 작아질 필요는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뭐, 좋을 대로 생각하라지.



나는 그대를 원망하진 않으련다.

그대와 나는
단지 책임의 대상이 달랐던 것뿐이다.

내가 나의 미래에 최선을 다할 때,
그대의 치열함은 그대 곁의 남은 이들에게 향했을 테니.



그대는 아마 나의 비상을 저주할 테지만
나는 그 기대에 부응할 생각이 없다.

나는 찬란하게 빛날 테니,
그대도 어여쁘게 피어나길.







사실 내 한방병원 일기는 7화가 끝이었는데, 10화 넘게 연재해야 완결이 된다고 한다.
그래서 남은 시간 동안에는 조금 딴 소리를 해 보려고 한다.




우선 퇴사한 지 1개월이 지났지만, 여전히 내용증명은 날아오지 않았다.
소송은 백 프로의 협박용이었던 셈이다.




이직한 후엔 모든 것이 완벽하다.
좋은 사람들, 연봉, 워라벨, 그리고 피와 살이 될 경험까지.


얼마 전까지 소송 얘기가 오갔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요즘의 나는 너무나 평화로운 삶을 살고 있다.
그리고 계약직으로 일하는 지금, 정직원으로 일하던 지난 곳들에서보다 좀 더 큰 소속감과 '내 사람'으로서의 대우를 경험하고 있다.







... 자꾸 선생님들이 여기저기 이동하는 거,
너무 불편해.





고요한 공간 덕에 들어버린 대화 속에서 주인공은 나였다.

하긴, 불편할 법도 했다.
나는 내 자리가 없어서 일을 하려면 항상 남의 자리를 빌리는 처지였다.
빈자리는 있었으나,
그 자리엔 일하는 데에 꼭 필요한 전화기나 프린터 따위가 없었기에 늘 남의 자리를 전전하며 근무하는 중이었다.
누가 언제 오는지를 모르니 냅다 아무 자리나 앉은 후 자리의 주인이 오면 그제야 허겁지겁 이동하는 식이었는데,
그러면 마치 본인의 자리를 나로부터 빼앗는 듯한 느낌을 받을 것도 같았다.


그러나 나는 잠시 손을 보태주는 단기 계약직이라서
내 자리가 없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했다.
급히 채워진 인력이었고, 나를 위한 것들은 몇 달 후면 쓸모가 없어질 터였다.




저 대화가 있은 후 얼마 지나지 않아
내 자리가 생기고 나서야
나는 비로소 그 대화 주제가 '나에 의한' 불편함이 아니라 '나의' 불편함이었음을 깨달았다.


아, 이곳에서의 나는 하나의 인격체로 존중받고 있구나.

드디어 그곳에서 벗어났구나.








- 의 늪에서 벗어나게 해 줘서 고마워요






이직한 후로 종종 '내가 월급루팡인 것 같다, '라거나 '날 괜히 뽑았다고 생각할 것 같다, '는 생각을 하곤 하는데,
내 근무시간 8시간 중 순근무시간이 3시간도 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내가 엄청난 도움이 되는 것처럼 얘기해 주는 이들 덕분에 하루하루가 보람차다.

나의 수식어는 항상
'동태눈깔과 대조되는 친절한 말투'였는데,
이곳에서는 처음으로 '긍정의 아이콘'이라는 칭호를 얻었다.







급하게 안 해도 돼요.






이곳의 생태계는 아주 낯설고 새롭다.

꼼꼼하고 정확하게 일하기 위해 차분히 일해도 된다는 저 말이
처음엔 얼마나 이질적이게 들리던지 모른다.




간호사는 늘 바쁘게 일한다.
모든 것을 순식간에 해치워야 하지만, 그러면서 발생하는 모든 문제는 내 탓이 된다.
'처음이니까 그럴 수 있지, 몰랐으니까 그럴 수 있지'라는 말은 사치와도 같다.


그러나 여기선 아무도 죽지 않고 아무도 아프지 않다.

참으로 평화롭고 고요하고 잔잔한, 호수와도 같다.

그래서 초보자인 나는 초보자로서의 최선을 다할 수 있다.

몰랐던 것은 잘못이 아닐 수 있으며, 충분히 배워갈 기회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