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나는 괜찮았다.
이브닝으로만 꽉꽉 채워진 시간표 덕에 인간관계나 생활습관이 아작이 나도,
금요일과 온갖 빨간 날은 당직마냥 출근하느라 명절 내내 병원뿐이었대도 괜찮았다.
약사가 없는 병원에서 근무한대도,
어느 순간부터는 나 홀로 병원에 남겨져 도움 청할 곳이 없어졌대도,
조무사실습생과 진배없는 일을 하면서도 온갖 책임을 다 떠맡는대도,
아무래도 괜찮았다.
퇴사하겠습니다
사실은, 정말이지 괜찮지 못했다.
일하는 내내 숨이 막혀서 퇴근길에는 도무지 버스를 탈 수 없을 정도였다.
말하기도 민망한 자그마한 걸림돌들이 숨구멍을 자꾸만 막아서는 탓에 결국 나는 도망치기로 했다.
거의 모든 환자를 진상으로 묘사하며
'밟아줬다, ' '뭉개줘야 한다, ' 따위의 표현을 쓰는 저급한 인계도 지겨웠고,
돈을 많이 냈다며 VIP라도 된 듯이 구는 환자들 앞에서
쥐꼬리만 한 월급을 위해 굽신거리는 것도 싫었고,
이 부서, 저 부서 일을 다 끌고 오는 관리자 밑에서
하루종일 땀나게 돌아다니면서도
'병동에선 대체 뭘 해요?'라는 질문만큼의 취급도 싫었다.
자꾸만 경력자들을 뽑아놔도 신규들만 남는 데엔 다 이유가 있다.
시스템을 바꿔보겠다며 야심 차게 입사했던 20년 차 간호사가 '여긴 가망이 없다'며 15일 만에 혀를 내두르며 관두는 꼴을 보니 무언가 단단히 잘못 돌아가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나는 서둘러 이직처를 몰색하였다.
사실 이직은 핑계고, 갈 곳이 없다고 했더라도 나는 당장 관둬야만 했다.
나 혼자만의 근무가 한 달 내내 깔려있었고 퇴사자가 줄을 섰으니, 더 있었더라도 상황이 좋아졌을 리는 만무했다.
그러나 혹시라도 터질지도 모르는 응급상황이 나에겐 극심한 공포였기에 혹시라도 좋아질지도 모를 상황을 그리며 내 자신을 달랠 수는 없었다.
대학병원이 그 정도도 못 미뤄요?
아마 대학병원 경력이 없어서 몰라서 한 말이겠지만, 대학병원이니까 그 정도도 못 미루는 것이다.
당장 다음 주에 나와라, 하는 일들이 그곳에서는 심심찮게 일어난다.
당장 본인들도 저녁에 면접 본 사람을 다음 날 아침에 출근시킨 장본인이니 잘 알 것이다.
퇴사를 선언한 이래로 다양한 말들을 들을 수 있었는데, 대부분은 비난의 말이었다.
처음엔 근로계약서 위반이라 퇴사를 시켜줄 수 없다 했고,
나 하나로 인해 간호등급이 떨어질 테니 소송을 걸 것이라 했고,
동료들에게 미안하지도 않냐고 했고,
책임감이 없다고 했다.
다시 잘 생각해 보고 말씀해 주세요.
저희는 선생님을 생각해서 기회를 드리는 거예요.
그녀가 내민 종이엔 2000만 원이라는 숫자와 함께 어려운 말씨로 적힌 용어들이 빼곡했다.
급여명세서도 제때 주지 않았던 그놈의 법무법인은 소송에서는 빠릿했던 모양이다.
어쩐지 입사한 뒤 한참 뒤에 근로계약서를 쓴다 했더니, 튈 거면 그전에 튀라는 뜻이었나 보다.
만약 내가 기댈 곳 하나 없는 인간이었다면 꼼짝없이 일해줄 뻔하였다.
사회 초년생에게 법정이니 소송이니 하는 말들을 지껄이며
더 큰 세상으로 나아가겠다는 이의 날개를 으스러놓는 인간들 밑에서.
저희가 선생님의 입장과 저희 병원의 입장을 잘 조율해서
한 달 뒤에나 퇴사가 가능하지만 조율을 해보자, 하고 **일 정도를 말씀드린 거잖아요
그럼 저희의 입장도 생각해 주셔야 하지 않을까요?
지금 선생님 없이 듀티가 돌아갈 수 있는 상황이 아닌데,
꼭 이렇게 행동을 하셔야 할까요?
ㅡ
아뇨, 저는 충분히 설명드렸고
저희가 미리 이걸 보여드릴 필요는 없고요,
저는 이제 진짜 이렇게 진행한다는 것을 다시 한번 말씀드리는 거예요.
그래도 변동의 여지가 없으신지.
이런 민사소송이라는 게 진행되면 선생님이 계속 법원에서 통지한 날짜에 계속 출석을 하셔야 해요
그게 몇 년이 걸릴 수도 있어요
그렇게 진행해 드릴까요?
일단은 알겠습니다.
그럼 선생님도 감당은 하셔야 될 거예요.
- 녹음본에서 발췌해 온 주옥같은 대사들
사직서를 썼다.
심장이 파들 거리는 공포인지 분노일지도 모를 떨림을 견딘 채
나는 나름의 예의를 갖추기 위해 노력했다.
저런 소리를 듣고도 왜 아직도 거기 있냐며,
기왕 무개념인 인간으로 찍힌 김에
근무고 뭐고 때려치우고 당장 나오라는 부모님의 속상함을 뒤로한 채
아무도 인정해주지 않을 유종의 미를 거두었다.
그렇게 병원을 나온 후,
며칠간 나를 옥죄여오던 가슴의 답답함이
거짓말처럼 사라졌다.